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식30송 (론서)

[스크랩] 혜거스님 유식 30송 강의 제 14 강

수선님 2018. 9. 2. 12:39

< 혜거스님 유식30송 > 제 14 강

 

제 20 송

由彼彼遍計 遍計種種物

此遍計所執 自性無所有


갖가지 계산하는 마음으로 갖가지 사물을 계산하나니 이 계산하는 마음과 계산해서 집착하는 사물의 자성(自性)은 본시 있는 곳이 없다.


제20송부터 24송까지는 3성(三性)·3무성(三無性)의 도리를 설명하고 있다.

3성(三性)은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의타기성(依他起性)·원성실성(圓成實性)이며 일체법이 3성을 떠나지 않지만 이 3성은 본래 무성(無性)이다. 본 송은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을 해설한 송이다.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은 두루 계교하여 집착한다는 뜻으로 변계(遍計)는 마음으로 우주만물(宇宙萬物)에 대하여 갖가지로 주변계탁(周遍計度)한다는 뜻으로 주변계탁(周遍計度)은 두루 계산하여 헤아린다는 말이다.

소집(所執)은 두루 계산하고 계탁하여 변계(遍計)한 후에 가상해서 인연화합(因緣和合)에 의해 생기(生起)된 사물(事物)을 사량분별(思量分別)한 후에 그 명(名)을 집착하거나 그 상(相)을 집착하여 그것들이 유(有)이다, 무(無)이다, 또는 색(色)이다, 심(心)이다, 내지는 실아(實我)이다, 실법(實法)이다라고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계량(計量)하여 집착하는 견해(見解)는 실법(實法)이 아니고 오직 환상(幻像)일 뿐이기 때문에 이를 변계소집자성(遍計所執自性)이라 이름한 것이다.

피피(彼彼) 두 자의 뜻은 변계(遍計)하는 심념(心念)이 매우 많아 일체만법(一切萬法)에 대하여 두루 계량(計量)함을 형용한 것이다.

변계종종물(遍計種種物)이라고 한 제2구의 뜻은 갖가지 사물을 변계(遍計)한다는 뜻으로 마치 바닷물을 잔으로 계량한다면 끝내 계산할 수 없듯이 사물을 계산만 할 뿐 바로 볼 수 없음을 변계종종물(遍計種種物)이라 한다.

따라서 목전(目前)의 경물(景物)을 잘못 판단하여 인(因)이 아닌데 인(因)이라 하고, 과(果)가 아닌데 과(果)라 하고, 시(是)를 비(非)라 하고 비(非)를 시(是)라 하거나, 화(禍)를 복(福)으로 여기고 복(福)을 화(禍)로 여기거나, 충신(忠臣)과 간신(奸臣)을 잘못 가리는 등 본래의 사물을 바로 보지 못함을 변계소집(遍計所執)이라 한다.

변계소집(遍計所執)이라고 한 3구의 뜻은 변계(遍計)에는 능변계(能遍計)와 소변계(所遍計)가 있으니 능변계(能遍計)는 마음으로 바깥 사물을 대하는 것으로 주관(主觀)에 속하고, 소변계(所遍計)는 모든 사물을 말한 것으로 객관(客觀)에 속한다. 이 양방의 능·소(能·所)가 대대(對待)함은 당연한 이치이지만 이에 소집(所執)이 더해지면 변계소집(遍計所執)이 되어 순수하게 대대(對待)하지 못한다.

계탁(計度)한 것이 사실과 부합되지 않을 때 이를 집(執)이라 하는데 계집(計執)이란 노끈을 뱀으로 잘못 집착하여 고집하는 것을 말한다. 실상(實相)의 눈으로 사물을 본다면 노끈이 본래 노끈이 아니고 뱀이 본래 뱀이 아니다. 따라서 노끈을 노끈으로 보고 뱀을 뱀으로 본다 해도 이는 실상법(實相法)이 아니므로 변계소집(遍計所執)이 되거늘 하물며 노끈을 뱀으로 잘못 집착하는 우(愚)를 범하랴.

본 송 말구(末句)에 자성무소유(自性無所有)라 한 것은 제8식과 전5식은 능·소(能·所)의 변계(遍計)가 없어서 자성무소유(自性無所有)라 한 것이다. 자성(自性)이 무소유(無所有)이기 때문에 능·소(能·所)가 없고 능·소(能·所)가 없기 때문에 변계(遍計)가 없고 변계(遍計)가 없기 때문에 집착할 것이 없다 하겠다.



제 21 송

依他起自性 分別緣所生

圓成實於彼 常遠離前性


의타(依他)해서 생기는 자성(自性)은 허망 분별하는 반연에 의해 생기는 것이고 원성실성(圓成實性)은 저 의타기(依他起)해서 생긴 성품(性品)이 계산해서 집착[遍計所執]하는 마음[性]을 여의면 자연히 드러난다.


본 송(頌)으로부터 24송까지는 3성(三性)과 3무성(三無性)을 설명한 것이다. 3성(三性)은 계산해서 집착하는 마음[遍計所執性], 경계(境界)에 의해 일어나는 마음[依他起性], 원만하고 실다운 마음[圓成實性]이다.

모든 중생은 3성(三性)으로 마음이 일어나지만 3성은 본래 무성(無性)이다. 왜냐하면 마음이 일어나려면 경계가 있어야 하고 경계가 있어도 6근(六根)이 부합되어야 한다. 6근(六根)과 경계가 부합되어서 일어나기 때문에 마음을 의타기성(依他起性)이라 한다. 타(他: 경계)를 의해서 일어난 마음이 계산해서 집착하면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이 되고 집착해서 계산하지 않으면 원성실성(圓成實性)이 된다.

의타기(依他起)하지 않으면 본래 마음이 없고 본래 마음이 없으면 변계소집(遍計所執)의 마음도 원성실(圓成實)의 마음도 없는 것이다. 이를 3무성(三無性)이라 한다. 중생은 3성(三性)으로 마음을 쓰기 때문에 계산해서 집착[遍計所執]하고 보살은 3성이 있으나 계산해서 집착하지 않으므로 원성실(圓成實)의 마음을 쓰고 불지(佛地)에 이르면 3무성(三無性)이 되어 비로소 마음에 자재해탈을 얻게 된다.

의타기성(依他起性)의 의(依)는 의지, 의탁의 뜻이며 제법(諸法)은 타(他)를 의지하여 생(生)하므로 의타기(依他起)라 한다. 불이 스스로 타오를 수 없고 산천초목이 자생(自生)할 수 없고 인간 또는 일체 만법이 자생할 수 없어서 의인탁연(依因托緣)하여 인연(因緣)이 구족(俱足)되면 생기(生起)하는 까닭에 의타기(依他起)라 한다.

분별연소생(分別緣所生)이라 한 제2구의 뜻은 먼저 분별은 차별하는 분별이 아니고 구별, 선별의 뜻이다. 연(緣)은 기성(起性)의 연(緣)이니 타(他)에 해당된다. 일체 제법(一切諸法)은 색(色)·심(心)의 2류(二類)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색법(色法)은 드러나 있는 일체 만법이기 때문에 이를 상분(相分)이라 하며 분별할 바[所分別]인 모든 사물을 지칭하여 이를 색법(色法)이라 한다. 이러한 색법은 모두 인연법에 의해 생기(生起)하며 자생(自生)하지 못하고 연생(緣生)이기 때문에 의타기(依他起)인 것이다.

심법(心法)은 분별이 주체이기 때문에 견분(見分)이라 한다. 능분별(能分別)인 인식(認識)이 연생법(緣生法)에 의해 생기므로 안으로는 견분종자(見分種子)를 의탁하고 밖으로는 5근(五根)·5경(五境) 등의 연(緣)을 따라 식(識)이 작용된다. 이렇듯 연생(緣生)이기 때문에 심법(心法)도 또한 의타기(依他起)이며 무자성(無自性)이다.

제3구의 원성실성(圓成實性)은 원만(圓滿), 성취(成就), 진실(眞實)의 의미로서 불성(佛性), 법성(法性), 진여(眞如), 법신(法身) 등이 구족히 모두 원성실성(圓成實性)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법성, 진여, 법신 등이 곧 원성실성이며 원성실성이 곧 법성, 진여, 법신 등이다. 원성실성(圓成實性)은 의타기성(依他起性)에서 분별을 일으키지 않으면 원성실성(圓成實性)이고 분별을 일으키면 변계소집(遍計所執)이 된다. 법상(法相)은 유한(有限)하나 법성(法性)은 무한(無限)하며 법상(法相) 허가(虛假)이나 법성(法性)은 진실(眞實)하다. 따라서 제법의 법성(法性)은 부동불변(不動不變)하고 불생불멸(不生不滅)하며 담연(湛然) 상주(常住)하고 원만시방(圓滿十方)하므로 원성실자성(圓成實自性)이라 이름한다.

3구의 원성실어피(圓成實於彼)의 피(彼)는 의타기성(依他起性)을 말한 것으로 원성실성은 의타기 중에서 발로되는 바 의타기에서 변계소집성을 여의어야 하므로 상원리전성(常遠離前性)이라 했다.

 

-이글은 월간 '불광'지에 연재 된 혜거스님의 글입니다-

출처 : 염화실
글쓴이 : 마니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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