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법계품(入法界品) ▣
51. 덕생 동자와 유덕 동녀(德生童子 有德童女)
덕생동자와 유덕동녀의 설법을 듣다
“선남자여, 우리들은 보살의 해탈을 얻었으니 이름이 여환주(如幻住)이니라. 이 해탈을 얻었으므로 모든 세계가 환술처럼 머무는 줄로 보나니 인연으로 생긴 탓이라. 또한 모든 세계가 다 환술처럼 머무나니 생각이 뒤바뀌고 마음이 뒤바뀌고 소견이 뒤바뀌어 무명으로 나타나는 탓이니라.”
누각의 장엄
동자와 동녀는 자기의 해탈을 말하고는 부사의한 선근의 힘으로써 선재동자의 몸이 부드럽고 빛나고 윤택하게 하고 말하였다.
“선남자여, 이 남쪽에 해안(海岸)이라는 나라가 있고 거기 대장엄(大莊嚴)동산이 있으며, 그 안에 광대한 누각이 있으니 이름은 비로자나 장엄장이라. 보살의 선근의 과보로 좇아 생겼으며, 보살의 교묘한 방편으로 생겼으며, 보살의 복덕과 지혜로 생겼느니라. 선남자여, 부사의한 해탈에 머무른 보살은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중생을 위하여 이러한 경계를 나타내며, 이러한 장엄을 모으는 것이니라.”
미륵보살에게 묻기를 권유하다
“그대는 그에게 가서 ‘보살이 어떻게 보살의 행을 행하며, 어떻게 보살의 도를 닦으며, 어떻게 보살의 계율을 배우며, 어떻게 보살의 마음을 깨끗이 하며, 어떻게 보살의 서원을 내며, 어떻게 보살의 도를 돕는 거리를 모으며, 어떻게 보살의 머무는 지위에 들어가며, 어떻게 보살의 바라밀다를 만족하며, 어떻게 보살의 생사 없는 법의 지혜[無生法忍]를 얻으며, 어떻게 보살의 공덕의 법을 갖추며, 어떻게 보살 선지식을 섬기는가’를 물으라.
왜냐하면 선남자여, 저 보살 마하살은 모든 보살의 행을 통달하였으며, 모든 중생의 마음을 알고 그 앞에 나타나서 교화하고 조복시키며, 저 보살은 모든 바라밀다를 이미 만족하였고, 모든 보살의 지위에 이미 머물렀고, 모든 보살의 지혜[忍]를 이미 증득하였고, 모든 보살의 지위에 이미 들어갔고, 구족한 수기 주심을 이미 받았고, 모든 보살의 경계에 이미 이르렀고, 모든 부처님의 신통한 힘을 이미 얻었고, 모든 여래가 온갖 지혜인 감로의 법물로 정수리에 부음을 받았느니라.
선남자여, 저 선지식은 그대의 선근을 윤택케 하고, 그대의 보리심을 증장케 하고, 그대의 뜻을 견고케 하고, 그대의 착한 일을 더하게 하고, 그대의 보살의 뿌리를 자라게 하고, 그대에게 걸림 없는 법을 보이고, 그대를 보현의 지위에 들어가게 하고, 그대에게 보살의 원을 말하고, 그대에게 보현의 행을 말하고, 그대에게 모든 보살의 행과 원으로 이룩한 공덕을 말하리라.”
선지식이 하는 일
“무슨 까닭인가. 선남자여, 선지식은 모든 장애를 깨끗이 하며, 모든 죄를 소멸하며, 모든 어려움을 없애며, 모든 악한 짓을 그치게 하며, 무명의 캄캄한 밤을 깨뜨리며, 모든 소견의 견고한 옥을 부수며, 생사의 성에서 나오게 하며, 세속의 집을 버리게 하며, 마의 그물을 찢으며, 괴로운 화살을 뽑으며, 무지하고 험난한 곳을 여의게 하며, 삿된 소견의 벌판에서 헤어나게 하며, 모든 존재의 강을 건너게 하며, 모든 삿된 길을 여의게 하느니라.
또한 보리의 길을 보여 주며, 보살의 법을 가르치며, 보살의 행에 편안히 머물게 하며, 온갖 지혜로 나아가게 하며, 지혜의 눈을 깨끗하게 하며, 보리심을 자라게 하며, 크게 가엾이 여김을 내며, 묘한 행을 연설하며, 바라밀다를 말하며, 나쁜 동무를 배척하며, 모든 지위에 머물게 하며, 모든 참음을 얻게 하며, 모든 선근을 닦아 익히게 하며, 모든 도 닦는 기구를 장만케 하며, 모든 큰 공덕을 베풀어 주느니라.
또한 갖가지 지혜의 자리에 이르게 하며, 기뻐서 공덕을 모으게 하며, 뛰놀면서 모든 행을 닦게 하며, 깊고 깊은 이치에 들어가게 하며, 뛰어나는 문을 열어보이게 하며, 나쁜 길을 막아버리게 하며, 법의 광명으로 비추게 하며, 진리[法]의 비로 윤택케 하며, 모든 의혹을 소멸케 하며, 모든 소견을 버리게 하며, 모든 부처님의 지혜를 자라게 하며, 모든 부처님의 법문에 편안히 머물게 하느니라.”
선지식은 이와 같다
“선남자여, 선지식은 어머니와 같으니 부처의 종자를 내는 연고이며, 아버지와 같으니 광대하게 이익케 하는 연고이며, 유모(乳母)와 같으니 보호하여 나쁜 짓을 짓지 못하게 하는 경고이며, 스승과 같으니 보살의 배울 것을 보여주는 연고이며, 좋은 길잡이와 같으니 바라밀다의 길을 보여주는 연고이며, 좋은 의사와 같으니 번뇌의 병을 치료하는 연고이며, 설산과 같으니, 온갖 지혜의 약을 자라게 하는 연고이며, 용맹한 장수와 같으니 모든 두려움을 제거하는 연고이며, 강을 건네주는 사람과 같으니 생사의 빠른 물에서 나오게 하는 연고이며, 뱃사공과 같으니 지혜의 보배섬에 이르게 하는 연고이니라. 선남자여, 항상 이렇게 바른 생각으로 선지식을 생각해야 하느니라.”
선지식을 섬기는 마음
“또한 선남자여, 그대가 모든 선지식을 받자와 섬기는 데는 땅과 같은 마음을 내야 하나니 무거운 짐을 지어도 고달프지 않은 연고이며, 금강과 같은 마음을 내야 하나니 뜻과 소원이 견고하여 깨뜨릴 수 없는 연고이며, 철위산과 같은 마음을 내야 하나니 모든 괴로움으로 요동칠 수 없는 연고이며, 시중하는 사람과 같은 마음을 내야 하나니 시키는 일을 모두 순종하는 연고이며, 제자와 같은 마음을 내야 하나니 가르치는 일을 어기지 않는 연고이니라.
또한 하인들과 같은 마음을 내야 하나니 여러 가지 일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 연고이며, 어머니 봉양함과 같은 마음을 내야 하나니 여러 가지 괴로움을 받아도 고달프다 하지 않는 연고이며, 머슴살이 같은 마음을 내야 하나니 시키는 일을 어기지 않는 연고이며, 거름치는 사람과 같은 마음을 내야 하나니 교만을 버리는 연고이며, 익은 곡식과 같은 마음을 내야 하나니 고개를 숙이는 연고이며, 양순한 말과 같은 마음을 내야 하나니 무거운 짐을 운반하는 연고이니라.
길들은 코끼리 같은 마음을 내야 하나니 항상 복종하는 연고이며, 수미산 같은 마음을 내야 하나니 흔들리지 않는 연고이며, 좋은 개와 같은 마음을 내야 하나니 주인을 해하지 않는 연고이며, 전다라(栴茶羅) 같은 마음을 내야 하나니 교만함을 떠난 연고이며, 거세한 소와 같은 마음을 내야 하나니 가고 오는 데 게으르지 않는 역고이며, 교량과 같은 마음을 내야 하나니 건네주면서도 고달픈 줄 모르는 연고이며, 효자와 같은 마음을 내야 하나니 기색을 받들어 순종하는 연고이며, 왕자와 같은 마음을 내야 하나니 내리는 조치를 따라 행하는 연고이니라.”
선지식을 비유하면 이와 같다
“또 선남자여, 선지식은 착한 뿌리를 자라게 하나니 마치 설산에서 약풀이 자라는 것 같느니라. 선지식은 부처님 법의 그릇이니 마치 바다가 여러 강물을 받아들이는 것 같느니라. 선지식은 공덕이 나는 곳이니 마치 바다에서 여러 가지 보배가 나는 것 같느니라.
선지식은 보리심을 깨끗하게 하나니 마치 맹렬한 불이 진금을 단련하는 것 같느니라. 선지식은 세간법에서 뛰어나나니 마치 수미산이 큰 바다에서 솟아나는 것 같느니라.
선지식은 세상법에 물들지 않나니 마치 연꽃이 물에 묻지 않는 것 같느니라. 선지식은 모든 나쁜 것을 받지 않는 것 같느니라.”
선지식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익
“선남자여, 중요한 것을 말하는 보살 마하살이 만일 선지식의 가르침을 따르면 열 곱 말할 수 없는 백천억 나유타 공덕을 얻으며, 열 곱 말할 수 없는 백천억 나유타 깊은 마음을 깨끗이 하며, 열 곱 말할 수 없는 백천억 나유타 보살 근기를 기르며, 열 곱 말할 수 없는 백천억 나유타 보살의 힘을 깨끗이 하며, 열 곱 말할 수 없는 백천억 아승지 장애(障碍)를 끊으며, 열곱 말할 수 없는 백천억 아승지 마(魔)의 경계를 초월하며, 열 곱 말할 수 없는 백천억 아승지 법문에 들어가며, 열 곱 말할 수 없는 백천억 아승지 도를 돕는 일을 만족하며, 열 곱 말 할 수 없는 백천억 묘한 행을 닦으며, 열 곱 말할 수 없는 백천억 아승지 킁 원을 내게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다시 간략히 말하거니와 모든 보살의 행과 모든 보살의 바라밀다와 모든 보살의 지위와 모든 보살의 법지혜와 모든 보살의 다라니문과 모든 보살의 삼매문과 모든 보살의 신통한 지혜와 모든 보살의 회향과 모든 보살의 서원과 모든 보살의 불법을 성취하는 것이 다 선지식의 힘을 말미암나니, 선지식으로 근본을 삼으며, 선지식을 의지하여 생기며, 선지식을 의지하여 뛰어나며, 선지식을 의지하여 자라며, 선지식을 의지하여 머물며, 선지식이 인연이 되고 선지식이 능히 발기하느니라.”
선재동자가 예배하고 물러나다
이 때 선재동자는 선지식의 이러한 공덕이 한량없는 보살의 묘한 행을 열어 보이고 한량없이 광대한 부처님 법을 성취함을 듣고, 기뻐 뛰놀면서 덕생 동자와 유덕 동녀의 발에 엎드려 절하고 수 없이 돌고 은근하게 앙모하며 하직하고 물러갔다.
♧부처님께 복종하라
개체적 자아에서 진리의 자아로 가고자 한다면 부처님께 복종하여야 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부처님께 맡겨 놓는 것은 곧 자기완성의 첫걸음입니다. 불교에서, 특히 한국 불교에서는 복종의 의미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모두가 자신을 돌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일반적 중생) 자신을 어떻게 돌보는지 모릅니다. 어떻게 하여야 참 자기를 돌볼 수 있는 지를 가르친 스승이 없다는 말이 됩니다. 부처님에게 복종하는 것은 자기 탐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자기 발견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복종은 '나(我)라는 생각'을 완전히 지워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선사(禪師)들은 나를 버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 나를 버리라는 것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행위를 가르칠 때에는 반드시 그 방법도 제시되어야 합니다. 나는 없는 존재요, 오직 부처님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파악해야 합니다. 무아(無我)라면 곧 '내가 없음'입니다. 내가 없다는 것은 곧 그것은 절대적인 그 무엇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절대적인 것이 없다'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불교를 그렇게 가르친 데에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내가 없는 그 자리에 절대자가 있습니다. 부처님이 바로 절대자입니다. 부처님을 불교에서 '진리(眞理)'라는 말로도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그 진리(眞理)는 절대자입니다. 절대로 변질 될 수 없는 완벽한 자, 그는 바로 진리요, 부처님입니다. 그러한 진리인 부처님께 복종하는 자는 자신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복종이라는 행위 자체가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나를 부처님에게 고정시켜 움직일 수 없게 만든다면, 근원적으로 티끌 같은 번뇌를 없앨 수 있습니다.
♧복종하는 자는 죄업이 소멸된다.
화엄경이나 금강경 같은 데에서 복종이라는 말로 번역된 것은 없지만 복종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말한 구절은 경전에 아주 흔해 빠진 것입니다. 즉 '내가 없다'라는 말입니다. 물아(物我)가 비어야 곧 '깨침'을 이룬다는 가르침은 나를 내던져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나를 내던지고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까. 아무런 대책이 없이 나를 버리라고 한다면 그것은 진리에로의 안내가 아닙니다. 복종이란 주객을 초월해야 합니다. 부처님과 나와의 이분화된 것이 아니라 완전히 합일(合一)된 것을 복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에게 복종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부처님과 하나가 된 것입니다.
① 나와 부처님이 분리되어 부처님 따로, 내가 따로 있다고 한다면 그런 사
람은 아직 성공을 거둘 수 없습니다.
② 자기 일생의 모든 것을 그리고 그 몸과 마음을 완전히 부처님께 복종한다는 결의가 차 있다면 그런 사람은 '샘이 없는' 선근(善根)을 짓습니다.
③ 부처님은 내가 복종해야 할 응공(應供)이며, 가치이며, 부처님은 내가 있어야 할 소례(所禮)입니다.
④ 부처님은 절대적 존재이므로〔實相〕상주법계(常住法界)하며, 자비무한(慈悲無限)이므로 정변지입니다.
화엄경백일법문(華嚴經百日法門) -장산 저- 불광출판부 1999
'화엄경-장산스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입법계품(入法界品)(10) (0) | 2018.09.02 |
---|---|
[스크랩] 입법계품(入法界品)(9) (0) | 2018.09.02 |
[스크랩] 입법계품(入法界品)(7) (0) | 2018.08.26 |
[스크랩] 입법계품(入法界品)(6) (0) | 2018.08.26 |
[스크랩] 입법계품(入法界品)(5) (0) | 2018.08.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