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염송

[스크랩] 禪門拈頌 6. 탄금(彈琴)

수선님 2018. 6. 24. 12:20

깨침과 깨달음

 

본칙

부처님께서 어느 사미에게 물으시되 “너는 속가에 있을 때 무슨 일을 하였느냐” 하시니 “거문고를 즐겨 탔습니다” 하였다.

“거문고 줄이 늘어지면 어떻더냐?” 물으시니,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하였다. “줄이 너무 팽팽하면 어떻더냐?” 하시니 “끊어집니다” 하였다.

“늘어짐과 팽팽함이 알맞으면 어떻더냐?” 하시니 “맑은 소리가 두루 퍼집니다”고 답하였다. 이에 부처님께서 “도를 배우는 법도 그러하니라”고 말씀하셨다.

염·송·어

지비자(知非子)가 송했다.

늘어지면 소리가 없고 금하면 촉박하나니 / 자기(子期)가 죽은 뒤에 백아(伯牙)가 통곡했네. / 그러나 줄 없는 거문고 한 곡조에 / 궁상각치우(宮商角徵羽) 다섯음이 두루 갖출 것 같으랴.

만해(萬海)가 송했다.

달 아래 거문고를 타기는 근심은 잊을까 함이러니, 춤 곡조 끝나기 전에 눈물이 앞을 가려서, 밤은 바다가 되고 거문고 줄은 무지개가 됩니다. / 거문고 소리가 높았다가 가늘고 가늘다가 높을 때에, 당신은 거문고 줄에서 그네를 뜁니다. / 마지막 소리가 바람을 따러서 느티나무 그늘로 사라질 때에 당신은 나를 힘없이 보면서 아득한 눈을 감습니다. 아아 당신은 사라지는 거문고 소리를 따라서 아득한 눈을 감습니다.

감상

백아는 거문고의 명인이었는데, 그의 거문고 소리는 오직 종자기만이 알아들을 수 있었다.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자기의 음악을 알아들을 사람이 이 세상에 없다고 탄식하고 거문고의 줄을 끊어버리고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진정으로 자기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다면 자기의 예술을 포기할 줄 아는 깊은 우정이 담긴 이야기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제자의 생활과 처지에 따라 방법을 달리한다. 속가에서 거문고를 탄 사미에게는 거문고를 통해 깨달음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그렇게 해야 그가 가장 잘 알아들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비자의 송은 백아와 종자기의 우정도 중요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거문고 소리보다 더 깊고 그윽한 것임을 알려준다. 줄없는 거문고(無絃琴)는 사리분별을 초월한 부처님의 마음을 노래한다.

한용운의 거문고는 세속의 고저장단이 아니라 “나의 노래는 님의 귀에 들어가서는 天國의 音樂이 되고 님의 꿈에 들어가서는 눈물이 됩니다.”라고 사랑과 절망을 연주한다. 한용운 또한 님이 침묵하는 시대를 통해 아픔을 노래한 것이다. 아득히 눈을 감는 님은 고통받는 백성들을 한없이 가엾어 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부처님의 마음이다.
 
촤동호/고려대 국문과 교수
출처 : 淨土를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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