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제71칙은 백장화상이 오봉(五峰)에게 목구멍과 입술을 닫고 말해보라고 한다.
백장화상이 다시 오봉스님에게 물었다. ‘목구멍과 입술을 막고 어떻게 말하겠는가?’ 오봉스님이 말했다. ‘화상도 역시 목구멍과 입을 닫도록 하세요!’ 백장화상이 말했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이마에 손을 대고 그대를 바라보겠노라.’
擧. 百丈, 復問五峰, 倂咽喉唇吻, 作生道. 峰云, 和尙也須倂. 丈云, 無人處斫額望汝.
본칙의 공안도 <벽암록> 제70칙과 똑같이 <전등록(傳燈綠)> 제6권 백장전에 전하고 있는데, 본칙에서는 백장화상이 제자인 오봉상관(常觀)스님의 안목을 점검하고 있다. 오봉스님 대한 자료는 <전등록> 제9권과 <연등회요> 제7권 균주 오봉산 상관선사전에 몇 편의 선문답을 전하고 있지만 그의 생애와 생몰년대는 전혀알 수가 없다. <전등록>에 어떤 사람이 오봉스님에게 ‘어떤 것이 오봉의 경지 입니까?’라고 질문하니, 오봉스님은 ‘험준하다’ 라고 대답하고 있다. ‘어떤 것이 그 경계안의 사람입니까?’ 라고 질문하니, ‘막혔다.’라고 대답하고 있다.
오봉화상의 깨달음의 경지를 일체의 언어 문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산이 험준하여 접근 할 수 없다는 표현으로 하고 있다. 깨달음의 경계에 사는 사람은 깨달음의 경계에 갇힌 사람이다. 깨달음의 경지까지 초월해야 자유자재한 지혜작용을 무애자재하게 펼칠 수가 있는 것이다.
백장화상이 위산과 오봉, 운암에게 던진 문제는 똑같다. <벽암록> 제70칙에서는 위산이 독자적인 안목으로 대답했다. 본칙에서는 백장화상이 제자인 오봉에게 ‘목구멍과 입술을 막고 어떻게 말하겠는가?’ 라고 똑같은 문제를 제시하여 오봉의 견해와 안목을 점검하고 있다. 원오는 “하하하!”라고 크게 웃고, “화살이 신라로 날아갔다”고 착어했다. ‘이미 앞에서 그와 똑같은 문제를 위산에게 하지 않았는가? 위산의 대답으로 충분한데, 화살이 멀리 신라로 날아간 뒤에 또다시 지나간 문제를 언급해서 무엇하는가?’라고 야유를 보낸 말이다.
백장화상의 물음에 오봉스님은 ‘화상도 역시 목구멍과 입을 막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즉 그러시면 묻고 있는 화상의 입도 닫고 혀도 움직이지 말아야 합니다. 좀 심한 말로 표현한다면 화상 자신부터 입 닫고 말씀하지 마세요! 라는 역습하고 있는 말이다. 그러한 질문을 던지는 화상 본인이 먼저 입을 닫고 말하지 말라는 의미인데 공격해 온 상대를 강하게 역공(逆攻)한 말이다. 선문에는 이와 같은 역공의 지혜를 전하는 이야기가 많다.
예를들면, <무문관(無門關)> 제5칙에 향엄화상이 학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나무위에 올라가서 입으로 나무가지를 물고, 손은 나무가지를 붙잡지 않고, 발도 나무를 밟지 않고 매달려 있을 때에 나무 아래서 어떤 사람이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동쪽 중국에 온 의도는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하였다. 만약에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면 질문하는 사람의 뜻을 위배하는 것이 되고, 만약에 대답을 하게 되면 그 사람은 나무에서 떨어져 죽고, 목숨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정말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 공안은 <조당집> 제19권에 전하고 있는데, 그때 소(招)상좌가 향엄선사에게 ‘나무위에 오른 일은 묻지 않겠습니다. 나무에 오르기 이전의 일은 어떻습니까?’ 라고 역공하며 되물었다. 그러자 선사는 허허! 하고 웃었다고 한다. 문제의 해결은 문제가 일어나기 이전인 본래로 되돌아가는 것이 근본적이고 유일한 해결 방법이다. 즉 번뇌 망념의 괴로운 병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잘못된 병을 치유하여 본래 건강한 상태로 되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선의 깨달음이다.
또“어떤 사람이 선원의 어린 사미를 놀리기 위해 ‘이 찻잔의 차를 뚜껑을 열지 않고 그대로 마셔보게’라고 하자, 그 사미는 ‘찻잔의 뚜껑을 열지 않고 차를 마시겠습니다만, 차가 너무 뜨거우니 찬물을 섞어서 차를 약간 식혀 주십시요’라고 말했다. ‘그런가! 그럼 찬물을 좀 넣어 식혀주지!’하면서 찻잔의 뚜껑을 열려고 할 때 사미가 말했다. ‘아니 찻잔의 뚜껑을 열지 않고 찬물을 넣어 식혀 주신다면, 찻잔의 뚜껑을 열지 않고 차를 마시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기지를 발휘하는 대화는 문제의 근본을 파악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대응 할 수 있는 것이다. 입을 움직이지 않고 말하라고 한다면, 그렇게 지시하는 입을 움직이지 말고 지시하라고 역습하는 지혜를 원오는 “대장의 깃발과 북을 빼앗아 버렸다”고 착어하고 있다. 즉 ‘기세당당하게 북을 치고 공격해오는 백장화상의 장군 깃발과 북을 오봉스님이 탈취해서 기세를 꺾어버렸다’고 착어한 것이다. 또한 “한 마디 말로 많은 이야기를 차단해 버리니 모든 일이 잠잠하게 되었다”고 착어했다. 즉 오봉스님이 백장의 물음에 ‘화상도 입을 닫아야 합니다’라는 한 마디는 일체의 언어 문자의 갈등을 해결하여 차별심의 세계에서 절대 깨달음의 세계인 본래로 되돌려 적정의 상태가 되었다고 오봉을 높이 평가했다.
원오는 ‘평창’에 다음과 같이 오봉스님의 선기를 칭찬하고 있다. “위산스님은 자기의 영역을 굳건히 지켰고, 오봉스님은 많은 이야기를 싹뚝 끊어 버렸다. 이 본분사(일대사)의 일은 요컨대 이러한 안목을 갖춘 선승이라야 그 자리에서 곧장 지혜작용을 드러낼 수가 있다. 마치 달리는 말 앞에서 승부를 겨누는 것처럼, 머뭇거림을 용납하지 않고, 대뜸 긴급하고 신속하고, 드높게 처리했다. 오봉의 지혜작용은 드넓으며 도도한 위산스님의 경지와는 다르다. 오봉스님이 백장화상의 물음에 대한 대답은 그 자리에서 대뜸 (일체의 갈등을) 끊어버려 통쾌하고 준수하였다.”
백장화상은 오봉스님의 한마디 대답에 ‘사람이 없는 곳에서 이마에 손을 대고(斫額) 그대를 바라보겠노라.’라고 말했다. 작액(斫額)이란 말은 이마에 손을 대고 먼 곳을 쳐다보는 것을 말한다. 오봉의 한 마디가 너무나 멀고도 험준하여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경지이기 때문에 손을 이마에 대고 무인(無人)의 경계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이다. 무인(無人)의 경계란 고위(孤危) 험준하여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깨달음의 경지를 표현한 것인데, 백장은 오봉스님에게 그대가 말한 경지는 누가 접근 할 수 있겠는가? 그대 혼자 그러한 경지에 살 수 밖에 없기에 나도 멀리서 그대의 모습을 바라 볼 수밖에 없다고 평한 말이다. 깨달음의 뛰어난 안목은 인정하지만, 깨달음의 지혜를 차별세계에서 일체중생과 함께 나누는 자비가 부족하다고 평가한 말이다. 즉 백장은 오봉의 견해에 대하여 반은 인정하고 반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원오도 “땅은 드넓은데 사람이 드무니 만나는 사람이 없다”고 착어하고 있다.
설두화상은 70칙의 게송과 똑같은 형식으로 다음과 같이 게송을 읊고 있다. “화상도 입을 닫으세요” 오봉의 대답을 제일구로 제시하여, 백장이 제시한 일체의 갈등(문제)을 차단했다. “용사진(龍蛇陳) 진법을 무찌르는 재주를 보았네.” 오봉이 백장의 질문에 대응하는 자세를 읊은 것인데, 용사진은 <무비지(武備志)>와 <손자>에 언급한 것처럼, 어느 곳에서 공격해도 대응하는 지모(智謀)를 갖춘 용사의 진법이다. 오봉은 백장이 제기한 공격(문제)을 곧바로 지체없이 용사진으로 응전한 것이다.
원오는 대장군의 지모를 겸비하지 못하면 오봉과 같이 대답을 할 수 없다고 극찬하면서 “일곱가지 무기(七事: 활, 화살, 칼, 검, 갑옷, 투구, 창)를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는 장수”라고 착어했다. 유능한 선승이 구족해야 할 일곱 가지(七事)를 구족했다고 칭찬했다. “사람들로 하여금 이광(李廣) 장군을 생각나게 하니” 오봉의 전략은 정확하게 적중한 것이 활쏘기의 명인 한나라의 장수인 이광이 백발백중 맞추는 것과 같았다. “만 리 하늘가에 독수리 한 마리 떨어졌다” 백장이 던진 문제는 멀고 먼 하늘에 독수리 한 마리를 날려 보낸 것과 같은데, 이광(오봉)은 하나의 화살로 반드시 적중시켜 떨어뜨렸다.
성본스님/동국대 불교문화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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