선의 세계

[스크랩] 5. 직지인심(直旨人心) 3

수선님 2018. 6. 24.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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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불교 경전이 많이 소개되어 번역되고 연구되면서, 불교 사상에 대한 중국 사람들의 이해도 깊고 넓어졌다.


그런데 그럴수록 혼란도 더해갔으니, 많은 경전의 다양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니 “불교의 가르침은 결국 이런 것이다”라고 딱 부러지게 정리해서 단언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졌던 것이다.


무엇인가에 대해 정보와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또 이해가 깊어질수록, 그것에 대해 간단하게 단정적으로 말하기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자면 문학자에게 문학이 뭐냐고 묻거나 역사학자에게 역사가 뭐냐, 종교학자에게 종교가 뭐냐고 물으면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물어본 사람에 따라서 알아듣도록 임의로 이렇게도 답변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할 수 있겠는데, 대답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느 답변이건 문학, 역사, 종교의 복잡한 속내를 다 담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안다. 대개 물건보다는 인간사, 즉 사람의 일, 사람의 사정이 알면 알수록 그처럼 간단하지 않고 복잡하다.


불교, 즉 부처님의 가르침도 마찬가지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딱 부러지게 말해서 뭐냐는 물음은 석가모니께 던지는 것이 가장 좋겠건만, 석가모니는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까 대신, 살아있는 고승대덕들께 여쭈어본다고 하자. 갖가지 답변이 다 나올 것이다. 경전을 인용해서 “나쁜 짓을 하지 않고 착하게 살라는 거야”라고 쉽게 대답할 수도 있겠고, 나아가 사성제(四聖諦) 팔정도(八正道), 연기법(緣起法), 공도리(空道理) 등등 불교의 요체로 그때그때 거론할 것이 선택하는 데 따라 무궁무진하게 많다.


다양한 경전과 그 밖의 문헌이 쏟아져 들어와 번역되고 보급되면서 중국의 불교 사상가들은 그 다양한 내용들을 종합하고 체계화하여 불교의 핵심을 간파해내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어디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어디에서는 저렇게 이야기했는데, 심지어는 같은 사안에 대해서 다르게 이야기하는 대목들도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든 정리하고 해명해야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발전한 것이 이른바 교상판석(敎相判釋)이다. 말 그대로 가르침의 모양새를 판별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어떤 가르침은 초기에 사람들이 견해가 얕아서 부처님의 말씀을 잘 알아듣지 못하므로 방편으로 쉽게 설명하다보니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어서 그런 줄 알고 이해해야 하고, 어떤 가르침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꽤나 조예가 깊어진 뒤에 비로소 당신의 뜻을 다 담아 말씀한 것이라고 판정하는 작업이다.


이에 대한 견해가 차이가 남에 따라 종파도 생기게 되었다. 예를 들자면, 석가모니의 일생에 따라 어떤 경전은 초기에 설한 것, 어떤 경전은 그 다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설한 것이 열반경이니 열반경이 아무래도 그 가르침의 최고봉이라고 보는 열반종이 생겼다. 아니다, 묘법연화경이 궁극적인 가르침을 담았다. 아니다, 화엄경이다 등등 어느 경전을 궁극의 가르침으로 보느냐에 따라 종파가 생겼는가 하면, 공도리(空道理)를 열쇠로 하여 모든 교리를 풀어내는 데 주력하는 종파도 있고 무명(無明)을 일으키는 의식(意識)의 구조와 작동을 파헤쳐 무명을 떨치는 길을 밝히는 데 주력하는 종파도 있었다. 그리하여 중국불교는 인도의 부파불교 시대에 이어 이른바 종파불교를 꽃피우게 된다. 나중에 선종이 그 모든 종파를 교종이라고 싸잡아 부르면서 퍼부은 비판의 핵심은, 경전 공부에 매달리다보니 정작 자기가 직접 깨달음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일은 뒷전에 둔다는 것이었다. 이번 회도 어느새 지면이 다 차버렸다. 다음에 또 이야기를 잇기로 한다.

 

윤원철/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출처 : 淨土를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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