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暗록)> 제52칙은 조주의 돌다리(石橋)에 대한 질문을 다음과 같이 싣고 있다.
어떤 스님이 조주화상을 찾아와서 말했다. “조주의 돌다리(石橋)에 대하여 우러러 사모한지 오래 되었는데, 막상 와서 보니 통나무 다리뿐이군요” 조주화상이 말했다. “그대는 통나무 다리만 보았을 뿐 돌다리(石橋)는 보지 못했군!” 스님이 질문했다. “어떤 것이 조주의 돌다리(石橋) 입니까?” 조주화상이 대답했다. “나귀도 건너고 말도 건너지”
擧. 僧問趙州, 久響趙州石橋, 到來只見略. 州云, 汝只見略, 且不見石橋. 僧云, 如何是石橋. 州云, 渡驢渡馬.
본칙의 공안은 〈조주록〉 중권과 〈전등록〉 제10권 조주전에 전하고 있다. 조주종심(778 ~897)은 〈벽암록〉 9칙에 조주 동서남북의 문에도 등장한 유명한 선승이다. 〈전등록〉에는 위의 선문답에 이어서 다음의 질문이 첨가되어 있다. “스님이 어떤 것이 통나무 다리 입니까” 라고 질문하자, 조주화상은 “사람마다 각각 따로 건넌다(度)”라고 대답하고 있다. 여기서 ‘건넌다(度)’라는 말은 다리가 사람과 나귀, 말 등이 건너간다(渡)는 의미뿐만 아니라 이곳(사바세계)에서 저곳(열반)의 경지로 구제(渡)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는 사실이 명백하다.
또 〈조주록〉에는 본칙의 공안과 똑같이 스님이 “어떤 것이 조주의 돌다리 입니까”라고 질문하자, 조주화상은 “건너오게, 건너와!”라고 대답하고 있다.
어떤 스님이 조주화상을 찾아와 “조주의 돌다리(石橋)에 대하여 오랫동안 우러러 사모했었는데, 막상 와서 보니 뭐야! 통나무 다리뿐이군!” 이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우러러 사모했다는 말로 구향(久響)은 구향(久嚮)이 맞다. 〈무문관〉 제28칙에 덕산이 용담선사를 찾아가서 “오랫동안 용담을 사모(久響龍潭)하고 찾아갔는데, 연못도 없고 용도 보이지 않네”라는 덕산의 말도 같은 의미이다. 원오는 ‘평창’에서 “하북성 조주 땅에는 돌다리(石橋)가 있었는데, 이 다리는 이응(李膺)이 만든 것이라고 하며, 지금까지 천하에 유명하다. 약작(略)이란 외나무다리를 말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종심화상이 거주한 조주의 관음원은 조주성의 동쪽에 있는데, 조주의 돌다리를 건너 10리쯤 떨어진 곳이다. 석교(石橋)로 유명한 곳은 천태산과 남악과 조주의 돌다리 세 곳이다.
질문한 스님은 유명한 장소인 조주의 돌다리를 항상 우러러 사모하고 있었는데 와서 직접 확인해 보니 널판자 하나를 걸쳐놓은 다리 아닌가. 널판자 다리를 비유하여 조주화상을 비판하고 있는 말이다. 즉 조주화상은 안목이 뛰어나고 도가 높은 선지식으로 천하에 유명하여 항상 존경하고 사모했었는데, 찾아와서 직접 보니까 ‘볼품없이 늙고 메마른 영감이 아닌가’ 라는 의미를 내포한 비판의 일침을 내뱉고 있는 말이다. 원오는 “그래도 호랑이 수염을 잡아당기는 사람이 있다”고 착어하고 있는 것처럼, 조주화상을 상대하여 거침없이 비판할 수 있는 이 스님의 용기를 칭찬하면서, 그러나 자칫 잘못하다가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아주 위험에 직면한 사람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조주화상은 “그대는 조주의 외나무다리만 보았을 뿐, 진짜 조주의 돌다리(石橋)는 보지 못했다” 라고 말했다. ‘눈으로 보이는 널판자의 조주 다리만 보고, 늙어빠진 조주를 친견하고도 조주화상의 진수인 지혜작용을 펼치는 참된 법신(法身)을 친견하지 못하고 있군’ 즉 그대는 눈과 귀로 보고 듣고, 견문각지(見聞覺知)하는 것만을 마음이라고 믿고 중요한 본래의 불심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는 말이다. 원오는 “역시 조주는 이러한 스님을 상대하는 수단이 노련하다”고 착어했다. 마치 늙은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노는 것처럼, 조주의 접화 수단은 너무나 노련하기 때문에 자신의 몸을 먹이로 제시하여 그 스님을 낚아 올리고 있다.
즉스님은 “어떤 것이 조주의 돌다리(石橋) 입니까?”라고 다그치며 질문한 것은 원오의 착어에도 언급한 것처럼, 조주화상이 던진 낚시에 걸린 것이다. 사실 질문한 스님은 조주의 돌다리와 널판자다리, 두 가지 다리(사물)로 나누어 대립시키고 있는 것부터 커다란 결함을 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조주화상은 “조주의 돌다리는 나귀도 건너고, 말도 건너지”라고 태연하게 대답하고 있다. 조주의 돌다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언제나 수많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짐승도 마차도 모두 왕래하며 다니는 다리이다. 조주의 돌다리는 어떠한 사람이나 마차나 짐승이 밟고 지나가도 본래 여여한 그대로 무심한 경지에서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조주의 마음도 무심의 경지에서 평상심으로, 일체의 차별심을 일으키지 않고, 마치 돌다리와 같은 경지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는 말이다.
황벽의 설법에 ‘무심한 마음’을 허공과 갠지스 강의 모래에 비유하여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갠지스 강의 모래(恒河沙)라는 말은 경전에 자주 나오고 있는데, 그것에 대하여 부처님은 설법한다. 이 모래는 부처나 보살이나, 제석천이나 범천 등의 천인이 그 위를 밟고 걸어도 별달리 고맙고 감사하며 기쁘게 생각하지도 않고, 또한 소나 양, 곤충 벌레들이 밟고 지나가도 달리 성내거나 화내지 않는다. 진귀한 보물이나 값비싼 향수도 욕심내지 않으며, 똥이나 오줌, 더러운 물질도 싫어하지 않는다. 이 갠지스 강의 모래 같은 마음을 무심(無心)의 마음이라고 한다.”
“조주의 돌다리는 나귀도 건너고 말도 건넌다”라고 말한 것은 무심의 경지에서 묵묵히 하심행을 하는 보살이며, 부처가 중생과 함께하는 동사섭으로 철저하게 돌다리와 같고, 갠지스 강의 모래와 같은 대승보살의 마음이라고 설한 것이다.
〈화엄경〉 정행품에 다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한다. “만약 교량을 보면 마땅히 원력을 세워라 중생을 위하여 불법의 다리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을 건너게 하여 망념을 쉬도록 하리라고.” 중생의 제도하는 보현보살의 정신을 다리를 건너 열반의 경지를 체득하도록 하는 자비로 실행할 것을 설하고 있다. 조주의 돌다리를 밟고 지나가는 것은 조주의 본래 부처(古佛)를 친견하는 것이며, 중생심의 사바세계에서 깨달음의 경지로 인도되는 인연인 것이다.
〈조당집〉 제7권에 설봉은 행각하면서 천태산의 돌다리(石橋)를 지나면서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불도를 배우고 수행을 하기에 힘이 충분치 못하거든, 부디 이 몸을 끌고 험한 길을 걸어라. 돌다리(石橋)를 한차례 지나고 난 뒤에 허망한 이 몸이 다시 나지 않는다.”
설두화상은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읊고 있다. “고고하게 위세를 부리지 않지만 도는 드높네.” 조주화상이 사람들을 지도하는 방법은 임제나 덕산처럼, 고함이나 방망이를 사용하지도 않고, 사람들이 접근하기 힘든 수단을 사용하지도 않고, 일상생활의 평범한 대화로 말하고 있지만, 그의 평범한 말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오르기 힘든 천 길의 벼랑이 있다. 설두는 이 한 마디로 조주의 위대한 교화를 찬탄하고 있다. “바다에 들어가면 반드시 큰 자라를 낚아야지.” 열자(列子)에 용백국(龍伯國)이라는 곳에 큰 사람이 한 번의 낚시에 여섯 마리의 자라를 낚아 돌아간다는 고사를 토대로 읊은 것인데, 바다에서 낚시를 하려면 피라미나 새우같은 잡어를 낚아서는 안 된다. 조주화상이 불법의 대해(大海)에서 사람을 접견하는 것은 한마디의 낚시로 큰 자라를 잡는 것처럼, 출격 대장부를 낚으려고 한 것이라고 조주의 수단을 칭송한 말이다.
“우습다. 같은 시대의 관계(灌溪)스님이여”
관계스님은 임제의 법을 이은 지한(志閑)선사로 조주와 동시대의 인물이다. ‘평창’에 인용한 것처럼, 어떤 스님이 관계화상을 침문하고 본칙의 내용과 똑같은 질문을 하고, “어떤 것이 관계입니까?” 질문하자, 관계화상은 “쏜살같은 급류라고말했다. 자신의 지혜작용은 “쏜살같은 급류”라고 말할 줄은 알았지만, 부질없는 헛수고였네.” 왜 조주화상처럼, 나귀도 건너고 말도 건넌다고 평탄한 말로 본지풍광을 들어내지 못했을까? 동시대의 관계스님의 안목을 비판하며 조주의 경지를 칭찬하고 있다.
성본스님/동국대 불교문화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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