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반야심경

[스크랩] 마하(摩訶)란?

수선님 2018. 9. 16. 10:56
    반야심경을 말씀드리면 총 260자로 되어있는 아주 짤막한 경전은 현장스님께서 번역한 반야심경, 즉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은 13가지가 있고 산스크리어트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한문으로 번역한 것은 반야심경 7역이라고 부릅니다. 다음과 같이 그 이름은 전부다 다릅니다, 반야심경, 마하바라밀다대명주경, 반야바라밀다심경, 마하반야수심경, 불설성불반야바라밀경 등 여러 가지 이름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260자의 짤막한 경전은 600부 대반야경속에 있는 반야사상의 가장 중요한 것들을 모아서 독송하게 만든 것입니다. 많은 승단에서 승려들이 부처님 말씀을 가장 짤막하게 조석으로 수지 독송하고 외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반야심경이 아닌가싶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반야심경을 통해서 우리가 불교를 잘 알 수 있고 깨달음에 들어 갈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도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배울 경전은 260자로 되어 있는 현장스님역을 가지고 공부할 것입니다. 제일 먼저 살펴보면 “마하(摩訶)” 라는 것 뭘까요. 불교를 처음 대하는 분들은 摩訶라는 것이 도대체 뭘까 생각할 것이고 또 불교를 오래도록 공부하신 분들은 금방 다 아실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摩訶는 “크다” 그렇게 아시면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크냐? 摩訶는 절대적이다.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큰 것이다. 그래서 절대적 큰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느냐 하면, 마치 허공과 같고 사량 분별로는 헤아릴 수가 없고 어마어마하고 방대하다, 이런 의미도 입니다. 또 마하는 속도라는 의미로도 쓰이고 있으며 서양에서는 마하는 속도의 단위로 사용합니다. 摩詞라고 하는 것은 절대 큰 것 절대 크다는 것은 절대평등(絶對平等)의 가치입니다. 이 우주를 하나로 놓고 보면, 어느 별의 세계가 좋다든가 어느 별의 세계가 그렇지 않다든가 아니면 어떤 우주 공간이 더 낫다든가 적다든가 이런 것이 없습니다. 이런 것을 절대 평등가치라 하고 상대 평등가치이라고 하는 것은 만물의 무한 가치 평등입니다. 絶對平等이라는 것은 불이(不異)입니다. 절대 평등의 가치는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고 그것이 絶對平等의 가치입니다. 예를 들면 개미 한마리가 갖고 있는 공덕, 사람이 갖고 있는 공덕이 같으냐? 다르냐? 이것을 놓고 가치를 따지면 인간 편에서 생각하면 인간이 월등하다고 생각할 것이고 개미 편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갖고 있는 상대적 무한가치와 개미가 갖고 있는 상대적 무한가치는 절대적으로 평등합니다. 조금도 기우러짐이 없습니다. 그 다음은 긴 것과 짧은 것의 상대적 무한평등의 가치 또한 우리는 길거나 큰 것만 있으면 좋은 것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큰 바위덩이도 있어야 되고 작은 알갱이로 된 흙도 있어야 되고 먼지도 있어야 됩니다. 이와 같이 큰 것과 작은 것, 긴 것과 짧은 것, 높은 것과 낮은 것, 이 모두는 상대적 무한평등의 가치라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摩詞라는 의미는 이와 같이 모든 가치를 다 포함한 절대적인 것이라고 이해하시면 摩詞를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 반야(般若) 반야는 범어로 프라쥬냐(prajna)라 합니다 무명(無明)이 끊어진 자리에서 나는 지혜(智慧)라고 보면 됩니다. 지혜에도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건혜(乾慧)이고 또 하나는 지금 말씀드리는 무명이 끊어진 자리에서 나는 절대적 지혜를 진혜(眞慧)라고 합니다. 이 절대적 지혜는 또 부처님만의 깨달은 자만이 갖고 있는 지혜를 말하며 우리가 배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근본지(根本智)라고 합니다. 우리가 조금씩 슬기를 낸다든가 뭘 연구해서 알음알이를 내는 것은 건혜(乾慧)입니다. 그러면 건혜가 나쁘냐? 아닙니다. 건혜를 통해서 절대적 지혜를 공부해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여기서 어떤 지혜가 더 낫고 덜 낫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지혜는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 속에는 근본지(根本智)를 갖고 있습니다. 인간만 근본지를 갖고 있느냐? 부처님은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일체 중생들은 모두 근본지를 다 함유하고 있다는 말씀하셨습니다. 근본지는 정보(情報)의 주체입니다. * 바라밀다(波羅蜜多) “바라밀다(波羅蜜多)” 인데, 이 바라밀다는 대승 불교에서 말하는 그야말로 수행 체계를 말하는 것이며 파라밀다 라고도 하고 도피안이라고 한자로는 번역이 되며 저 언덕에 이른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이쪽 언덕을 차안((此岸) 저쪽 언덕을 피안(彼岸) 이라고 합니다. 도피안이라고 하는 것은 저 언덕, 즉 중생 세계에서 부처님 세계로 가는 것, 피안이라고 하는 세계는 부처님의 세상인 세계를 피안이라고 합니다. 차안에서의 삶은 고달픈 인생입니다. 이 차안에서는 육도 윤회하고 순환의 고리 속에 갇혀서 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중생계에서 영원불변한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피안으로 가야되는데, 그 피안으로 가는 방법이 곧 바라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열반의 세계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바라밀은 곧 육바라밀(六波羅蜜)으로 대변될 수 있습니다. 대승 불교에서 말하는 육바라밀과 소승 불교에서의 사성제 팔정도의 수행체계와 제시 방법은 조금 다르더라도, 대승불교에서 지향하는 육바라밀이 어떻게 보면 중생들에게 알기 쉽게 접근되어 있는 수행 방법이라 생각됩니다. * 보시(布施) 보시(布施)바라밀입니다. 보시만 해도 피안에 이를 수 있습니다. 보시에는 재보시와 법보시가 있고 무외보시도 있습니다. 보시의 공덕은 금강경에 보면 법을 보시하는 것은 삼천대천세계를 칠보로 가득 채워서 보시하는 것보다 몇 만 배나 더 많다고 배웠습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것이 곧 법보시이며 재물을 보시하는 것은 재보시이고 두려움을 벗어나게 하는 것은 무외보시입니다. 이와 같이 법보시나 무외보시 재보시를 하면 모두가 다 피안에 이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 지계(持戒) 지계(持戒)바라밀입니다. 지계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께서 우리 중생들이 수행해 가야 될 덕목 사미10계와 48보살계가 있고, 비구250계와 비구니375계가 있습니다. 이런 계율들은 우리 중생들이 저 피안의 언덕에 이르는데 지침이 될 수 있고 경계해야 할 말씀들입니다. 그래서 육바라밀에서는 지계를 중요시하며 지계를 잘 지키면 피안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 인욕(忍辱) 인욕(忍辱)바라밀인데, 참는 것만큼 우리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도구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참는 것, 싫은 일을 참는 것, 화를 참는 것, 참는 것만큼 사람 되게 하는 공부는 없을 것입니다. 즉 인욕을 통해서 곧 피안에 이른다고 보는 것입니다. * 정진(精進) 정진(精進)바라밀입니다. 위의 보시, 지계, 인욕을 정진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쉬지 않고 갈고 닦는 것, 그리하여 피안에 가는 것입니다. * 선정(禪定) 선정(禪定)바라밀입니다. 선정삼매에 이르는 것 참선하는 것으로써 선정이 중요합니다. * 지혜(智慧) 지혜(智慧)바라밀입니다. 곧 반야(般若)바라밀이라고도 합니다. 선정을 닦아야 만이 비로소 지혜가 나고 지혜를 얻어야 만이 비로소 부처님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바로 지혜바라밀입니다. 이렇게 해서 육바라밀이라 합니다.
    출처 : 대각사
    글쓴이 : 다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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