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염송

[스크랩] 禪門拈頌 8. 제상(諸相)

수선님 2018. 7. 1. 12:45

깨침과 깨달음

 

본칙

금강경(金剛經)에 말씀하시기를 ‘만일 모든 형상이 형상 아닌 줄 알면 곧 여래를 보리라’ 하셨는데 법안(法眼)은 말하기를 ‘만일 모든 형상이 형상 아닌 줄 알면 여래를 보지 못하니라’하였다.

염·송·어

장산천(蔣山泉)이 송했다.

연잎같은 눈이 한번 껌벅일 때에
사방에 겨룰 이가 없으니
수미산엔 먼지 하나 없고 넓은 바다에는 방울물(涓滴)이 말랐네.
방울물이 없으니 돌에 떨어져 잠잠하고
먼지 하나 없으니 하늘 높이 치솟네.
험악한 산 밑에 초막을 짓고
그늘진 개울가에 씨를 심는다. 
곤할 때엔 평상에 다리를 뻗고 눕는게 좋고
주릴 때엔 밥이 있으니 입을 열어 먹는게 좋다. 
석가모니여, 아는가! 모르는가!
눈밖에 서풍(西風)이 급하구나.
숭승공(崇勝供)이 송했다.

“원래부터 형상이 있다 해도 관계치 않나니 허망하다면 태산같은 죄를 부른다. 모든 형상이 형상 아니란 뜻을 알았다 한다면 여래의 모습은 어떻게 생겼던가.”

천동각(天童覺)이 염(拈)했다.

“세존은 여래선을 말씀하셨고, 법안은 조사선을 말했다. 이 소식을 안다면 매우 기특한 일이요. 알지 못한다 해도 그렇다고 허락하리라.”
 
감상

세존의 말과 법안의 말은 매우 다르게 전해진다. 세존은 형상을 부정해야 여래를 보리라고 말씀하셨고, 법안은 형상을 보지 못하면 여래를 보지 못한다고 한다.

몇 년 전 성철스님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라고 말하여 세인들에게 큰 충격을 준 바 있다. 초등학생도 다 아는 이 말이 왜 그렇게 충격적인 화두가 되어 돌아온 것일까. 그것은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다’라는 세존의 어법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산과 물을 부정하는 것이 불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산과 물을 긍정하는 것이 불법이라면 이 무슨 모순인가 하여 사람들이 의아심을 갖게 된 것이다.

세존의 말씀과 법안의 말은 서로 상충되는 것이 아니다. 형상을 부정하고 그리고 끝내는 형상을 긍정하는 것이 불교의 근본 정신이다. 불교가 생을 부정하는 종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불교의 근본정신을 잘못 파악한 것이다.

부정을 통해 긍정에 도달하는 것이 불교의 변증법이다. 형상을 다 부정해버린다면 어떻게 참된 형상을 볼 것인가. 목마르면 물마시고, 배고프면 밥을 먹으라는 생활철학이 바로 부정이 긍정으로 나아가는 불교의 참된 가르침이다. 참된 형상을 제대로 보라는 것이 세존의 말씀이요 법안의 가르침이다.
최동호/고려대 국문과 교수
출처 : 淨土를 그리며...
글쓴이 : 느린 걸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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