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바라밀3 - 인욕바라밀 수행 (2)
108배, 1080배, 3000배를 하면서도 참 쉽고 재미있어서 하는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육신이 너무 고되고 어려우니 수행인 것입니다. 수행이란 몸뚱이 착을 거스르는 것이지, 몸뚱이 착심, 아상이 시키는대로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힘들고 고되야 수행인 것입니다. 3000배를 할 때라도 처음 500배 정도에는 ‘내가 수행한다’는 아상 때문에 참 쉽고 그런대로 견딜만 합니다. 한 1000배, 2000배 정도 되면 정말 하기 싫고 미칠것만 같습니다. 그 마음 잘 인욕하여 아상을 비우고, 몸뚱이 착심을 잘 다스려야 그 때부터 수행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인욕바라밀의 수행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연기(緣起)라는 존재의 실상을 올바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나’라고 했을 때 이것은 다만 연기되어진 인연화합의 산물일 뿐임을 알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나다’ 하는 집착을 가지게 되며, 내가 원하는대로 되지 않았을 때 화를 내고 성을 내게 되는 것입니다.
‘나다’ 하는 상이 없다면 누가 화를 낼 것입니까? 화를 내고 있는 주체가 바로 ‘나’인 것입니다. 화가 날 때 그 마음을 진실로 잘 다루기 위해서는 ‘나다’ 하는 상을 놓아버려야 합니다. 화나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그 마음을 놓았을 때 성내는 마음은 이내 고요해 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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