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보살(菩薩)(4)
그저 현재, 바로 지금 내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남을 위해 한 마디라도 일러주는 그것이 바로 포교이지, 내가 깨닫지도 못했는데 무슨 포교냐고 한다면 이것은 소승적인 발상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사실 본인 수행이 잘 안 되는 이유는 나를 위해 수행한다는 아상(我相)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수행하고, 내가 부처되겠다는, ‘내가’라는 아상 때문입니다. 아상을 녹이는 것이 수행일진대, 나 잘되자고 수행한다면 어찌 그 수행에 힘이 붙을 수 있겠습니까?
내 수행이 원만해지기 위해서는 나와 너를 가르지 않는 이타적인 포교의 원력이 있어야 합니다. 나와 너를 가르지 않고, 너의 수행, 이웃의 교화 ・포교가 바로 나의 수행과 직결된다는 당연한 믿음이 우리 불자들에게는 많이 결여되어 있음이 안타깝습니다.
이 세계를 이롭게 하고, 모든 중생을 교화하는 이타행을 통해 자리(自利),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이 보살의 사상이고, 대승불교의 실천관 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도 나는 이렇게 반야심경에 사족을 달면서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뜻 보면 신도님들 모두에게 이익 되게 하기 위해 법을 설한다고 보겠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역시 내 수행을 위해 닦아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똑같은 연기법을 설법한다고 하더라도, 오늘 설법한 연기법과 한달 전 설법한 연기법은 절대 같을 수가 없습니다. 늘 같은 연기법을 강의하더라도 나에게 다가오는 진정한 연기법의 세계는 나날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매번 법문을 하는 동시에 나는 나의 공부를 하고 실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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