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식30송 (론서)

[스크랩] 혜거스님 유식 30송 강의 제 12 강

수선님 2018. 9. 2. 12:39

< 혜거스님 유식30송 > 제 12 강

 

제 17 송

是諸識轉變 分別所分別

由此彼皆無 故一切唯識


이 모든 식(識)이 전변(轉變)하기 때문에 분별(分別)과 분별할 것[所分別]이 있다. 차(此)인 주관과 피(彼)인 객관이 모두 존재하지 않으므로 일체가 유식(唯識)인 것이다.


모든 식(識)은 8개의 식이며 8개의 식이 전변해서 나타나는 것은 아(我)·법(法)·종종상(種種相)이다. 종종상(種種相)은 일체만법이니 일체만법은 실(實)이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식(識)에 의해서 존재한다. 만법이 비록 얽혀서 무한하지만 모두 식(識)이 전변해서 존재하고, 식(識)이 전변해서 만법을 존재하게 하지만 모두 연생(緣生)에 불과한 것이다. 법계(法界)는 실로 식(識)의 전변(轉變)으로 연생(緣生), 연멸(緣滅)하므로 무자성(無自性)이라 하고 환유(幻有)라 하는 것이다.

시제식전변(是諸識轉變) : 전변(轉變)이란 선전후변(先轉後變)의 뜻으로 주관의 식을 전(轉)하여 객관의 경(境)을 이루어 일체만법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니 이렇게 하는 주체가 유식이요, 유식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전변에는 3종의 뜻이 있다.

① 변현의(變現義) : 식의 전(轉)을 인하여 현상세계가 변(變)하고 현상세계가 변(變)함을 인하여 만법이 드러남(現)을 말한다. 즉 유식의 체(體)로부터 견분(見分)과 상분(相分)의 2분(二分)이 변출(變出)되는 것이니 견분(見分)은 견문각지(見聞覺知)하는 주체로서 능분(能分)이라 할 수 있어서 이는 유정(有情)에 속하고, 상분(相分)은 객관으로서 산하대지(山河大地) 등이니 소분(所分)이라 할 수 있어서 이는 무정(無情)에 속한다.

② 변이의(變異義) : 변(變)은 만법이 생기(生起)하는 뜻이요, 이(異)는 만법이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不同)는 뜻이니 모두가 오직 식에 의해서 견(見)·상(相) 2분(二分)이 다르게 나타남을 말한다. 즉 식체(識體)는 본래 부동하지만 견(見)·상(相) 2분(二分)은 식에 의해서 변이(變異)하므로 변이라 하며 견분(見分)은 능(能)이 되고 상분(相分)은 소(所)가 되어 능소(能所)가 모두 식에 의해 변현(變現)하지만 작용이 각각 다르므로 변이라 한 것이다.

③ 개변의(改變義) : 식체(識體) 자체가 변하여 아(我)·법(法) 2상(二相)이 되고 견(見)·상(相) 2분(二分)이 되는 것을 말한다. 즉 어린아이와 어른의 식이 다르고 중생과 보살의 식이 다름을 말한 것으로 중생이 수행을 통하여 대보살의 식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분별소분별(分別所分別) : 분별은 식(識)이며 능(能)이며 주관이며 능전변(能轉變)으로서 능동적이고, 소분별(所分別)은 경(境)이며 소(所)이며 객관이며 전변된 견(見)·상(相) 2분으로서 피동적이다.

차피(此彼) : 차(此)는 능전변(能轉變)인 모든 식(識)을 말하고 또 식(識)의 체(體)를 말한다. 피(彼)는 소전변(所轉變)인 아(我)·법(法)을 말한 것으로 일체 만법이다.

모든 식(識)이 실체가 없으므로 일체 아(我)·법(法)이 없고, 따라서 피차(彼此)가 모두 없으므로 차피개무(此彼皆無)라 하였다. 또 세간의 모든 법(法)은 유위(有爲)·무위(無爲)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유위(有爲)·무위(無爲) 역시 본래 존재하지 않으므로 차피(此彼)라고 하는 능(能)·소(所)와 주관과 객관이 모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일체유식(一切唯識) : 피차(彼此)의 모든 법(法)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세·출세법(出世法)도 존재하지 않으며 삼라만상도 존재하지 않는다. 일체만법은 모두 식(識)이 변현(變現)한 것이며 식(識)이 반연하는 대상이므로 식(識)을 떠나서는 어떠한 것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일체유식(一切唯識)이라 했다.



제 18 송

由一切種識 如是如是變

以展轉力故 彼彼分別生


일체종식(一切種識)이 여러 형태로 변함으로 말미암아 전전(展轉)하는 힘[力]이 작용되기 때문에 갖가지 분별이 생기(生起)하는 것이다.


선(善)과 악(惡)은 어디에서 나오며 목전(目前)에 전개(展開)되는 일체 만법은 어디로부터 나오는가. 제8아뢰야식에 잠장(潛藏)되어 있는 종자식(種子識)이 변하여 힘을 발휘하므로 만법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된다. 종자식(種子識)이 전변(轉變)하는 것은 모두가 업(業)에 의해서 가능하므로 수행자는 모름지기 업(業)을 맑히고 원력(願力)을 키우고자 발심(發心)하는 것이다.

일체종식(一切種識) : 일체종식(一切種識)은 아뢰야식의 다른 이름이며 그 안에 선·악 및 세간·출세간의 무량한 종자를 함장(含藏)하고 있기 때문에 일체종식(一切種識)이라 한 것이다.

종자(種子)는 습기(習氣)를 말한 것으로 일체 중생이 선·악의 업을 지을 때 그 습기(習氣)가 8식에 훈습되어 선·악의 종자가 그 안에 심어져 일단의 훈습시간을 경과한 후에 성숙된 것을 말한다. 습기(習氣)가 성숙된 후에는 그 안에서 외연(外緣)이 모여들 때를 기다렸다가 비로소 발아(發芽)하여 역량(力量)을 발휘하여 현행(現行)한다.

종자(種子)는 이숙(異熟)이라 하기도 하는데 종자는 선·악의 인(因)에 함장(含藏)되고 선·악의 인(因)에 의해서 과보가 다르기 때문에 이숙(異熟)이라 한 것이다. 이숙(異熟)에는 인(因)이 변이(變異)하여 과(果)가 되어 성숙되는 변이숙(變異熟)과 인(因)이 무기(無記) 또는 대지(大智)로 바뀌어 성숙되는 이류숙(異類熟)과 인(因)이 1·2생(一·二生) 또는 몇천 생을 지나 과(果)를 받는 이시숙(異時熟) 등 세 가지가 있다. 그러므로 제8식을 이숙능변(異熟能變)이라 하는 것이다.

여시여시변(如是如是變) : 제8아뢰야식은 일체종식(一切種識) 안에 함장되어 있는 무량무수한 경계를 변출(變出)할 수 있으므로 송문(頌文)에 '유일체종식(由一切種識) 여시여시변(如是如是變)'이라 한 것이다.

여시(如是)를 반복하여 여시여시변(如是如是變)이라 한 것은 제법종자(諸法種子)가 많고 그 변화의 순서가 무한하여 시시각각으로 변화함을 표현한 뜻이다.

전전력(展轉力) : 종자(種子)의 능력이 8식의 심(心)과 심소법(心所法)을 생기(生起)한 다음에 현행(現行)하고 다시 현행(現行)이 8식의 과(果)를 일으켜 아뢰야식에 훈습하여 각종의 새로운 종자를 이루는 힘을 전전력(展轉力)이라 한다.

이처럼 종자는 현행을 생(生)하고 현행은 다시 훈습하여 각각의 유(類)를 이루어 전전부단(展轉不斷)하므로 분별도 또한 이에 따라 부단(不斷)한다. 전전(展轉)은 전전(轉轉)의 뜻으로 전후(前後)를 변화시킨다는 뜻이다.

피피분별(彼彼分別) : 피피(彼彼)는 중다(衆多)의 뜻으로 가지가지의 의미로 쓰인다. 아뢰야식은 수없이 많은 능변(能變)의 힘이 있어 변화를 주도하고 변화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무한한 전전력(展轉力)으로써 힘이 무궁하여 법계의 아(我)·법(法)을 가려낼 수 있다. 따라서 이 송(頌)은 고저장단(高低長短)과 시비선악(是非善惡)을 가려서 중생성불(衆生成佛)의 길을 제시하고 아뢰야식의 종자에 전전력(展轉力)으로써 천지(天地)의 주제(主帝)가 됨을 밝힌 송문(頌文)이다.

 

 -이글은 월간 '불광'지에 연재 된 혜거스님의 글입니다-

출처 : 염화실
글쓴이 : 마니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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