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칙
반산(盤山)이 설법할 때 말하되 “삼계(三界)에 법이 없으니 어디서 마음을 구하며, 사대(四大)가 본래 공하거늘 부처가 어디에 머무르겠는가!” 하였다.
염·송·어
설두현(雪竇顯)이 송했다.
“삼계에 법이 없으니
어디서 마음을 구할꼬 하니
백운으로 일산(日傘)을 삼고
흐르는 개울물로 거문고를 삼는다.
한 곡조, 두 곡조 아는 이 없으니
밤비 지난 뜰 앞의 못에 가을물이 깊구나.”
법진일(法眞一)이 송했다.
“삼계에 법이 없으니
어디서 마음을 찾을꼬?
낮에는 밝고 밤에는 어두우며
산은 높고 바다는 깊도다.
삼계가 본래 마음에서 생긴 것이니
마음이 없어지면 삼계가 절로 없어진다.”
자항박(慈航朴)이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듣고 말했다.
“반산의 그런 설법이 마치 자기의 상투를 끌고 관청으로 가는 것 같다. 산승이 오늘 여러분을 위해 설파하리라. 삼계(三界)에 법이 없으니 어디서 마음을 구할꼬. 하늘은 높고 땅은 두텁고, 바다는 넓고 산은 깊도다. 사대(四大)가 본래 공하니 부처가 어디에 의해 머무르는가? 머리를 냈다 들었다 하면서도 인도와 중국을 왕래한다. 옛 사람들은 있는 것을 없다하여 여러 사람들의 눈동자를 바꾸어 놓았거니와 산승은 없는 것을 있게 하여 여러분의 콧구멍을 꿰리라. 여러분! 달게 여기는가! 만일 장기(長技)가 있거든 부탁하노니 나와서 드러내어 여러분 앞에서 증명케 하라. 만일 그렇지 못하거든 공연히 집비둘기를 따라다니다 그물에 걸려 몸을 상하지 말라.”
감상
삼계에 법이 없으니 어디서 법을 찾을까.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 어디에도 법이 없네. 지(地), 수(水), 화(火), 풍(風) 사대가 본래 공하니 어디에 부처가 머무를까. 법도 없고 부처도 머무르지 못하니 모든 것이 공하도다.
법진일은 송한다. 삼계가 마음에서 생긴 것이니 마음이 없어지면, 삼계가 절로 없어진다. 설두의 기개는 한산과 같다. 백운으로 일산 삼고 개울물로 거문고를 삼는다. 삼계를 벗어나 법없는 법에서 살기 때문이다. 가을비에 못물이 깊으니 무어라 사대에 집착하랴.
마음이 있다 없다 시비를 가리지 말라. 공연한 시비에 걸려들면, 집비둘기 따라다니다 그물에 걸려 몸만 상한다.
최동호/고려대 국문과 교수
출처 : 淨土를 그리며...
글쓴이 : 느린 걸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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