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결(修心訣)(17)
글에 집착말고 참뜻을 바로 깨닫고 모든 도 닦는 사람은 이 말을 깊이 음미해서 다시는 의심으로 인해 스스로 물러나는 일이 없도록 하라. 만약 장부의
뜻을 가지고 최상의 보리를 구하는 사람이라면 이것을 버리고 어떻게 할 것인가. 결단코 글에 집착하지 말고 바로 참뜻을 깨달아서
일일이 자기에게 돌아가 근본에 계합한다면 스승없는 지혜가 저절로 앞에 나타나고 천진한 이치가 분명하여 지혜의 몸을 성취하되
타인으로 말미암아 깨닫지 않으리라.
이러한 묘한 뜻은 비록 모든 사람에 해당되긴 하나 일찍이 지혜의 종자를 심은 대승의 근기가 아니면, 능히 한 생각에 바른 믿음을
내지 못할 것이다. 한갓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비방하여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자가 허다히 많다. 그러나 믿고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한 번 귀를 스쳐 잠시라도 인연을 맺은 그 공덕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심결>에 “듣고서
믿지 않더라도 부처가 될 인연을 맺고, 배우고 이루지 못했다 하더라도 오히려 인간과 천상의 복보다 뛰어나다” 고 하였다. 이렇게만
해도 성불할 바른 인연을 잃지 않는데 하물며 들어서 믿고, 배워서 이루고, 이를 잊지 않고 수호하는 사람의 그 공덕이야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몇 천 겁을 흑암지옥에 떨어지고, 무간지옥에 들어가 온갖 고통을 받았을 것인가. 또 불도를
구하고자 해도 착한 벗을 만나지 못하여 그 얼마나 오랜 겁을 나고 죽는 바다에 빠져든 채 깨닫지 못하여 많은 악업을 지었던가.
때때로 한 번씩 생각하면 모르는 사이에 긴 한숨이 나오는데, 어찌 또 게으름을 피워 지난 날의 재앙을 다시 받겠는가. 그리고
누가 나로 하여금 지금 인생으로 태어나 만물의 영장이 되어 진리의 길을 닦도록 하였는가. 실로 눈먼 거북이 나무를 만나고, 작은
겨자씨가 바늘에 꽂힘과 같으니 그 다행함을 어찌 말로 다 하겠는가.
자기에게 돌아가 근본에 계합해야
바라건대,
과
거에 윤회하던 업을 돌이켜 보면
수심결(修心訣)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 1158~1210)의 저서
출처: Buddhapia, 김원각<시인·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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