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염송

[스크랩] 禪門拈頌 7. 법륜(法輪)

수선님 2018. 6. 24. 12:20

깨침과 깨달음

 

본칙

세존께서 열반에 드시려 할 때, 문수가 부처님께 ‘다시 법륜(法輪)을 굴려 주옵소서’하니 세존께서 꾸중을 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문수야 내가 49년을 세상에 머물렀으나 한 글자도 말한 적이 없거늘 네가 다시 법륜을 굴리라하니, 내가 법륜을 굴린 적이 있느냐’고 반문하셨다.

염·송·어

지비자(知非子)가 송했다.

부처님이 문수를 꾸짖으시되 49년을 세상에 머물렀으나 법륜을 굴린 적이 없었느니라 황엽(黃葉)의 인연만을 따랐뿐이니 가섭만이 금란(金欄)을 얻었느니라.

당나라 〈속고승전(續高僧傳)〉에는 신라의 원광(圓光)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처음에 〈성론(成論)〉을 진술하고 마지막은 〈반야경〉을 강설하며 모두 명철하게 해석하여 아름다운 질문을 주고 받는데 말은 문채가 나고 깊은 뜻은 베 짜듯 짜내니 듣는 자들이 기뻐하고 만족하여 마음에 꼭 들었다. 이로부터 예전의 규례를 따라 사람들이 모르는 바를 계발시키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으니 법륜(法輪)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문득 강과 호수의 물을 기울여 쏟듯 하였다. 비록 이역이지만 설법에 통하여 도에 몸이 젖었기 때문에 모든 결함을 송두리째 없애버렸다. 그의 명망은 중국 남방 일대에 전파되어 험한 길을 돌보지 않고 보따리를 둘러메고 오는 자들이 많았다.

감상

부처님은 죽음의 순간 왜 사랑하는 그의 제자 문수에게 49년 동안 자신은 한 글자도 말한 적이 없다고 하였을까. 부처님은 한 글자도 말한 바 없다고 하였는데, 훗날 그의 제자 원광은 어떻게 법륜의 바퀴를 크게 굴려 험한 길을 돌보지 않고 많은 사람들을 모여들게 하였을까.

법륜(法輪)이란 부처님이 가자 불법의 힘이 산악을 평탄하게 만들 수 있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윤보(輪寶)와 같음을 뜻한다. 한 마디 말도 없었음에도 왜 부처님의 말씀은 수천년동안 억조창생들에게 비할 바 없는 법륜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 한 때 필자로서도 잘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지비자의 송을 들어보면, 부처님의 법은 오직 가섭에게만 전했다고 한다. 가섭에게 전한 법은 말없음의 심법(心法)이다. 오직 한 송이 연꽃을 들어보이고, 미소로서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알아보는 것이다. 심법은 심인(心印)으로만 전해진다.

수많은 깨달음의 잡다한 말들을 쓰레기 더미에 던져버리라. 부처님은 마지막 말을 남기지 않음으로서 후대에 원광법사와 같은 무수한 제자들이 그 심법을 전할 수 있었다. 말을 끊어버림으로서 후세에 들끓는 논란의 근거를 제거하고, 꽃 한송이의 미소를 남김으로써 부처님은 참 생명을 가진 진리의 등불을 밝혀준 것이다.
 
최동호/고려대 국문과 교수
출처 : 淨土를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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