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연기설에 관해서는 편의상 조계종 포교원에서 편찬한 <불교교리>(조계종출판사, 1998)에 제시된 설명(183~184쪽)을 사용하기로 하자.
여기에서는 무명을 “존재의 자연스런 흐름에 대한 역전(逆轉)의 상태”라고 정의하고 있다. 말이 좀 까다로운데, ‘존재의 진상을 모르고 이에 거스르는 어리석음’이라고 바꾸어도 좋겠다.
행(行)은 “그 역전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결합 작용,” 식(識)은 “결합 작용이 일어나기 전과 일어난 후를 완전히 다른 존재로 식별하는 것”이라고 해설하였다. 그 다음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이 공존하는 상태”(명색, 名色),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을 바탕으로 개체의 주관성이 확립되는 단계”(육처, 六處), “이미 발생한 다양한 존재들의 부딪침”(촉, 觸), “자신의 존재에 대한 총체적인 느낌을 통한 확인”(수, 受), “즐거운 느낌에 대한 갈애”(애, 愛), “갈애의 대상을 자기화하는 행위”(취, 取), “취하여진 대상이 자기가 되어 버린 것”(유, 有)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오온(五蘊)과 육근(六根)의 나타남”인 생(生)과 “오온과 육근의 붕괴”인 사(死)로 귀결된다.
이해가 될 듯 말듯하다고 조바심 내고 낙심하지 마시라. 어쩌면 이해가 안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만큼 까다로운 이야기이다. 여기에서도 다시 욕먹을 각오를 하고 단순한 이해를 구해보자.
무명, 즉 어리석음과 함께 개체로서의 주관이 일어나고 따라서 자기 자신과 객체의 구별이 일어난다. 그렇게 주와 객이 별개의 존재로서 서로 접촉하여 지각과 감각, 즉 인식이 일어난다. 객체에 대한 인식을 통해서 주체로서의 자기의 개체성을 확인하면서, 객체에 대한 온갖 판단 그 자체를 자기 자신의 자아로 삼는다.
그러니 우리가 생일이 있고 죽는 날이 있을 나 자신이라고 여기는 존재, 의심할 바 없이 엄연한 개별자이며 주체로 여기는 나의 존재가 실상은 지각, 감각, 인식의 덩어리이랄까 흐름이랄까 뭐 그런 것이라는 얘기이다. 그 덩어리, 흐름은 흩어지게 마련이고, 그 필연적인 사태를 두고 우리는 죽음이라고 애통해 하고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이해해보자고 했지만 이것도 별로 쉬운 이야기는 되지 못하였다. 더 간단하게 말하자면 나 자신, 그리고 그 밖의 현상 및 사물을 구별하기만 하는 사고방식을 문제로 지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하나의 개체로 자신을 설정해놓고 보니, 그 또한 모든 개체와 마찬가지로 생겨났다가 없어지는 운명으로만 여길 수밖에 없다. 개체의 생겨나고 없어짐은 개체를 단위로 보면 엄연하고 절실한 일이다. 그러나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을 다 포함해서 세상 전체를 단위로 해서 본다면 그것은 아예 있지도 않은 일이다. 나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것을 아(我), 즉 독립된 개별자로만 보면 모든 것이 생멸(生滅)하는 존재로만 보인다. 그러나 연기(緣起)의 세계 속에서 모두가 서로 얽혀 있는 존재, 즉 연기적 존재라고 보면 생사라는 것이 애초에 없다.
그러니까 무명이 생사의 궁극적인 원인이라고 하는 십이연기설을 단순화시키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된다. 우리가 생사라고 여기는 현상은 모든 것을 개별자로만 보는 어리석은 버릇 때문에 절실한 사실로 여겨질 뿐이지, 연기의 세계에서 보자면 실상은 생사라는 것이 아예 없다. 그래서 석가모니는 연기라는 세상의 진상을 깨달음으로써 생사 문제를 해결했다고 하는 것이다.
윤원철/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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