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칙
문수(文殊)가 어느날 선재(善財)에게 약을 캐 오라고 시키면서 말하되 ‘약 아닌 것을 캐 오너라’ 했다. 이에 선재가 대답하되 ‘산중에 약 아닌 것이 없습니다’하니 문수가 다시 말하되 ‘약되는 것을 캐 오너라’ 했다. 선재가 땅 위에서 한 줄기 풀을 집어 올려 문수에게 주니 문수가 받아 들고 대중에게 보이면서 말하되 ‘이 약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사람을 살리기도 하리라’ 하였다.
염·송·어
대홍은(大洪恩)이 송했다.
옳다느니 그르다느니 어째서 분분한고?
죽였다 살렸다 공연히 끝이 없네.
내년에 또 다시 새 가지 돋아서
봄바람에 끝없이 흐느적거리리.
낭야각(耶覺)이 염했다.
낭야각(耶覺)이 염했다.
‘문수의 말은 가히 성실하다 하겠으나 이마에 땀이 나고 입에서 아교냄새가 난다.
자수심이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듣고 말했다.
‘이 도리는 작자(作者)라야 바야흐로 아나니, 만일 무쇠 눈과 구리 눈동자가 아니면 종종 지나쳐 버린다. 그러나 선재가 그렇게 약을 캔 것은 하나만 알고 문수가 그렇게 약을 가린 것은 둘만 알았다.’
그리고 불자(佛子)를 바로 세우고 말했다.
“이 약을 아는가”
감상
문수와 선재의 약초 캐는 이야기는 석가와 가섭의 꽃한송이의 미소를 연상시킨다. 어떤 것이 약이 되느냐, 그 약이 사람을 살리느냐 죽이느냐의 문제는 가섭의 상징적 미소보다는 작위적 요소가 느껴진다.
문수가 선재에게 요구하는 약초 또한 반어적이다. 낭야각의 말대로 이마에 땀이 나고, 입에서 아교냄새가 난다. 자수심의 말대로 그들은 하나나 둘을 알았을 뿐이라는 지적이 그럴법하다. 자수심은 이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부처의 병과 조사의 병을 깨부셔야 한다고 말했다.
풀한포기로 무엇을 죽였다 살렸다 한다고 말한 것은 쓸데 없는 공연한 일처럼 느껴진다. 봄이 오면 새 움이 돋고, 새들이 울 것이기 때문이다. 시비만 분분하지 이 도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무쇠의 눈과 구리의 눈동자로 투철하게 보는 자만이 이 도리를 알 것이다.
문수가 선재에게 시킨 것은 ‘약 아닌 약’이라는 점은 깊히 생각할 필요가 있다. ‘약 아닌 것이 없다’고 선재가 대답하자 문수는 ‘약이 되는 것’이라고 다시 말을 바꾼다. 선재가 캐온 ‘풀 한포기’가 약이 되고 안되고는 대중들의 마음에 달려 있다.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것은 부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는 중생의 마음이다.
어떤 이에게 약이 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독이 되기도 하고, 어떤 이에게 독이 되는 것이 다른 사람에 약이 되기도 한다. 사람을 죽이는 약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약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최동호/고려대 국문과 교수
출처 : 淨土를 그리며...
글쓴이 : 느린 걸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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