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 세계

[스크랩] 11. 직지인심(直旨人心) 9

수선님 2018. 7. 1.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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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독자 여러분께 생각해보실 문제를 하나 드렸었는데, 숙제를 하셨는지 모르겠다.


싯달타는 생사, 즉 나고 죽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출가했고 그것을 해결함으로써 부처님이 되었다는데, 그 문제를 과연 어떻게 풀었다는 것인가? 자아라는 관념과 그것이 일으키는 온갖 감정 및 판단, 인식이 모두 조작된 것이지 실체성이 있는 게 아니라고 하는 무아(無我)의 교리, 또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교리와 관련해서 생각해보시라고 하였다.


싯달타가 종교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게 된 계기를 표현하는 이야기로 사문출유(四門出遊)의 일화가 있다. 성안에만 머물며 세상의 실상으로부터 차단된 쾌적한 삶을 누리던 싯달타 왕자가 성밖으로 나가 늙은이, 병자, 시체를 차례로 목격한 뒤, 태어났으면 반드시 늙고 병들어 죽어야 하는 삶의 괴로운 실상에 눈을 뜨고 의문을 품었다고 한다. 왜 태어나고 죽어야 하는가? 그리고 네 번째로는 도 닦는 수행자를 보았고, 자기도 그 생사의 문제를 풀기 위해 언젠가는 출가수행을 하겠노라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다들 아시다시피 스물 아홉 살에 그 일을 결행했고, 치열한 수행 끝에 마침내 목표를 이루었다고 한다.


자, 그러면 석가모니는 분명히 생사 문제를 해결하였다는 얘기이다. 다시 말하자면 생사를 극복하였다. 어떻게? 결론부터 말하자면, 석가모니는 생사 문제라는 것이 원래 없음을 깨달음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하였다. 워낙 문제가 아니었으니 해결이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다. 다만, 우리가 생사라는 것이 있다고 여김으로써 생사를 겪고 그것을 문제로 삼을 뿐이다.


이에 대한 설명으로 내놓은 것이 십이연기설(十二緣起說)이다. 왜 늙고 병들어 죽는가? 십이연기설에서 이에 대한 답은 “태어났으니까”이다. 늙고 병들어 죽는 고통을 안 당하려면 안 태어나면 된다. 언뜻 들으면 농담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건 농담이 아니라 심각한 얘기이다. 세상은 고해(苦海), 즉 삶은 괴로움의 바다라는 말은 누구나 들어보았을 것이다. 주식에 투자했다가 손해를 보았다느니, 성적이 나빠 좋은 대학교에 못 간다느니, 키가 작아 고민이라느니, 먹고살기 힘들다느니 등등 시시콜콜한 문제가 아니라, 생사라는 정말 근본적이고 절대적인 문제를 붙들다 보니까 그런 진단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시콜콜한 작은 괴로움들은 반드시 해결책이 있으며, 그 자체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다른 즐거움으로 보상된다. 그러나 태어나면 반드시 늙고 병들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그 문제는 그 어떤 즐거움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 거기에 초점을 맞추면 삶은 괴로움이라는 진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그 말을 그저 단순히 염세주의라고 여기면 짧고 얕은 이해, 아니 오해이다. 가장 근본적인 괴로움을 해결하여 가장 근본적인 즐거움을 찾으려고 하는 데에서 나온 말이니까.


아무튼, 그러면 태어나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이 대목부터 십이연기설이 무척 어려워지는데, 복잡한 이야기를 늘어놓아 보았자 골치만 아프니까 이것도 일단 매우 단순화시켜서 이해해보기로 하자. 아시다시피 십이연기의 꼭대기, 즉 우리가 이 세상에 한 개별자로서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게 되는 궁극적인 원인은 다른 그 무엇이 아니라 바로 무명(無明), 즉 어리석음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무명에서부터 태어남까지 이르는 그 사이의 복잡한 이야기는 참 알아듣기 어렵다. 그 이야기는 다음 회에 펼치기로 한다.

 

윤원철/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출처 : 淨土를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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