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혜거스님 유식30송 > 제 11 강
제 15 송
依止根本識 五識隨緣現
惑俱惑不俱 如濤波依水
사량분별(思量分別)하는 마음인 전5식(前五識)은 모두 제8근본식(阿賴耶識)을 의지하여 반연을 따라 작용이 일어난다. 전5식(前五識)이 작용할 때는 눈과 귀 등 여러 식(識)이 함께 작용하기도 하고 일식(一識)씩 단독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전5식이 근본식(根本識)을 의지하여 마음을 일으키는 정형(情形)은 마치 파도가 물을 의지하여 일어나는 것과 같다.
지난 14송(十四頌)까지는 유식의 심소(心所)를 밝혔고 본 15송(十五頌)에서는 유식의 작용이 일어나는 상태를 설명한다. 마음에는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이 작용하는 5관(五觀) 곧 전5식(前五識)과, 사량분별하고 기억하고 선별할 수 있는 제6 의식과 예지력과 잠재력 그리고 사량하여 탐착하는 제7 말나식과 근본의식인 제8 아뢰야식 등의 심소가 있다.
이러한 심소가 작용하는 정황을 설명하고 마음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을 찾게 하는 것이 이 송문(頌文)의 핵심이다. 따라서 본 송문에서는 전5식은 무엇을 의지하며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밝히고 있다. 전5식이 무엇을 의지하는가에 대해서 본문 제1구에 의지근본식(依止根本識)이라 하여 근본식을 의지한다고 한 것은 전5식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식을 의지해서 존재함을 말한 것이다.
근본식이란 제8 아뢰야식으로 모든 식(識)의 바탕이 되기 때문에 근본식이라 하는 것이다.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대해서는 본문에서 5식수연현(五識隨緣現)이라 하여 5식이 근본식을 의지하되 연(緣)을 따라 현기(現起)하여 작용한다고 한 것이 그 설명이다. 연(緣)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① 공연(空緣) : 공간 또는 거리이다.
② 명연(明緣) : 빛이니 밝음을 말한 것이다.
③ 근연(根緣) : 정색근(淨色根)이니 6근(六根)을 말함.
④ 경연(境緣) : 면전의 경계로 6진(六塵)을 말함.
⑤ 작의연(作意緣) : 5변행심소(五遍行心所) 중의 작의(作意)로서 모든 심(心)에 상응하여 일어난다.
⑥ 분별의연(分別依緣) : 제6식을 말한다.
⑦ 염정의연(染淨依緣) : 제7식이다. 아집(我執)이 강하게 일어날 때를 염(染)이라 하고 가볍게 일어날 때를 정(淨)이라 한다.
⑧ 근본의연(根本依緣) : 제8식이다. 모든 식(識)은 8식을 의지해서 일어난다.
⑨ 종자의연(種子依緣) : 각각의 식(識)이 스스로 의지하는 창고이며 모든 식(識)이 나오는 자리이니 종자를 의미한다.
이상의 아홉 가지 연(緣)을 9연(九緣)이라 한다. 안식(眼識)을 일으킬 때는 위의 9연이 모두 있어야 하고 이식(耳識)은 안식(眼識)과 비슷하나 어둠 속에서도 들을 수 있으므로 명연(明緣)을 제외한 8연(八緣)으로 듣는 작용을 할 수 있다. 비(鼻)·설(舌)·신(身) 3식(三識)은 명연(明緣)은 물론 거리도 필요 없으므로 공(空)·명(明) 2연(二緣)이 없는 7연(七緣)으로도 식(識)을 발할 수 있다. 이와 같이 5식은 근본식을 의지하고 외부연에 의해서 심식(心識)을 일으킨다.
혹구혹불구(惑俱惑不俱) : 구(俱)는 함께의 뜻으로 전5식(前五識) 중에 양식(兩識) 또는 3∼4개의 식(識)이 동시에 작용하는 것을 구(俱)라 하고 오직 하나하나의 식이 단독으로 작용하는 것을 불구(不俱)라 한다.
가령 보는 것과 듣는 것을 동시에 하면 2구(二俱)가 되고 보고 듣고 냄새 맡는 것을 동시에 하면 3구(三俱)가 되고 맛보는 것까지 동시에 하면 4구(四俱)가 되고 5식(五識)이 동시에 작용을 해서 식(識)을 발하면 5구(五俱)가 된다. 여기에 의식(意識)과 잠재력(潛在力)과 무의식적 감각 등이 동시에 작용을 하면 9식 모두가 동시에 작용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수행자는 모름지기 동시에 여러 식(識)이 작용하는 것을 꺼려야 한다. 오직 9식이 한 경계에 몰입해야 삼매(三昧)에 들 수 있고 삼매에서만이 모든 부처님의 경계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5식의 작용은 근본식을 의지하여 작용하므로 근본식이 존재하지 않으면 전5식 또한 작용하지 못한다.
여도파의수(如濤波依水) : 파도가 물을 의지하여 일어난다고 한 것은 5식의 마음이 근본식을 의지하여 작용한다는 뜻을 비유한 말이다. 파도는 파랑(波浪)이니 전5식이요, 물은 제8식이다. 물에서 파도가 일어나려면 반드시 바람이라는 연(緣)이 있어야만 가능하듯이 근본식에서 파도와 같은 전5식이 작용하려고 한다면 9연이라고 하는 바람의 연을 만나서 작용한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한 마음의 작용도 단독으로 일어날 수 없듯이 세상의 만법이 모두 인연의 소생(所生)임을 깨달아야 한다.
제 16 송
意識常現起 除生無想天
及無心二定 睡眠與悶絶
제6의식은 항상 현기(現起)하지만 무상천(無想天)에 태어날 때와 무상(無想)과 무심(無心) 2정(二定)에 들 때 그리고 잠잘 때와 민절(悶絶)했을 때는 현기하지 않는다.
이 송(頌)은 제6의식이 현기하여 작용하는 상황을 설명한 송(頌)이다. 전5식은 근본식을 의지하고 경계가 있어야만 작용하지만 제6의식은 외경(外境)과 상관없이 행주좌와(行住坐臥)와 일거일동(一擧一動)에 쉬지 않고 작용을 한다. 단 무상천에 태어날 때와 무상(無想)·무심(無心) 두 정(定)에 들었을 때와 잠잘 때와 기절했을 때는 작용을 하지 않는다.
무상천에 태어날 때와 무상·무심(無想·無心) 두 정(定)에 들었을 때는 모두 공덕과 수행에 의해서 작용하지 않으므로 무심(無心)의 경계라 할 것이요, 잠잘 때와 기절했을 때는 무기(無記)의 경계라 할 수 있다.
무상천(無想天) : 색계(色界)의 4선9천(四禪九天) 중 제4천(第四天)에 해당되며 삼계28천 중 제19천이다. 이 천상에 태어나는 것은 무상정(無想定)을 닦은 자가 사후(死後)에 태어나는 곳이지만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다시 심상(心想)을 일으켜 윤회하게 되므로 구경지(究竟地)가 아니다.
무상정(無想定) : 무상천에 태어나기를 희망하여 일체의 심상(心想)이 멸한 정(定)이다. 무상천에 태어나거나 무상정(無想定)에 든 두 경지는 모두 몸을 안화(安和)하게 할 수 있으므로 정(定)이라 하며, 여기에 이른 자는 이것이 열반(涅槃)이라고 믿어 진멸(盡滅)할 분이 없으므로 외도 또는 범부가 닦는 정(定)이라 한다.
무심(無心) : 이는 멸진정(滅盡定) 또는 멸수상정(滅受想定)이라 한다. 탐욕(貪慾)과 분별이 모든 업(業)의 근본임을 알아 그것을 멸(滅)하고자 하여 제6식을 압재한 정(定)으로서 성자(聖者)가 닦는 수행법이다. 이 정에는 6식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무심이라 한다.
수면(睡眠) : 깊이 잠이 들었을 때는 6식이 완전히 정지(停止)한다.
민절(悶絶) : 혼미한 상태로 인사불성(人事不省)을 의미한다.
수면과 민절로 인해서 6식이 정지되는 것은 잠시여서 잠이 깨거나 혼절에서 깨어나면 다시 6식이 작용을 하게 된다.
6식의 분별은 무한하고 맑고 깨끗한 청정심(淸淨心)을 장애하므로 이를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이글은 월간 '불광'지에 연재 된 혜거스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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