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 해설

[스크랩] [碧巖錄] 제61칙 風穴若立一塵 - 풍혈화상의 한 티끌

수선님 2018. 9. 9. 13:06

관련 이미지 <벽암록(碧巖錄)> 제61칙은 풍혈화상이 한 티끌을 세운 법문을 다음과 같이 수록하고 있다.

 

“풍혈화상이 대중에게 법문을 제시하였다. ‘만약 한 티끌을 세우면 나라가 흥성하고, 한 티끌을 세우지 않으면 나라가 멸망한다.’ 설두화상이 주장자를 들고서 말했다. ‘함께 생사(生死)를 함께할 납승이 있는가?’”

 

擧. 風穴垂語云, 若立一塵, 家國興盛, 不立一塵, 家國喪亡.(雪竇拈杖云, 還有同生同死底衲僧.)


풍혈화상은 임제 문하의 제4세로서 남원혜옹(南院慧)의 법을 계승한 연소(延沼. 896~973)선사인데, 여주 풍혈산에서 교화를 펼쳤기 때문에 풍혈화상이라고 불렀다. 그의 전기는 <전등록(傳燈錄)> 제13권과 <광등록> 제15권, <오등회원> 제11권 등에 전하고 있고, <벽암록> 제38칙 ‘풍혈화상의 철우(鐵牛)’에 등장한 바가 있다. 본칙의 공안은 <광등록> 제15권 풍혈전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풍혈선사가 상당법문했다. ‘만약 한 티끌을 세우면 나라가 흥성하지만 농부는 눈살을 찌푸리고(蹙), 한 티끌을 세우지 않으면 나라가 멸망하지만 백성은 무심하여 편안(安貼)하다’” 풍혈화상의 상당법문은 역설적인 입장에서 설법한 것인데, 설두중현선사가 취사선택하여 긴요한 문제만을 제시하여 수행자들이 이 공안을 통해 불법의 대의를 체득하도록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상당설법으로 설한 수어(垂語)를 수시(垂示), 수계(垂誡), 수훈(垂訓)이라고도 하는데, 안목있는 선승이 학인들을 위하여 불법을 교시하는 말씀을 내린 것이다. 따라서 수시의 법문에는 선문답이 아니기 때문에 스승과 학인과의 빈주 문답이 없고 각자가 주인이 되어야 한다.

 

풍혈화상이 어느 날 대중을 위한 법문으로 “만약 한 티끌을 세우면 나라가 흥성하고, 한 티끌을 세우지 않으면 나라가 멸망한다”라고 설했다. 한 티끌은 일진(一塵)으로 미세한 먼지를 말한다. <벽암록> 제19칙 구지화상의 한 손가락을 세우는 법문에 “한 티끌(一塵)을 들면 대지가 수용하고, 한 꽃(一花)이 피면 세계가 흥기한다”라는 말은 화엄철학의 ‘법성게’에서 설하는 “한 미세한 티끌에 시방세계를 포함한다(一微塵中含十方)”는 상즉상입(相卽相入)의 도리를 설한 것이다. 풍혈화상은 한 티끌이 일어나는 것은 국가의 흥망성쇠와 같다고 주장한 것이다.

 

즉 국가에 한 사람의 훌륭한 인재나 영웅호걸이 배출하면 도탄에 빠진 인민의 고통을 구제하고 국가가 흥융한 사례는 역사를 통해서 많이 볼 수 있다. 풍혈화상의 설법은 이러한 국가의 문제를 화두로 제시한 것이 아니라, 국가의 흥망성쇠를 비유하여 선의 정신을 설하고 있다. 즉 마음에 미세한 번뇌망념이 일어나면 선악(善惡)과 범성(凡聖)의 차별심이 일어나게 되고, 지옥이 건립되고 천당도 건설된다. 한 생각의 번뇌망념에는 부처도 있고, 중생도 있으며, 인간세계나 아귀의 세계같이 육도의 윤회세계도 만들어 진다. 무명의 한 생각이 팔만사천의 번뇌망념으로 미친 듯이 번창하는 모습을 국가가 흥성한다고 표현한 것이다.

 

원오는 “나는 법왕이 되어 법에 자유자재하다. 꽃도 수북하고, 비단도 수북하다”라고 착어하고 있다. 풍혈화상이 한 티끌(一塵)을 건립한 것처럼, 국가가 흥성하거나 멸망하거나 그것은 법왕인 풍혈화상의 자유다. 풍혈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한 생각의 번뇌망념이 일어나면 번뇌의 마음가짐과 마음먹기에 따라 지옥도 만들고 극락도 건립할 수다 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풍혈화상의 법문은 일체를 놓아 버린 방행문(放行門)의 교화방법을 제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 티끌을 세워 국가흥융을 이루는 것에 주안점을 둔 것이 아니라 ‘한 티끌을 세우지 않으면 국가가 망한다’는 전연 반대의 입장을 제시한 파주문(把住門)에서 선의 실천정신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천차만별의 일체 경계를 철저하게 소탕하고 인정하지 않는 불심의 본체에서 절대평등의 세계를 제시한 것이다.

 

즉하나의 미세한 번뇌망념도 일어나지 않으면, 마음속에 어떠한 경계도 없다.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으며, 황제도 서민 농부도, 범부나 성인, 고락(苦樂), 미오(迷悟), 선악(善惡), 미추(美醜) 등의 일체 차별경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화엄오교장〉에 “한 생각의 번뇌망념이 일어나지 않으면 부처(一念不生名爲佛)”라고 한 그 경지이다. 원오는 “자취를 쓸어 없앤다”라고 착어하고 있는 것처럼, 번뇌망념의 흔적과 자취까지 완전히 없애버린 경지이다. 나라가 멸망한다는 ‘상망(喪亡)’은 자취나 종적도 없어진 것을 표현한 말이다. 번뇌망념이 없는 깨달음의 자취까지 텅 비워버린 경지이다. 원오는 “눈동자를 잃고 코(鼻孔)의 생명도 잃었다”라고 착어하고 있다. 천차만별의 차별경계를 보는 눈도 상실해버리고, 냄새를 맡는 코도 기능을 잃고, 소리를 듣는 귀도, 맛을 보는 혀도, 주관의 마음도 객관의 대상인 사물도 일체 모두를 멸각했다는 의미이다.

 

하나의 미세한 번뇌망념도 없어진 경지는 어떻게 되는가? 원오는 “일체처가 광명(光明)”이라고 착어하고 있다. 근원적인 본래심(本地)에서 풍광(風光)이 일어나고, 대도의 광명(光明)이 현성한다는 의미이다. 완전한 건강은 약이나 치료의 문제는 물론, 병이 다 완치되었다는 의식까지 없어지고 무심한 경지에서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다. 국가의 흥망성쇠를 말한다는 것은 사실 국가의 비상사태인 것이다. 국민이 불안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태평 시절은 원오가 “국가를 언급해서 무엇하려고?”라고 착어하고 있는 것처럼, 국가라고 하는 말도 의식도 완전히 없어진 경지이다.

 

<광등록> 풍혈의 설법에 “한 티끌을 세우면 나라가 흥성하지만 농부는 눈살을 찌푸리고, 한 티끌을 세우지 않으면 나라가 멸망하지만 백성은 무심하여 편안하다”라는 법문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요순황제의 시대처럼, “해가 뜨면 들에 나가 일을 하고, 해가 지면 집에 와서 쉰다. 목마르면 우물 파서 물을 마시고, 밭을 갈고 씨 뿌려 곡식을 만들어 먹는다. 황제의 권력이 나에게 아무 소용없다”라고 노래한 것과 같다. 원오는 ‘수시’에 “성왕이 홀로 왕궁(中)에서 천하를 다스리는 일”로 표현했다. 풍혈화상의 선풍은 임제의 가풍을 그대로 계승한 것으로, 지금 여기 자기 자신의 본분사의 일을 무심의 경지에서 살고 있도록 제시한 법문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뒤에 설두화상은 여러 사람들에게 주장자를 들어 보이며 ‘이 주장자와 함께 생사를 함께할 사람이 있는가?’라고 말했다. 설두가 제시한 주장자는 자기 자신이며, 온 천지와 우주와 하나인 것이다. 따라서 이 법석의 납승과 대중, 설두나 풍혈, 뿐만 아니라 일체의 모두가 주장자와 함께 살고 함께 죽지 않는 자는 한 사람도 없다. 설두는 주장자를 가지고 풍혈화상의 한 티끌을 세우고 세우지 않는 입장, 흥성(興盛)과 상망(喪亡)의 두 가지 차별적인 입장을 지양하고 도리어 나와 함께 생사를 함께할 사람을 찾고 있다.

 

설두는 국가 흥성의 건립문(建立門)에서 중생교화의 입장으로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읊었다. “시골 늙은이가 설사 구겨진 이맛살을 펴지 않는다 해도” 국가를 발전시키고 문화시설과 국방예산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서는 세금을 올리고 많은 법칙과 규제를 시행한다. 따라서 시골 농부는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는 말이다. 수행자들을 위해 많은 법문과 잔소리를 한다는 말이다. ‘국가의 웅대한 터전을 세우고자 하는데’ 국가의 발전을 위한 국책사업을 펼치기 위해서는 농부의 빈축을 걱정해서는 안 된다.

 

풍혈화상이 중생을 위해 다양한 방편법문으로 대기대용을 펼친 것이라는 의미이다. “지모 있는 신하들과 용맹스러운 장수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설두의 주장자 법문을 읊은 것으로, 지금 국가 흥성과 국책사업에 천자를 보필할 신하처럼, 훌륭한 수행자는 있는가? “만 리에 맑은 바람이 부니 자연히 알게 되리라.” 요즘 세상에는 좋은 납승이 없지만, 설두 주장자의 살아있는 법문을 멀리 청풍(淸風)은 알리라.

 

성본스님/동국대 불교문화대학 교수

출처 : 淨土를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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