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스님 오도송
(無鼻孔心)
나고 죽음이 없는 마음
홀연히 콧구멍 없다는 말을 듣고,
비로소 삼천대천세계가 내 집임을 깨달았네.
유월 연암산 아랫길에, 나 일없이 태평가를 부르는 구나
원문
忽聞人語無鼻孔(홀문인어무비공)
頓覺三千是我家(돈각삼천시아가)
六月 巖山下路(유월연암산하로)
野人無事太平歌(야인무사태평가)
경허선사 ‘無鼻孔心’
경허선사 오도송 - 무비공심 (無鼻孔心) 해설
[무산스님의 "오도송으로 보는 한국禪" 중에서] -
선사의 법명은 성우(惺牛), 법호는 경허(鏡虛), 속성은 송씨(宋氏), 초명은 동욱(東旭), 헌종 19년(1849) 전주 자동리에서 태어났다.
9세 때 부친께서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를 따라 경기도 광주 청계사로 들어가 계허 선사에게 삭발염의하였다.
선사의 스승이신 계허 선사가 환속하면서 선사를 계룡산 동학사 만화 강백에게 천거하게 되었다. 만화 강백문하에서 일대시교(一大詩敎)와 유전(儒典), 노장(老莊)까지 두루 섭렵한 선사는 약관의 나이에 천하에 그 이름을 떨쳤다.
선사는 23세 때 동학사 강원의 강사로 추대되어 제방학인을 지도함에 학인들이 1천까지 이르렀다. 강백으로서 선사를 능가하는 강백은 당대에는 없었다고 한다. 선사께서 31세 때 여름 상경 도중 천안 인근에서 모진 폭풍우(暴風雨)를 만나 민가에 머물러 비를 피하려고 급히 어느 집 처마 밑으로 뛰어 들어갔으나 그 집 주인이 내쫓았다. 민가의 수십 집을 찾아갔지만 모두 내쫓으며 말하기를 “지금 이곳은 악성 호열자(콜레라)가 만연되어 앉아서도 죽고 서있어도 죽으니 스님도 빨리 이곳을 떠나라”는 것이었다. 그 때서야 선사는 주위를 돌아보니 시신이 널려 있었다. 이런 참혹한 현장에서 선사는 생사의 절박함을 깨달았다.
호열자가 창궐하는 마을에서 비로소 크게 대발심(大發心)을 한 선사는 발길을 되돌려 동학사로 돌아와 학인들을 해산시키고 강원을 철폐하고 선당(禪堂) 삼조연하(三條椽下)에 홀로 앉아 당나라(唐代)때 영운 지근 선사의 참할(參喝)인 ‘노사미거 마사도래( 事未去 馬事到來 : 나귀의 일이 다 끝나지도 않아서 말의 일이 왔구나)’라는 화두를 움켜잡고 용맹정진에 들어갔다.
3개월 이 지났을 때 동은이라는 선사의 시자승이 있었다. 이 시자승의 부친 이처사는 여러 해 동안 수참하여 스스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었다. 하루는 시자승의 은사인 학명 도일이 아랫마을에 내려갔다가 이 처사를 만나 잠시 다담(茶談)을 나누었는데 이 처사의 말씀이 “중이 중노릇 잘못하면 중이 마침내 소가 됩니다”고 하였다.
학명 도일이 이 말을 듣고 “중이 되어 마음을 밝게 하지 못하고 다만 신도의 시주만 받으면, 소가 되어서 그 시주의 은혜를 갚게 됩니다”고 대답하자, 이 처사가 꾸짖으며 말했다. “어찌 사문의 대답이 이렇게 꽉 막혀 도리에 맞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학명 도일이 물었다. “나는 선지(禪旨)를 잘 알지 못하여서 그러하오니 어떻게 대답하여야 옳습니까.” 이 처사가 대답했다. “어찌 소가 되어도 콧구멍 뚫을 곳이 없다고 이르지 않습니까?” 이에 학명 도일은 더 이상 대답을 못하고 동학사로 돌아왔다.
학명 도일이 선사를 찾아가 예를 갖추고 앉아서 이 처사의 말을 전하였다. 이때 ‘소가 콧구멍이 없다’는 말에 선사는 활연대오(豁然大悟)하였다. 때는 고종 16년(1879) 겨울 11월 15일 선사의 나이 31세였다.
"홀연히 콧구멍 없다는 말을 듣고,
비로소 삼천대천세계가 내 집임을 깨달았네.
유월 연암산 아랫길에, 나 일없이 태평가를 부르는 구나. "
선사의 깨침에서 말해주었듯이 선사의 생애는 결코 화려하지도 요란하지도 않았다. 쓸쓸하고 초라하기만 한 생애였다.
선사는 마을에 살았으되 집을 가진바 없었으며, 절에서도 그 흔한 주지 한번 해본 적이 없는 무소유(無所有)의 삶을 살았다. 선사의 세수 64세 법랍 55세로 갑산 웅이방 도화촌에서 홀연히 연하하였다.
■무산(경주 해회선원 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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