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 공부를 하면 깨달아 성불하는 데 방해가 된다?
경전이라는 것이, 곧이곧대로 믿자면, 부처님의 입에서 직접 나온 말씀인데 부처님이 중생에게 일러준 말씀이 깨달음에 방해가 된다고 한다면 참으로 의아하게 생각될 것이다. 나 자신과 세상의 진상을 깨달아 해탈하라는 것이 부처님께서 그토록 입 아프게 간절한 말씀을 많이 하신 취지겠지, 설마 해탈하지 못하게 방해 공작을 한 것이겠느냐는 말이다.
선종에서 직지인심견성성불(直指人心見性成佛)이라고 외치면서 경전 공부는 곧바로 질러들어 가는 게 아니라 우회하는 짓이라고 비판했을 때에도, 경전 공부 그 자체가 반드시 깨달음에 장애가 된다고 단언하는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선사들이 경전 그 자체, 또는 경전을 공부한다는 것 그 자체를 문제삼았을 리는 없다. 경전에 대한 태도, 경전 공부를 하는 태도에 시비를 걸었다고 보아야 한다.
어떤 태도를 문제삼는 것일까?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경전 공부가 불교 신행의 모두라고, 또는 적어도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여기는 태도를 들 수 있다. 자기가 관심을 가지고 하는 일, 자기에게 재미있는 일, 자기가 잘 하는 일, 자기의 전문분야에 매달리다 보면, 그 일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은근히, 또는 노골적으로 생기게 마련인 것이 사람의 속성이다. 예를 들어 대학교에서도 그런 현상을 볼 수 있다. 갖가지 전공분야가 있고 그에 종사하는 교수들이 있는데, 대개는 각자 자기 학과, 나아가 자기 분야가 가장 중요하고 학문의 총화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말로야 물론 다른 분야도 중요하다고 점잖게 인정하지만, 적어도 내심으로는, 또는 무의식적으로 그런 태도에 젖게 된다.
경전 풀이 전문가들에게도 그런 증상이 흔히 있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선사들은 불교 신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깨달아 성불하는 일이라고 지적하면서, 그걸 젖혀두고 경전 풀이에만 매달리는 행태를 비판하였다. 경전 풀이 전문가들이라고 깨달아 성불하는 일이 불교의 요체임을 부인할 리 없겠고, 이를 위한 수행은 쓸모 없다고 주장할 리 없다. 그러나 선사들이 보기에 그들은 본말을 전도하여 말(末)에 집착하고 본(本)을 잊은 듯했다. 뿌리를 찾으려면 곧장 뿌리를 캐낼 일이지, 뿌리를 찾는다면서 이파리와 가지만 더듬고 있음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선사들이 보기에 불교 신행의 뿌리란 바로 자기 마음을 깨닫는 것이었다. 지금 당장 바로 여기에서 스스로 자기의 마음을 깨치는 일이 중요하지, 까마득한 옛날에 입적하시어 지금은 세상에 없는 부처님이 무슨 말씀을 했는지, 옛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해석했는지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것을 철저히 다 공부하고 나서 마음 깨치는 일에 들어가려고 한다면 잘못된 길로 가는 셈이어서 엉뚱한 곳에 도달한다고 질책한다. 선사들이 흔히 쓴 표현을 빌리자면, “동쪽으로 간다면서 서쪽으로 가는 셈”이다.
뭐 그렇게까지 심하게 말을 하느냐, 돌아가더라도 어쨌든 목적지까지 가기만 하면 될 것 아니냐고 항변할 수도 있겠다. 선사들은 이에 대해 더욱 강한 어조로 오금을 박았다. 처음에는 털끝만큼의 차이라도 나중에는 아예 하늘과 땅 사이만큼 벌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호리유차 천지현격(毫釐有差 天地懸隔)이라는 승찬(僧璨)스님의 신심명(信心銘)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1도의 각도는 원점에 가까운 지점에서는 그야말로 털끝이 들어갈까 말까하지만, 수십 킬로미터까지 뻗어 가면 양변 사이의 거리가 어마어마하게 벌어진다. 경전 공부에 매달리는 것이 그토록 근본적으로 잘못된 일이라는 이야기인데, 왜 그렇게 강하게 이야기하는지는 다음 회 글에서 풀이해보기로 한다.
윤원철/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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