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계(菩薩戒)

수보살계법서(受菩薩戒法序) 3 - 보살계의 위대함, 받는 자세

수선님 2018. 8. 19. 11:14

수보살계법서(受菩薩戒法序) 3

 

 

問(문) 具縛凡夫(구박범부)가 根微垢重(근미구중)하니
若令受戒(약영수계)면 毀犯益多(훼범익다)요
若不觀根(약불관근)이면 返遭淪墜(반조윤추)리라


문, 번뇌의 속박에 얽매인 범부가 근기는 미약하고 업장은 무거우니
만약 그들에게 계를 받게 한다면 헐뜯고 범하는 일이 더욱 많을 것이다.
그와 같은 근기를 관찰하지도 않고 계를 받게 하면
도리어 지옥에 떨어지는 일이 발생하리라.


答(답) 只為垢重障深(지위구중장심)하야 令受佛戒(영수불계)하니
現行煩惱雖厚(현행번뇌수후)나 佛乘種子無虧(불승종자무휴)니라


답, 다만 번뇌가 무겁고 업장이 깊은 이를 위해서
그들에게 부처님 계를 받게 하는 것이다.
현재 일상생활에 드러난 번뇌가 비록 두텁고 무거우나
승(佛乘)의 종자는 줄어들거나 이지러지지 않는다.

 

 

貴聞自本有之佛性善根(귀문자본유지불성선근)과
諸佛不可思議戒之威力(제불불가사의계지위력)하고
能令佛心明朗(능영불심명랑)하고 煩惱輕微(번뇌경미)하니
設少持時(설소지시)라도 功德無量(공덕무량)이니라


스스로 본래부터 존재하는 불성이라는 훌륭한 근본과
모든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계의 위신력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설명들은 것을 소중하게 여겨야한다.
능히 그들로 하여금 불심은 밝게 빛나게 하고 번뇌는 없어지게 하니
설사 잠간 동안만 계를 가진다 하더라도 그 공덕은 한량이 없다.

 

 

纔發一念(재발일념)에 已過聲聞(이과성문)이니
諸佛挍量(제불교량)하사 羣經具載(군경구재)니라
不可以情思臆斷(불가이정사억단)으로 背佛違經(배불위경)하야
謗大之愆(방대지건)이 罪淪長劫(죄륜장겁)이니라

이러한 보살계에 대해서 겨우 한 생각만 내더라도 벌써 소승 성문의 경지는 넘어선 것이다.
그래서 모든 부처님이 그러한 이치를 헤아려서 여러 경전 곳곳에 설하여 두었다.
공연히 개인적인 좁은 소견과 억지생각으로 부처님을 등지고 경전의 가르침을 어겨가며
대승의 가르침을 비방하면 그 허물로 인하여 오랜 세월동안
지옥에 빠지는 삶을 살게 되리라.

 

 

菩薩瓔珞經云(보살영락경운)
佛言(불언)하사대 佛子(불자)야 若過去未來現在一切衆生(약과거미래현재일제중생)이
不受菩薩戒者(불수보살계자)는 不名有情識者(불명유정식자)라
畜生無異(축생무이)하야 不名爲人(불명위인)이니라
常離三寶海(상리삼보해)하야 非菩薩(비보살)이며 非男非女(비남비녀)며
非鬼非人(비귀비인)이라 名為畜生(명위축생)이며 名為邪見(명위사견)이며 名為外道(명위외도)라
不近人情(불근인정)이라하니라


보살영락경에 이렇게 되어 있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불자들이여, 만약 과거나 미래나 현재의 중생들이
보살계를 받지 아니한 사람은 생각이나 의식이 있는 사람이라고 이름 할 수 없다.
축생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사람이라고도 할 수 없다.
그들은 늘 삼보(三寶)의 바다를 떠나있기 때문에 보살도 아니며
남자도 여자도 아니며 귀신도 못된다.
이름이 축생이다. 삿된 소견이며 외도다.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 전혀 다르다.”라고 하였다.

 

 


故知菩薩戒(고지보살계)는 有受法而無捨法(유수법이무사법)이라
有犯不失(유범불실)하야 盡未來際(진미래제)니라
若有人(약유인)이 欲來受者(욕래수자)어든
菩薩法師(보살법사)는 先為解說讀誦(선위해설독송)하야 使其心開意解(사기심개의해)하야
生樂著心然後爲受(생락저심연후위수)니라


그러므로 알라. 보살계는 받는 법은 있어도 버리는 법은 없다.
설사 범하더라도 잃어버리는 일은 없다.
미래가 다하는 그 날까지 이어진다.
만약 어떤 사람이 와서 보살계를 받고자 하거든
보살계를 설하는 법사는 먼저 잘 해설하여 주고 읽고 외우게 하라.
그리고 보살계를 받는 사람의 마음을 활짝 열어주고 옛 생각이 다 풀어지게 하여
보살계에 대해서 기쁘고 즐거운 마음이 나도록 한 뒤에 받게 하라.

 

 

又復法師(우부법사)가 能於一切國土中(능어일체국토중)에
教化一人出家(교화일인출가)하야 受菩薩戒者(수보살계자)는
是法師(시법사)는 其福勝造八萬四千寶塔(기복승조팔만사천보탑)이어든
況復二人三人乃至百千人(황부이인삼인내지백천인)이리오
福果不可稱量(복과불가칭량)이니라


또 보살계를 설하는 법사가 수많은 나라 중에서
한 사람을 교화하여 출가하게 해서 보살계를 받게 한다면
이 법사는 그로 인한 복이 팔만사천 보배 탑을 쌓은 공덕보다도 훨씬 수승하다.

그런데 하물며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나 내지 백 명 천명에게
보살계를 받게 하는 것이겠는가.
그 법사의 복덕의 결과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其法師者(기법사자)는
夫婦六親(부부육친)이 得互為師(득호위사)하야 受其戒者(수기계자)하야
入諸佛界菩薩數中(입제불계보살수중)하야 超過三劫生死之苦(초과삼겁생사지고)니라
是故(시고) 應受有而犯者(응수유이범자)를 名爲菩薩(명위보살)이라
勝無受而不犯(승무수이불범)이니라
有犯名菩薩(유범명보살)이요 無犯名外道(무범명외도)니라


보살계를 설하는 법사는
부부와 육친들이 서로 서로 스승이 되고 제자가 되면서 계를 받아서
여러 부처님 세계의 보살 숫자 중에 들어가리라.
그래서 삼겁(三劫)이라는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세월의 생사의 고통을 뛰어넘게 되리라.
그러므로 응당 보살계를 받은 것이 있어서 범하게 되는 이를 보살이라 한다.
보살계를 받지 못하고 범할 것도 없는 사람보다는 훨씬 수승하리라.
계를 범할 것이 있는 사람을 보살이라 하고 범할 것이 없는 사람을 외도라 한다.

 


 

 

 

 

 

 

 

무인아제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moonceo/2041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