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제69칙은 마조도일선사의 문하에 대표적인 남전과 귀종, 마곡화상이 남양혜충국사를 참문하는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남전, 귀종, 마곡화상이 함께 혜충국사를 예방하러 가는 도중에 남전화상이 땅에 하나의 원상(圓相)을 그려놓고 말했다. ‘(불법의 대의를 체득한 안목으로) 한마디를 올바르게 말하면 가겠다.’ 귀종화상이 그 일원상 가운데 앉았다. 마곡화상은 여인이 절하며 인사를 하는 시늉을 하였다. 남전화상이 말했다. ‘이러한 즉 가지 않겠다.’ 귀종화상이 말했다. ‘이 무슨 수작인가?’
擧. 南泉歸宗麻谷, 同去禮拜忠國師. 至中路, 南泉於地上, 一圓相云, 道得卽去. 歸宗, 於圓相中坐, 麻谷, 便作女人拜. 泉云, 恁則不去也. 歸宗云, 是什心行.
본칙의 공안은 <전등록(傳燈錄)> 제8권 남전보원전에 전하고 있다. 중국 조사선을 완성한 마조도일의 문하에는 800여명, 혹은 1000여명의 수행자가 운집하였고, 법을 전한 제자가 139명이나 된다고 하는 것처럼, 마조의 뛰어난 제자들이 전국에서 교화를 펼침으로 조사선의 시대를 개막하게된 것이다.
<송고승전(宋高僧傳)> 제9권 석두희천전에 “강서(江西)의 주인은 대적(大寂: 마조) 호남(湖南)의 주인은 석두(石頭), 서로 왕래가 끊어지지 않았다. 당시 이 두 대사를 친견하지 못한 자를 무지한 사람으로 여겼다.”고 하며, 천하의 선승들이 모두 마조와 석두의 할을 참문하여 불법을 연마했다. 마조의 비문에 10대 제자를 언급하고 있지만, 문하에는 개성 있고 뛰어난 수재들이 많이 모였다. 분주무업과 같은 불교학자도 있고, 석공혜장과 같은 사냥꾼 출신도, 방거사도 있다.
본칙에 등장하는 남전보원과 귀종지상, 마곡보철도 마조문하의 수재들인데, 강서와 호남지방의 총림을 행각하고 당시 제도(帝都)에서 국사로 존경받고, 명성이 천하에 드날리고 있는 장안 광택사 혜충국사를 예방하고 참문하여 가르침을 받고자 출발하여 가는 도중에 일어난 사건이다.
원오는 <논어(論語)>의 말을 빌려 “3인(三人)이 동행하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지.”라고 착어하고 있다. 세 사람이 힘을 합치면 문수의 지혜가 있다는 말도 이 말을 응용한 것인데, 남전화상이 갑자기 땅바닥에 하나의 둥근 원상(圓相)을 그려놓고 두 사람을 향해서 말했다. ‘불법의 대의를 체득한 안목으로 이 원상에 대하여 한마디를 말하여 나의 뜻에 계합된다면 혜충국사를 예방하러 가겠다.’ 원오는 이러한 남전의 행동에 대하여 “바람도 없는데 파도를 일으켰다.”고 착어했다. 남전화상이 제시한 일원상은 무슨 표시인가? 일원상에 대한 법문은 <벽암록> 제33칙에 자복화상이 제시한 사례도 있다.
일원상은 우주 만법의 본체이며 원명하고 적정한 깨달음의 경지를 시간과 공간을 중복시킨 도식화로 표현한 것이다. 즉 만법의 주체인 진여법성과 본래면목을 상징화한 것으로 무상한 절대의 본체를 표현한 것이다. 일원상을 제시한 법문은 마조를 비롯하여 그의 문하에 수노, 회의, 방거사 등 많은 선승들이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일원상을 그려서 선문답의 공안으로 응용한 최초의 선승이 혜충국사이다.
<조당집> 제3권 혜충국사장에 스님이 친견하러 찾아오면 손으로 일원상을 그려 제시하고 있는 법문을 했다. <조정사원> 제2권에 “원상을 시작한 것은 남양혜충국사인데, 시자인 탐원(耽源)에게 전수하였고, 탐원은 예언(讖記)을 받들어 앙산에게 전수하니 드디어 위앙종의 가풍이 되었다.”고 전한다. 탐원은 처음 마조의 문하에서 수학한 선승으로 혜충국사의 법을 잇고 뒤에 마조의 처소로 돌아와 원상의 문답을 나누고, 백장, 마곡과도 원상의 선문답을 나누었다.
말하자면 일원상은 혜충국사가 창시한 선법의 진수이며 가풍이다. 혜충국사를 참문하는 것은 혜충국사의 얼굴을 보기위해 가는 것은 아니다. 혜충국사의 법문을 친견하기 위해 가는 길에, 남전화상은 혜충국사의 법문인 일원상을 땅에 그려놓고 귀종과 마곡 동문 두 사람의 안목을 판별해보려고 한 것이다.
종화상은 남전화상이 그린 일원상 가운데 앉았다. 우주 만법을 상징한 일원상 한가운데 앉은 것은 우주와 천지 건곤이 모두 귀종 자신과 일체가 되고 하나가 된 경지를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즉 혜충국사의 법문인 일원상의 정신을 체득하여 자기 자신의 법신으로 귀향시켜 하나 된 경지(萬法一如)임을 나타내고 있는 행동이다. 원오는 “한 사람이 장단을 맞추어 바라를 치면 같은 길에서 화합되었다.”고 착어한 것처럼, 남전이 일원상의 바라를 치면 같은 곡조에 맞추어 귀종이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명콤비를 이룬 것이라고 박수를 보내고 있다. 마곡화상은 여인이 절하며 인사를 하는 시늉을 하였다.
여인이 예배하는 인사를 관인배(官人拜)라고도 하는데, 여인과 관료들은 머리에 두관을 쓰고 머리를 장식을 하였기 때문에 머리를 앞으로 숙이고 오체투지하는 인사가 아니라 허리를 약간 굽히고 가볍게 합장하는 인사이다. 마곡이 여인의 예배를 올린 것은 일원상의 법문을 제시한 혜충국사를 향한 인사이다. 지상에 그려진 그림의 일원상에 대한 것이 아니라 혜충국사의 법신불에 대한 예배인 것이다. 원오는 “한 사람이 북을 치니 세 사람의 성자를 얻었네.”라고 착어했다.
남전과 귀상, 마곡의 세 사람이 법계에 유희하는 성자가 된 것을 칭찬하고 있다. 남전화상은 귀종과 마곡의 행동을 보고는 크게 만족하여 ‘이 정도의 안목을 갖춘 경지라면 혜충국사를 친견하러 가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그대들과 같이 훌륭한 선승이라면 일부러 멀리 혜충국사를 찾아가서 친견하고 그의 법문을 듣지 않아도 된다고 인정하고 있는 말이다. 즉 남전이 제시한 일원상은 혜충국사가 주창한 법문으로 법신의 지혜작용을 제시한 것이었다. 국사의 법문을 참문하여 듣고 깨닫는 것이나, 일원상을 통해서 깨닫고 체득하는 것이나 같은 것이기 때문에 남전은 국사를 친견하러 가는 계획을 그만두자고 말한다.
원오는 “반쯤 길을 가다가 빠져 나와야 제대로 된 사람”이라고 착어했는데, 세 사람이 국사를 친견하러 가는 행각 길의 중간쯤에 남전 혼자 전신(轉身)의 활로(活路)로 뛰어난 초월을 보였다고 칭찬하며, 원오는 남전의 일원상은 한 바탕의 연극을 멋지게 펼치도록 한 작가라고 극찬했다. 귀종화상은 ‘도대체 무슨 수작인가?’라고 말했다. 이 말은 표면적으로는 남전이 국사를 친견하러 간다고 했는데, 갑자기 앞의 약속을 파기한 것에 대한 반발적인 말로 보기 쉽다. 이러한 마음은 감정이며 중생심으로 불심의 지혜를 나누는 선문답이 아니다. 원오는 “다행히 알았다.”라고 착어하고 있는 것처럼, 귀종은 남전의 의도를 완전히 간파하고 있다고 칭찬하고 있다.
두 화상은 다음과 같이 게송을 읊었다. “유기(由基)가 화살로 원숭이를 쏘니, 나무를 끼고 도는 화살 곧바로 맞추네.” 유기는 초나라 사람으로 화살을 잘 쏘는 명인이다. ‘평창’에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원숭이를 향해 쏜 화살이 원숭이가 나무를 안고 돌지만 화살도 따라 돌면서 명중시켰다고 한다. 남전 귀종, 마곡도 독자적인 안목으로 일원상을 중심으로 펼친 선기작용은 유기가 원숭이를 명중시킨 것과 같이 불법의 대의를 확실히 체득한 안목을 제시한 것이다.
“천사람 만사람 가운데, 어느 누가 일찍 적중 시켰을까?” 예부터 선승은 수천 수만명이 있었지만, 이 세 사람만큼 훌륭한 안목으로 대의를 체득한 사람이 있을까? “서로를 부르며 말했다. “돌아가련다. 돌아가련다.” 등산을 한 뒤에는 집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며, 본래심의 집으로 되돌아가는 깨달음의 세계를 읊고 있다. “조계의 길에는 가지 않겠다.” 혜능의 불법을 계승한 국사를 친견할 필요가 있겠는가. 설두화상은 다시 말했다. “조계의 길은 평탄한데 무엇 때문에 가지 않는가?” 불법을 마음 밖에서 구하면 안 된다니까!
성본스님/동국대 불교문화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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