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칙
남전(南泉)에게 어떤 중이 물었다.
“스님께서 장실(丈室)로 돌아가시면 무엇으로 지도하십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지난 번 삼경(三更)에 소를 잃고, 새벽에는 불을 잃었느니라.”
염·송·어
보령용 (保寧勇)이 송했다.
“지난 밤 삼경에 소를 잃고
새벽에 일어나니 불마저 잃었네.
허리띠 안 매고 신도 안 신고
세수도 안하고 모자도 안 썼네.”
열재(悅齋)거사가 송했다.
“소와 불을 잃은 것이 무슨 종(宗)인고.
만가닥 개울물은 동쪽으로 향한다.
진짜 도적은 지금 어디에 있는고!
강 위의 석양이오, 나루터의 바람이다.”
육왕심(育王諶)이 염했다.
“잃기는 잃었으나 누군가가 보았다.
누군가 보았다면 잃었다 하겠는가.”
묘지곽(妙智廓)이 상당하여 말했다.
“남전은 정수리 위에 바른 눈을 갖추고, 팔꿈치 위에 신령스런 부적을 지녔다. 부싯불과 번갯불 틈에 눈치 채고 받아 지니나, 벌써 일곱이 틀리고 여덟이 틀렸다. 여산(廬山)은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 홀연히 어떤 이가 묻기를 ‘스님! 방장실로 돌아가시면 무엇으로 사람을 지도하시겠습니까?’ 할 때 그 소리가 사라지기 전에 주장자를 들어 때려서 내쫓으리라. 왜 그런고? 한 방망이 끝에는 눈이 있어 일월(日月)같이 밝으니, 순금을 알려면 불 속에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감상
흙덩이와 순금은 불덩이 속에서 구별된다. 삼경에 소를 잃고 새벽에 불을 잃었으니 긴요한 것을 다 잃고 나서 무엇으로 지도할까. 방망이 끝에 일월같이 밝은 눈이 있으니 그 방망이로 후려쳐서 지도한다는 것인가.
육왕심의 말대로 긴요한 것을 다 잃었다 하더라도 누군가 그것을 보았다면 잃은 것이 아니니 그것으로 지도한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열재거사의 송대로 진짜 도둑은 누구일까, 진짜 도둑은 방장실에서 아무 것도 지도한 것이 없도록 스승의 가르침을 빼앗아 간 자일 것이다.
캄캄한 새벽에 불을 잃었으니 세수도 못하고 의관도 갖출 수 없는 스승의 마음을 빼앗은 자가 진짜 도둑이요 그가 깨달음을 얻는 자이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게 되었다면 더 이상 지도할 것도 없는 스승이 된다. 모든 것을 다 잃어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을 때 진짜 도둑도 되고 진짜 방장도 된다고 남전은 가르친 것이다.
최동호/고려대 국문과
출처 : 淨土를 그리며...
글쓴이 : 느린 걸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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