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칙
대매(大梅)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서쪽에서 오신 것은 뜻이 없나니라.”
이에 염관(鹽官)이 듣고 말했다. “한 관(棺)에 두 개의 송장이구나.”
현사(玄沙)가 다시 이 말을 듣고 “염관이 분명 작가(作家)로구나.”
염·송·어
이에 염관(鹽官)이 듣고 말했다. “한 관(棺)에 두 개의 송장이구나.”
현사(玄沙)가 다시 이 말을 듣고 “염관이 분명 작가(作家)로구나.”
염·송·어
열재(悅齋) 거사가 송했다.
“어디서 만나거나 한 잔의 차,
동쪽 집 표주박이 서쪽 집 것 닮았네.
분명한 말, 평생토록 알아듣지 못하고
다른 이의 눈에 티 들까 걱정만 한다.”
설두(雪竇)가 염했다.
“세 개가 모두 무방하느니라.”
황룡신(黃龍神)이 이 이야기에 이어 설두의 염을 듣고 말했다. “설두가 말한 세 개란 것이 죽은 사람인가? 산 사람인가? 살지도 않고 죽지도 않은 사람인가? 눈이 있는 이는 가려 보라.”
원오근(圓悟勤)이 이 이야기에 이어 설두의 염을 듣고 말했다. “한 꾸러미에 꿰어야겠구나.”
감상
달마는 왜 서쪽에서 왔을까. 선가에서 되풀이되는 질문이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는가’라는 질문과 마찬가지다. 서쪽에서 온 뜻이 있다 없다 수많은 선사들이 수많은 답변을 해 놓았다.
대매는 마도의 제자답게 이 질문을 파해버렸다. 조사가 서쪽에서 온 것은 뜻이 없다. 얼마나 파격적인 답변인가. 이 질문을 한 스님은 큰 기대를 가지고 물었으나, 이 질문 자체가 부정당하자 크게 놀랐을 것이다.
이에 염관이 나서서 이 두 사람을 ‘한 관의 두 송장’이라고 몰아부친다. 질문하는 자도 어리석고 대답하는 자도 어리석다는 뜻이리라. 현사가 이 말을 듣고 염관을 다시 평가한다. 염관이야말로 진짜 깨달은 자라는 뜻이다.
그러나 설두는 이 세 사람 대매와 염관, 그리고 현사의 말이 모두 옳다고 한다. 대매의 답이 틀린 것이 아니란 말이다. 설두의 염을 듣고 원오근이 말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셋을 한 꾸러미에 모두 꿰어야 한다는 뜻이다. 있다 하면 없고, 없다 하면 있는 것이 달마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리라.
이 뜻을 잘못 꿰면, 한 관 세 송장이 되리니 살지도 죽지도 않는 자가 이 화두를 붙들고 있으니, 살아 있는 자는 모름지기 이 화두를 참구하라.
최동호/고려대 국문과 교수
출처 : 淨土를 그리며...
글쓴이 : 느린 걸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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