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바라밀1 -보시바라밀 수행 (2)
무주상보시는 너와 내가 둘이 아니라는 올바른 자각이 있을 때 자연적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는 실천의 행입니다. 본래 너와 나라는 분별이 없으니 어디에 네것, 내것이 있겠으며 가고 옴이 있겠습니까? 너와 내가 둘이 아니라는 올바른 자각의 지혜가 생겨나면 동체대비심의 대자비심이 우러나오기 마련이고 서로가 둘이 아니라는
이 자각은 곧바로 무주상보시라는 실천행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무주상보시는 베풀었다는 상이 남아있지 않으므로 어떤 보답이나 과보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에 했을 뿐인 것입니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기에, 주관과 객관이, 주는자와 받는자가 둘이 아니기에 베풀고도 베풀었다는 상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배가 고프니 밥 먹고, 갈증이 나니 물 마시는 것처럼, 배 고픈 사람 있으니 공양하고,
갈증나는 사람 있으니 물을 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내가 내게 하듯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함이 없이 하는 것이 보시바라밀의 참 의미일 것입니다.
내가 필요해 스스로 옷을 사 입거나, 배고파 음식을 먹는다고 했을 때, 내가 나에게 보시했다고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내가 옷 입히고 먹였으니 내가 내게 과보를 받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일 것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 이웃의 어려움이 바로 나의 어려움과 둘이 아니라는 연기의 도리를 알기에, 당연히 나에게 하듯이 베푸는 것일 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시바라밀은 단순하게 베푸면 되는 일이 아닌, 지혜가 밝아졌을 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반대로 자꾸만 베풀고 베풀어 보시바라밀의 씨앗을 심어 놓으면 보시바라밀의 참 의미를 깨닫게 되어 지혜를 밝힐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보시바라밀은 그저 복 짓는 일이 아닌 지혜를 밝히는 깨달음의 수행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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