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칙
사리불이 어느 날 성으로 들어가다 월상녀(月上女)가 성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말하되 ‘어디를 가는가?’하니 여자가 대답하되 ‘나는 사리불님처럼 그렇게 갑니다’하였다.
다시 사리불이 묻되 ‘나는 성으로 들어가고 그대는 성에서 나오는데 어째서 나처럼 간다고 하는고?’하니, 여자가 도리어 묻되 ‘부처님의 제자들은 어디에 머무십니까?’하니, 사리불이 대답하되 ‘부처님의 제자들은 큰 열반에 머문다’고 하였다.
이에 여자가 말하되 ‘부처님의 제자들이 열반에 머물렀으므로 나도 사리불님처럼 그렇게 갑니다’하였다.
염·송·어
원오근(圓悟勤)이 송했다.
본래부터 맑은 본체 근원을 대했으니
들고 남이 같은 길, 이 문(門)뿐일세.
여래의 큰 해탈에 머물렀으니
손바닥의 값진 보배 건곤을 비치네.
청량화(淸량和)가 염했다.
‘하나는 들어가고 하나는 나가는데 어째서 같이 간다 하는가? 알겠는가!’하고는 주장자를 번쩍 들어 말하되 ‘사리불과 월상녀가 몽땅 내 주장자에 있으니 이를 안다면 가는 길이 어긋나지 않거니와 그렇지 못하다면 마음대로 드나들게 하리라’했다.
지해청(智海淸)이 말했다.
‘여러분이여, 돌고 도는 기미를 파악해서 대운(大運)을 관찰하면 음양의 움직임이 완전히 드러나고 요긴한 길목에 의거해서 사방에서 오는 이를 지키면 육합(六合)의 유정이 모두 갖추어진다.
그러므로 사리불이 원래 큰 지혜이건만 도리어 미혹한 무리가 되었고 월상녀는 부인이지만 완연히 장부의 기상이 있다. 말해보라. 승부는 어디에 있는가? 여러분의 마음대로 점검해 보라’하고 선상(禪床)을 치고서 내려갔다.
감상
승부는 어디에 있는가. 월상녀의 한판승이다. 사리불은 나고 드는 것만 보았지 부처와 함께 있는 열반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여자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어리석은 질문이 되는 것이다. 월상녀가 그 어리석음을 깨우쳐 준다. 부처님이 머무는 곳에 열반이 있으니 가는 곳이 어디냐가 문제가 아니다.
그대는 어디를 가는가? 사리불이 물었던 질문을 오늘의 우리가 자기 자신에게 던져 볼 수 있다. 진정한 도를 찾아가는 것이라면 그대가 가는 곳이 바로 부처님이 계신 곳이다.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비록 법당 앞에 서 있다고 하더라도 그의 마음 속에는 부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
들고 나는 것이 오직 이 한 길 뿐이요, 살고 죽는 것이 오직 이 길 뿐이다. 월상녀야말로 이 진리의 길을 깨우친 대장부이다.
최동호/고려대 국문과 교수
출처 : 淨土를 그리며...
글쓴이 : 느린 걸음 원글보기
메모 :
'선문염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禪門拈頌 12. 오온이 다 공하다(蘊空) (0) | 2018.07.08 |
---|---|
[스크랩] 禪門拈頌 11. 눈썹 쓰다듬기(撥開) (0) | 2018.07.08 |
[스크랩] 禪門拈頌 9. 약초캐기(採藥) (0) | 2018.07.01 |
[스크랩] 禪門拈頌 8. 제상(諸相) (0) | 2018.07.01 |
[스크랩] 禪門拈頌 7. 법륜(法輪) (0) | 2018.06.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