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모양을 보는이나 내이름을 듣는이는
*
문수선원의 1층 법공양실은 좀더 규모가 있고 깔끔해졌다.
“책이 잔뜩 쌓여져 있었는데 많이 나갔다.”하고 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번달에는 염화실지를 편집하는 출판사인 ‘맑은소리 맑은나라’의 월간지 5월호가 많이 쌓여있었다. 툇마루일 듯한 햇빛 가득한 장소에서 편안히 앉으신 두 분 스님이 서로를 보며 웃음을 짓고 계신 사진이 이 잡지의 첫 장에 나온다.
‘시대의 두 선객 책으로 도담(道談) 나누다’라는 제목으로 <대방광불화엄경강설>과 <경봉선사전집> 각기 새 책을 발간하신 큰스님과 명정스님의 기사가 한 자리에 실려있었다. 기사를 읽지 않아도 두 분의 부드러운 미소가 보는 사람을 저절로 미소를 짓게 하고 마음을 평화롭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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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에 중국으로 치료차 떠나시는 큰스님을 처음 뵈었었다. KTX 승강장까지 내려가서 기차에서 내리시는 큰스님께 인사를 드렸다. 키가 크신 큰스님이 가만히 내려다보시는데 둥근 얼굴이 달님 같았다. 저절로 웃음이 나서 미소를 짓자 큰스님께서도 빙그레 웃어주셨었다. 그날 서울역에는 극락선원 사시는 큰스님의 도반이신 명정스님도 오셨었다.
당시 두 분은 모두 건강이 안좋으셨었다. 서울역 가파른 계단앞에서 큰스님은 명정스님을 좀 도와드리라고 하셨었다. 얼른 팔을 내밀어 드렸는데 명정스님은 “이왕이면 다홍치마지” 하고 팔뚝 대신 손을 잡으셔서 모두가 하하 웃었었다. 천진한 웃음과 따스한 손의 온기로 마음이 푸근해져서 첫만남의 어색함이 확 사라졌었다.
여전히, 그 때와 같이, 사진속 두 분 스님 모습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행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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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 날을 갓 지났고, 스승의 날을 맞이해서 문수선원에는 온통 꽃, 꽃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서울 염화실분들의 부탁으로 노포터미널에서 조촐한 난화분을 사갔는데, 불러주는 대로 리본에 글씨가 프린트되는 것은 처음 보았다.
“응 난 잘 골랐다. 여긴 날짜가 2015년이네?”
하고 리본을 보고 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아, 그러니까 2015년까지는 꼭 여기 적힌 대로 건강하셔야 한다는...”
큰스님께서 하하 웃으셔서 다행이었다.
계단을 오르시면서 큰스님께서 “서울에 있는 염화실 식구들 못본지 오래다. 이제 먼 사람들이 되어 버렸어.” 하셨는데 꽃들이 마음을 대신 이어준 것 같아서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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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이 많이 오셔서 인사하셨다. 책이 나오는대로 매달 한 권씩 대방광불화엄경 강설집을 법공양해주신다고 큰스님께서 지난달 말씀하셨는데, 이번달에 대방광불화엄경 강설집 제2권이 법공양 올려져 있었다. 큰스님께 특별히 사인을 받았다.
“확실히 다 이렇게 싸인 받아가지고 착착 쌓아놓는 재미도 괜찮겠다 그렇지?”
하고 글씨를 쓰시면서 다시한 번 “음 그것도 참 재밌겠다.”하셨다.
*
스승의 날을 앞두고 진정 마음으로 꽃을 올릴 수 있는 스승님을 가진 행복한 사람들이 속속 문수선원에 모여들었다. 카네이션 한 송이를 들고와서 퍼포먼스를 하듯이 큰스님께 가만히 올리신 스님도 계셨다. 모두가 따스하게 웃었다.
이윽고 상강례
법회의 시작
大方廣佛華嚴經 卷第十七
初發心功德品 第十六
七. 法慧菩薩의 重頌
오늘 『대방광불화엄경강설』 제2권이 여러분들에게 돌아갔다.
서문을 펴서 2권 점안법회를 하겠다.
화엄경 공부를 많이 하시는 여러 스님들이 이렇게 점안을 해야 화엄경 강설이 그 생명력을 발휘하게 된다. 마음을 담아서 큰소리로 서문을 같이 읽는 것으로써 점안의식을 다하기로 하겠다.
서문
"가고 오는 것은 끝없이 계속되지만 움직임과 고요함은 그 근원이 하나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계절은 춘하
추동 사시절로 변화하여 시방세계를 아름답게 수놓고 우리들 인생은 생로병사로 순환하여 그 실상을 여실히 드러내 보입니다.
세주묘엄(世主妙嚴)이란 눈앞에 펼쳐진 두두물물이 모두가 하나같이 세상의 주인으로서 아름답게 장엄한 모습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사람, 동물은 동물, 식물은 식물, 광물은 광물, 어느 것 하나 이 세상 주인이 아닌 존재가 있겠습니까.
하늘은 하늘, 구름은 구름, 산은 산, 물은 물, 그 또한 이 세상의 주인으로서 아름답게 장엄하지 않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80권 화엄경을 강설하여 이제 두 권째에 접어들었습니다. 첫째도 둘째도 세상은 역시 아름답고 인생은 또한 경이롭습니다. 이와 같이 세상을 알고 인생을 아는 사람은 오직 그 미묘한 덕을 찬탄하고 또 찬탄할 뿐 달리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부디 인생을 찬탄합시다. 그 존귀함을 노래합시다. 찬탄의 노래가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할 때까지 목청껏 부릅시다.
세상을 찬탄하고 인생을 찬탄하여 노래 부르는 이 아름다운 음악회에 동참하신 모든 세상의 주인님께 진실로 머리숙여 존경합니다. 당신은 진정 아름다운 꽃으로 장엄한 성스러운 대중, 화엄성중(華嚴聖衆)이십니다.
2014년 1월 24일
신라 화엄종찰 금정산 범어사
如天 無比
이렇게 해서 우리모두 2권 강설을 점안했다.
스님들은 그동안 화엄경 공부를 많이 하셨으니까 각자 사찰에 가면 이 책을 가지고 프린트를 하거나 복사를 해서 써도 좋고, 책을 사서 써도 좋고, 편리할 대로 교재로 써서 신도들을 가르친다면 더없이 좋은, 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불교 교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부디 빠지지 말고 오셔서 81권의 화엄경을 전부 받아가시기 바란다.
끝날 때까지 오셔야 짝을 다 채울 수가 있다.
오늘은 초발심 공덕품 458페이지 제일 밑에 줄 부터 할 차례다.
24, 大智慧現前
趣向菩提心淸淨하며 功德廣大不可說이라
爲利衆生故稱述하노니 汝等諸賢應善聽이어다
無量世界盡爲塵하야 一一塵中無量刹이어든
其中諸佛皆無量을 悉能明見無所取로다
善知衆生無生想하며 善知言語無語想하고
於諸世界心無碍하야 悉善了知無所着이로다
其心廣大如虛空하야 於三世事悉明達하고
一切疑惑皆除滅하야 正觀佛法無所取로다
十方無量諸國土에 一念往詣心無着하야
了達世間衆苦法이 悉住無生眞實際로다
無量難思諸佛所에 悉往彼會而覲謁하고
常爲上首問如來 菩薩所修諸願行이로다
心常憶念十方佛호대 而無所依無所取로다
보리를 향해가는 마음이 청정하며
크고 넓은 공덕을 말 못하지만
중생에 이익 주려 말하는 터니
어지신 그대들은 잘 들으시오
그지없는 세계를 티끌 만들고
낱낱 티끌 속에 있는 무량한 세계
그 가운데 부처님 한량없나니
모두 다 환히 보아도 취함이 없고
중생을 잘 알아도 그 생각 없고
말하여도 말이란 생각 없으며
온 세계에 마음이 장애 없으며
모두 다 알면서도 집착치 않아
그 마음 넓고 크기 허공과 같아
세 세상 모든 일을 모두 통달해
갖가지 의혹들을 없애버리니
불법(佛法)을 바로 보매 취할 바 없네
시방의 한량없는 모든 국토에
잠깐 동안 나아가 집착이 없고
세간의 괴로운 법 분명히 통달하여
생멸 없는 실제에 모두 머물며
한량없고 부사의한 부처님 처소에
그 회상에 나아가 모두 뵈옵고
우두머리 되어서 항상 여래께
보살의 닦는 행(行)을 여쭈어 보며
마음으로 시방 여래 늘 생각하나
의지함도 취함도 아주 없도다
*
대지혜현전(大智慧現前): 큰 지혜가 앞에 나타나다
*
내가 스님들과 함께 화엄경 공부를 쭉 하다 보니, 화엄경에서 뭘 소중하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을 대강 정리해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뭐니뭐니 해도 보살행이다.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친견하면서 선지식들을 만날 때마다 하는 질문이 있다.
“무엇이 보살행입니까?”
“어떻게 보살행을 닦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보살행을 실천할 수 있습니까?”
이것이 화엄경의 키포인트다.
그래서 화엄경의 마지막 권도 보현행원품으로 결론을 맺고 있고, 또 다른 품에서도 여러 번 반복해서 보살행을 강조한다. 보살행의 대표는 보현행원이다.
그런 보현행 또는 보살행을 제대로 실천하려면 보리심을 발해야 된다. 발심이 되어야 한다. 발심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보리심을 발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초발심공덕품(初發心功德品)을 보고 있다. 처음 보리심을 발하는 것에 대한 공덕이 그 내용이다.
여기서도 보리심을 중요하게 여긴다.
티벳 불교 같은 데는 어떤 스님이 설법을 하던 간에 시종일관 보리심이야기다.
보리심도 화엄경에서는 중요한 내용이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심불급중생 시삼무차별(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이라고 해서 한마음의 세계도 대단히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또 뒤에 명법품(明法品)으로 넘어 가면은 정법(正法)에 대한 것도 보리심 못지않게 아주 강조한다.
정법도 참 중요하다.
우리가 부처님께 귀의해서 불교를 공부하고 수행을 한답시고 하긴 하는데 ‘과연 부처님의 바른법이 무엇일까?’ 하는 것도 화두삼아서 늘 의문을 가지고 생각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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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못해 몇 천원 짜리 물건을 사더라도 이왕이면 가짜보다는 진짜를 사야될텐데 하물며 비싼 보석을 살 때는 가짜를 사서는 안된다. 진짜를 사야된다.
전에 처음 스님들이 중국에 여행을 갔을 때, 단계석이니 계혈석이니 하는 돌을 많이 샀다.
전각을 하거나 글씨 쓰는 사람들이 아주 좋아하는 돌이다.
벼루도 단계석 벼루가 있다. 그 분야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그 돌을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하는데 중국에 가서 단계석이라고 보니까 생각보다는 값이 쌌다.
또 계혈석(鷄血石)이라고 해서 닭 계자 피 혈자를 쓰는 돌이 있다.
피중에 닭피가 제일 붉은 빛깔인데, 돌 사이사이에 닭피가 아주 붉게 끼어있는 돌이다.
비싼 돌일 뿐더러 강도가 높아서 전각할 때 값진 돌이다.
그런 돌들을 스님들이 중국에 처음 나갔을 때 많이 샀다. 그런데 한참 버스를 타고 장거리 길을 가다가 ‘이게 진짜 계혈석이 맞나?’ 하고 어떤 사람이 불을 구해서 돌에 불을 붙여봤더니 불이 붙는 것이다. 세상에 불이 붙는 돌이 어디있는가? 그래서 스님들이 ‘전신만신 단계석 불타는 계혈석’이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단계석과 계혈석을 많이 산 스님들을 놀려주었다. 이 이야기가 전해져서 한동안 스님들 사이에서 그 노래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비싼 것을 살 때는 더욱더 진짜인가 가짜인가를 가려서 사야한다.
불법에 있어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 광대한 세계안에는 별의별 불법이 많이 있다. 그중에 진짜를 가려야 하기 때문에 불교에는 정법구현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화엄경에서도 정법을 그렇게 강조한다.
이러한 몇몇 명제들이 화엄경에서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이고,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법계연기다. 하나속에 전체가 있고, 전체가 곧 하나이다. 나와 전체, 전체와 나 이 관계가 부정할 수 없이 서로 얽히고 설켜서 엮여있는 관계라고 하는 법계연기사상도 화엄경에서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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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보리심청정(趣向菩提心淸淨)하며 : 보리의, 보리심이라고 해도 좋다. 취향하는 그 마음은 청정하다. 보리의 취향 깨달음 ‘지혜와 자비’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에 취향한 그 마음이 아주 뛰어나다. 청정이라는 낱말은 여러가지 뜻으로 풀이가 된다. 텅 비었다 공(空)하다는 뜻도 되고 아주 훌륭하다 아름답다 근사하다 라는 의미가 청정이라는 말속에 다 포함이 된다.
청정이라는 낱말이 좋다. 더러운 도량을 깨끗하게 청소했다는 협의적인 뜻에서 부터 아주 광대한 뜻까지 다 가지고 있다.
공덕광대불가설(功德廣大不可說)이라: 보리에 취향하는 그 마음이 너무 훌륭하다. 그래서 거기에 따르는 공덕이 광대해서 가히 설명할 길이 없다.
앞서 장문을 보면서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서 앞의 공덕보다 초발심의 공덕이 더 많다고 비교하는 문장들을 누차 보았다.
보리심이 그렇게 중요하므로 우리가 말로써 다 표현할 길이 없다. 그 중에 처음 발심한 것이 중요하다. 여러분들이 화엄경을 공부하려고 마음 한 번 낸 그 인연으로 이렇게 화엄경 강설책도 받고 공부도 그동안 많이 진척이 되었고 불교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을 것이다.
이런 것이 처음 발심한 인연 때문이다.
취향보리심청정, 공덕광대불가설 이러한 내용을 여러가지와 연관시켜서 생각하면 그 뜻이 무궁무진하다.
위리중생고칭술(爲利衆生故稱述)하노니: 중생들을 이익하게 하기 위한 까닭에 일컬어서 내가 서술하노니
여등제현응선청(汝等諸賢應善聽)이어다: 그대들 여러 현인 여러 어진 사람들께서는 응당히 잘 들을지어다. 이렇게 또 중간에서 열심히 듣기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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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세계진위진(無量世界盡爲塵)하야 : 한량없는 세계를 갈아서 모두 먼지를 만들었다고 치자. 작은 것을 표현하려고 하는 것이다.
사실 사람도 보다 더 큰 우주에 비교를 하면 하나의 먼지에 불과하다. 지구상 70억 인구라고 하지만 70억 중에 하나라고 하는 것은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또 눈을 돌려서 태양계, 은하계로 자꾸 펼쳐나가면 더욱 그렇다.
얼마전 신문에 지구와 환경이 거의 똑같은 별을 발견했다고 하는 소식이 전해졌다.
나는 평소에 천문학에 관심이 있어서 그 기사를 오려서 가지고 있으면서 몇 번이나 읽었다.
나사(NASA)에서 찾은 케플러라고 하는 이름을 붙인 별은 지구에서 500광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빛의 속도로 500년 동안 달린 그 끝에 있다는 것이다.
천문학에서는 늘 광년을 이야기 할 수밖에 없는데, 보통 빛이 일초에 30만 킬로미터를 간다.
똑딱 하는 순간, 1초에 삼십만 킬로미터를 가는데 그런 속도로 500년이 걸려야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지구같이 좋은 환경을 가진 별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구만 사람이 살고 생물이 살고 이렇게 문명이 발달하였으리라는 법은 없다. 무수히 많고 많은 세계가 있는데 무슨 환경 어떤 조건의 별들인들 없겠는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일일진중무량찰(一一塵中無量刹)이어든: 낱낱 먼지속에 한량없는 세계가 있다.
사람을 하나의 세계로 쳐도 한량없는 세계가 있다.
하나의 은하계도 더 많은 은하계로 비교하면 우리가 사는 은하계는 하나의 먼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도 더 많고 많은 대우주에 비교하면 역시 또 하나의 먼지에 불과하다. 사람을 대우주라고 치면 내가 늘 말씀드리지만 그 속에 360조 세포를 우리가 가지고 있다.
스님들이나 저나 50년을 살았든 60년을 살았든 70년을 살았든 80년을 살았든 한 3,40년을 설사 살았다손치더라도 한사람 한사람 사이의 인생에는 수많은 사연과 감동이 있다. 이렇게 저렇게 세월이 지나서 잊어버려서 그렇지 사람 사람마다 숱한 사연과 숱한 감동, 숱한 웃음과 숱한 눈물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이번호 염화실지에 어떤 스님을 대담한 기사를 읽고 나는 평소에 생각하듯이 내용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그 나름의 무수한 사연과 감동이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또한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다.
한 인생은 많고 많은 사람 중의 한사람에 불과하고 하찮게 생각하면 하찮은 인생일 수 있겠지만 세월이 약이라고 해서 그야말로 세월 따라 흘러가고 잊혀져서 그렇지 그 한사람의 소중한 사람의 인생에는 많고 많은 사연과 감동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낱낱이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으며 낱낱이 어떻게 다 알 수가 있겠는가.
이러한 내용도 사실은 한 먼지 속에, 하찮은 한 인생속에 무수한 사연과 무수한 감동과 웃음과 눈물들이 점철되어 있었다 하는, ‘일미진중함시방’이라는 의미로 얼마든지 해석이 가능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현상적인 하나의 사람속에 무수한 세포가 있다. 은하계역시 대 우주속의 작은 먼지일 수가 있지만 그 작은 먼지속에 무수한 헤아릴 수 없는 별들이 있고, 그 별들에는 지구같은 별이 있고 이런 저런 세계가 펼쳐져 있다.
기중제불개무량(其中諸佛皆無量)을: 그 가운데에 모든 부처님이 또 계시는데 사람 사람마다 생명생명마다 다 부처님이니까 그 한량없는 것을
실능명견무소취(悉能明見無所取)로다: 다 능히 밝게 보지만 취할 바가 없더라. 한사람 한사람의 삶 속에 무수한 사연과 감동이 있다. 그 가운데 모든 부처님이 한량이 없다. 그런 뜻으로도 얼마든지 해석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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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중생무생상(善知衆生無生想)하며 : 중생의 속사정을 우리가 잘 알되 중생이라고 하는 생각이 없다. 본래불, 본래 부처다 하는 것이다.
심불급중생 시삼무차별이다. 이 말씀은 화엄경을 푸는 열쇠중에 아주 중요한 열쇠다.
그러면 중생이 중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부처이고 그대로 마음이다.
마음이 부처요, 부처가 중생이요, 중생이 부처다.
이렇게 전부 연관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중생이라고 딱 고정지어서 생각하면 안된다.
무생상(無生想)이다. 중생을 잘 알지만 중생이라고 하는 생각이 없다.
고정되게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면 참으로 오산이다.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선지언어무어상(善知言語無語想)하고: 말의 무상함을 우리가 잘 안다. 말 같이 무상한 것이 없다. 말은 뱉아서 지나가면 금방 소리가 딱 끝난다.
그러한 사실을 알지만 그러한 언어라는 편견, 또 편협함, 치우친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삼대선시라고 해서 선가의 유명한 세 가지 선시 중에 대승찬(大乘讚)이라고 하는 선시가 있다. 거기에 보면 언어즉시도(言語卽是道)라고 하였다. 언어가 곧 도다. 한 순간 이렇게 나오면 바로 사라져 버리는 이 언어야말로 아주 참 어마어마한 의미를 담고 있는 도(道)라는 것이다.
언어에 대해서 잘 알지만 언어라고 하는 편협한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어제세계심무애(於諸世界心無碍)하야 :그래서 그 모든 세계, 중생의 세계나 언어의 세계나 아니면 이런 현상적인 세계에 마음이 걸림이 없다. 치우치면 걸린다. ‘어떤 것이다’ 라고 딱 고정되게 설정해놓고 ‘저 사람은 그런 사람이려니’하고 우리가 생각할 때 그 사람은 이미 달라져서 저만치 가 있다. 그러니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다’ 라고 규정할 수가 없는 것이고 규정해서는 안된다. 그것이 사람의 본모습이다.
규정하지 아니하고 한정지우지 아니하면 마음이 자유롭고 걸림이 없다. 그렇지 못하니 걸리는 것이다.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이지’ 라고 규정지어 놓는 것은 그렇게 규정을 짓는 나의 문제다. 상대는 별 문제가 없다.
늘 그모습으로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런 사람은 없다.
늘 변화하고 늘 달라진다. 내가 달라지고 대상도 달라진다.
*
법회 시작 전에 여행이야기도 나왔는데 나는 평소에 시간여행이라는 것을 생각한다.
우리가 몸소 어느 다른 지방에 가서 새로운 것을 보기도 하지만 가만히 한자리에 있어도 끊임없는 여행을 한다. 그것이 시간 여행이다. 일분일초가 늘 새로운 세계가 다가온다.
지금 이 시간은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시간이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그 시간이라고 하는 것이 끊임없이 다가오고 스쳐지나가고 다가오고 스쳐지나간다. 그것을 우리는 늘 새롭게 경험한다. 이보다 더 훌륭한 여행은 사실 없다.
집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해는 떴다 지고 구름이 스치고 지나갔다가 비가 내리기도 하고 개이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아주 큰 여행이다.
거기에 흔히 보통 말하는 공간여행을 한다면 이중여행이 된다.
공간여행과 시간여행이 씨줄 날줄처럼 짜여져서 더 근사한 여행이 된다.
그러한 사실을 우리가 인식해야 된다.
인식하지 못하면 공간여행만 알게 되고 시간여행을 놓치게 된다.
가만히 있어도 이 좋은 시간, 이렇게 시간여행을 나는 근사하게 하고 있다고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실선요지무소착(悉善了知無所着)이로다: 다 요지하는데 집착하는 바가 없다.자기가 알고 있는데 대한 집착도 없다.
*
기심광대여허공(其心廣大如虛空)하야 : 그 마음이 허공처럼 넓고 커서
어삼세사실명달(於三世事悉明達)하고: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일들을 다 밝게 통달하고
일체의혹개제멸(一切疑惑皆除滅)하야 : 일체 의혹을 다 제거해 소멸해서
정관불법무소취(正觀佛法無所取)로다: 불법을 바르게 관찰한다. 앞서 정법의 중요성을 말씀 드렸는데 그야말로 불법을 바르게 보는 것이 중요하다. 바르게 보아야 이익이 돌아온다.
계혈석이니 단계석이니 하는 것도 우리가 바르게 관찰하지를 못해서 가짜를 산다.그러면 손해가 막심하다. 불법은 더하다. 불법도 바르게 관찰했을 때 나에게 큰 이익이 돌아온다.
전에 5.16 일어나던 해인가? 은해사에 학인이 한 분 있었는데 그 사람은 나보다 나이가 많고 키도 나만치나 크고 아주 배구를 잘했다. 세속에서 오래살다가 들어왔는데 어느날 사석에서 ‘불교는 병 치료하는 것도 안가르쳐준다’고 궁시렁거렸다. ‘딴 데는 병 치료하는 법도 가르쳐주고 하는데 불교는 왜 치료하는 법도 안가르쳐주냐’고 하더니 어느날 없어져 버렸다.
불법이 그런 것인 줄 안 것이다.
그러한 것도 방편으로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불법의 전체인줄 알면 정관(正觀)이 아니라 사관(邪觀)이다.삿되게 보는 것이다. 뭐든지 바르게 보는 것이 첫째 내게 유익하다.
*
시방무량제국토(十方無量諸國土)에 : 시방무량제국토에
일념왕예심무착(一念往詣心無着)하야: 한 순간에 나아가서 마음에 집착이 없어서
요달세간중고법(了達世間衆苦法)이: 세간의 무수한 고통들, 많고 많은 고통들이
실주무생진실제(悉住無生眞實際)로다: 생멸이 없고, 생사가 없는 진실한 세계,진리의 세계에 모두 머물더라. 세간의 모양이 항상 주한다는 것이 진실제다.
결국은 세간의 온갖 고통이 있는 도리, 세간 중고법을 우리가 철저히 잘 알면 그것이 진리의 세계다. 생멸을 떠난 진실의 세계가 어디 있는가 하면 바로 세상사에 있다. 세상사 떠나서 달리 다른 진리의 세계가 없다.
불교를 어중간하게 공부하면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를 떠나서 진리의 세계가 따로 있는냥 막연히 꿈을 꾸는데 그 꿈에서 깨어나야 된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 삶이 그대로 생멸이 없고 생멸을 떠난 진실한 세계, 진리의 세계다. 아주 중요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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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난사제불소(無量難思諸佛所)에: 한량없는 생각하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부처님 처소에
실왕피회이근알(悉往彼會而覲謁)하고: 다 그 법회에 다 그 법회에 가서 친근하고 배알한다. 부처님을 친견한다는 말이다.
상위상수문여래(常爲上首問如來) : 항상 상수가 된다. 사람들은 어떤 모임에도 그 모임의 장이 되고자 한다. 초등학생들도 반장하려고 온갖 선거운동을 다한다고 한다. 심지어는 빵집에 데려가서 아이들에게 빵을 사주고 생일이 아닌데도 생일잔치를 벌여서 자기 집에 초청해서 잔치를 하고 돌아갈 때 차비까지 주는 부정부패도 저지른다고 한다.
그런 것이 다 우두머리가 되려고 하는 일이다.
여기는 그런 뜻과는 물론 다르지만, 항상 우두머리가 되어서 여래에게 무엇을 묻는다?
보살소수제원행(菩薩所修諸願行)이로다 : 보살이 닦는바 모든 원행을 묻는다. 보살의 길은 서원의 길이다. 진정한 불자의 길은 서원의 길, 보현행원의 길이다.
그것을 부처님께 묻는다.
선재동자도 53선지식을 친견할 때 친견하자마자 묻는 말이 있다.
‘무엇이 보살행입니까’
앞의 선지식에게도 물어봤지만 또 새로운 선지식에게 ‘어떻게 하면 보살행을 닦습니까?’하고 묻는다.시종일관 그 이야기 이다.
바쁘신 분은 선재동자 53선지식 친견하는 곳을 넘겨서 읽어봐도 좋다.
여기도 상수가 되어서 보살이 닦을 바 모든 원행, 서원행(誓願行)을 묻는다고 나와 있다.
‘무엇이 보살의 서원의 행입니까?’ 하는 이야기다.
개인의 안녕을 위해 화두를 들고 수식관을 한다. 그러한 여러가지 불교의 수행법도 개인해탈에는 중요하기는 하지만 바람직한 대승불교는 그런 것이 아니다.
대승불교는 세상의 아픔과 더불어 함께 아파하고 어떻게 하더라도 세상 사람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고 어려움을 나누는 실천이다. 선뜻 그런 일에 다가서지 못해도 그것이 진정한 불교임을 알고는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름대로 자기 힘이 닿는 데까지 법으로 하면 더욱 좋고 물질로나 아니면 일주일에 한 번씩 음식공양을 대접하는 일도 많이 하는데 그런 일이라도 하는 것이 훌륭하다.
사실은 그것이 바로 불교다. 그걸 못하면 불교라고 말할 수가 없다.
개인은 편안할지 모르지만 개인만 편안한 것은 소승불교이고 소승불교는 부불법외도(附佛法外道)라고 한다. 불교에 붙어서 사는 외도라는 것이다.
비록 우리가 그런 외도라고 할지라도 이 이치를 알고는 있어야 된다. ‘나의 그릇은 불법에 얹혀사는 외도밖에 안되는구나’ 이런 소리를 농담으로 하면서라도 ‘진짜 불법은 보살행에 있다’고 알아야 한다.
여기도 상수가 되어서 여래한테 모든 보살이 닦는 원행을 묻는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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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억념시방불(心常憶念十方佛)호대: 마음에 항상 시방의 부처님을 기억하대
이무소의무소취(而無所依無所取)로다 :의지할 바도 없고 취할 바도 없다. 부처님을 기억한다고 해서 거기에 매달리고 의지해서도 안되고 또 부처님을 취해서도 안된다.
그래도 알기는 잘 알아야 된다.
원해여래진실의(願解如來眞實義) 여래의 진실한 뜻 알기를 원한다고 하듯이 누구보다 부처님의 정신을 알기는 알아야 된다. 그렇지만 또 거기에 의지하고 집착하고 뭔가 기대를 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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