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매성취

혼침 극복 : 혼침과 도거를 극복해야 경안이 온다.

수선님 2018. 7. 8. 12:06

혼침 극복 : 혼침과 도거를 극복해야 경안이 온다.


거칠은 혼침은 잠이 오는것이고, 미세한 혼침이라야 혼침이라 할수 있다.

몸이 피곤하면 잠이 오지만 정신이 피곤해도 수면의 욕망이 생긴다.

만약 좌선 한 채로 잠자는 습관이 들면 영원히 성공할수 없다.

혼침은 마음이 적적한 상태와 비슷하지만 어느하나에 마음을 집중하지 못하고 또한 어떤 망상도 별로 없는 듯 하다.다만 혼미할뿐 심지어는 몸도 마음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이다.

혼침의 현상이 처음 생길때는 어떤때는 마치 꿈속에 있는 듯 일종의 환상이 있을수도 있다.

바꾸어 말하면 혼침은 환상은 모두 이 혼침의 상태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 의식이 분명치 않고 잠재의식만 활동하기 때문이다.

정을 닦는 사람은 혼침에 빠져들기 아주 쉬운데 만약 그것이 혼침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 정을 얻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슬픈 일이 아닐수없다.

쫑가파대사도 만약 혼침을 정이라고 생각한다면 죽은후에 축생도에 떨어질것이다.어찌조심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한바가 있다.

혼침을 극복하는 방법도 관상을 쓰는되 배꼽가운데 하나의 홍색광점이 있고 이 광점이 점차 위로 올라와 정수리에서 흩어진다고 관상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전신에 힘을 모아 소리를 지르것나, 코를 쥐고 호흡을 참았다가 참기힘들 때 코로숨을 세게 내쉬는 것도 좋다. 혹은 찬물로 목욕을 하던지 운동을 하는것도 좋다.

대개 마음이 산란하지 않으면 혼침하거나, 산란하다가 혼침하기를 계속한다.

사실 우리 인생은 이렇게 살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알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경안

산란과 혼침이 없어지면 홀연히 마음이 어느 하나에 집중되어 흔들리지 않게 되는데 이 때에는 반드시 경안의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경안현상은 어떤사람은 머리끝에서 시작하고 어떤사람은 족심에서부터 일어나기도 한다.

정수리로부터 경안현상이 시작되는 사람은 정수리가 시원해지는 느낌후에 전신이 시원한 느낌이 퍼지고 마음은 고요해지고 몸도 가볍고 부드럽게 느껴진다. 이때에는 몸이 마치 곧게 뻗은 소나무처럼 곧 바르게된다.

마음과 인식대상이 모두 분명해지고 어떤동정이나 혼침,산란의 현상도 없게 된다.

이러한 경안의 경계에 도달하면 자연히 무량한 기쁨이 생기는데 단 ,깊고 짧은 차이는 있지만 이 상태는 쉽게 사라진다.

족심부터 경안이 시작하는 사람은 먼저 뜨겁거나 혹은 찬 느낌을 느끼게되고 이것이 마치 하늘을 꿰뚫을 듯이 점차 정수리로 상승한다. 족심에서 시작된 경안현상은 정수리에서 시작된 경안현상보다 지키기도 쉽고 잘 사라지지도 않는다.

유가에서도 고요히 관찰하니 만물이 모두 스스로 존재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말하였는데 이경계는 경안속에서 체득되어 나온 것이다. 경안의 경계에 도달한후에 고요한곳에 홀로 거처하면서 더욱 수행에 노력을 하여야 한다.

만약 번잡한곳에서 이곳저곳 신경을 쓰면 수행을 지속할 수 없고 경안도 점차 소멸된다.만약 계속 노력해서 수행해 나가면 자기고 모르게 경안현상이 담박해지는데 사실상 이 현상은 경안이 소멸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경안에 머물럿기에 처음처럼 강력히 느끼지 못하는 것일뿐이다 이경안에서 쉬지않고 수행을 더하면 정력이 더욱 견고하게 된다. 이때에는 그지없이 맑고 밝은느낌을 얻고 전신의 기맥도 갖가지 변화를 일으키는데 신체가 따뜻해지고 안락해지는등 형용하기어려운 미묘한 느낌이 발생한다.

불법의 중심은 定慧의 학이다.

정을 기초삼아 정을 얻은후에 그 얻었다는 생각조차 버려야 한다.

생과멸이 소멸되어 적멸이 현전 한다는 것이다.

이때에는 몸과마음에 나타난 경계는 모두 소멸된다.

왜냐 하면 이러한 얻을 수 있는 경계는 心所가 발생한것이기 때문이다. 즉 生滅의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능엄경에 지금 비록 九次第 定을 얻어도 漏盡을 얻지 못하면 누진아라한을 이루지 못해 이 生滅變化하는 현상을 집착하여 진실한 것이라 오인한다.

만약 능히 靜相을 버리고 적멸속에 머물수가 있다면 性空의 경계가 나타나는데 이것은 소승이 목표하는 과위로서 我執을 버리고 人空에 도달한 경계이다.

여기에 대승은 소승의 공적마저 버리고 일체의 假有와 實幻의 생멸거래가 無生에서 연기하여 묘유의 用을 이룬다는 것을 관해야 한다. 최후에는 어떤경계에도 머물지 말아야 한다 비록 말은 이렇게 하지만 定이 없으면 기초가 없으므로 단지 그 이치만을 말할수있을 뿐이다.

고덕이 말하길 한척을 증득 하는 것이 일촌을 행하는 것만 못하다.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통렬히 자신을 반성해서 실천 수행을 최상으로 삼아야 한다.

 

 

 

 

 

 

 

 

 

 

무인아제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moonceo/40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