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 붓다의 향기

[스크랩] [반야심경] 육바라밀1 - 보시바라밀 수행 (3)

수선님 2018. 8. 12. 12:59

 

 

  

 

  

 

 

육바라밀1 - 보시바라밀 수행 (3)
 
 
보시바라밀의 실천은
‘내 것이다’라는 아상(我相)을 타파하는 방하착 수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보살에게는 ‘나다, 남이다’ 하고 나누는 분별심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중생이 괴로우면 보살도 괴롭기 마련인 것이지요.
중생이 모두 성불하는 날이 바로 보살이 성불하는 날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보살에게, ‘나다’, ‘내 것이다’, ‘내가 옳다’,
‘내 맘대로 한다’ 라고 하는 아상(我相)이 모두 비워졌기 때문입니다.
보살에게 있어 ‘나’는, 나 혼자만이 아니라
일체 중생과 둘이 아닌 존재로서의 ‘나’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보살은 베풀어도 베푼 대상과 베푼 이를 따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아상과 나와 너를 가르는 분별심이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일체가 한마음으로 ‘나’이기에 주고 받는 이가 따로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보시바라밀’인 것입니다.
근본이 이러하지만 우리들은 ‘내가 누구에게 얼마만큼’을 준다는
세 가지 상에 머물러 보시합니다.
무주상보시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청정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을삼륜청정(三輪淸淨)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보시하는 사람[施者], 보시하는 물건[施物],
그리고 보시를 받는 사람[受者]의 셋을 말하며,
이 셋이 모두 청정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누구에게, 얼마만큼의 보시를 했다는
생각을 비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중생들은 ‘나다’하는 놈이 끼여들기 때문에
작은 것을 풀고도 내가, 누구에게, 얼마의 보시를 했다는 상에 집착합니다.
이는 결국 보시를 하면서도 ‘내가’라는 상이 그 근본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보시는 유주상보시(有住相布施)입니다.
우리는 남과의 관계 뿐 아니라 부부간, 부모자식간, 형제간,
친구간에조차 이러한 상을 가지곤 합니다

  

출처 : 붓다의 향기 뜨락
글쓴이 : 여실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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