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식30송 (론서)

아뢰야식1

수선님 2017. 12. 10. 14:37

무량겁동안 축적된 경험 마음깊이 저장 -
- 모든 존재는 무한한 과거의 끝없는 인연-

우리는 눈과 귀, 코, 혀, 피부로 객관세계를 감지하며 살아간다. 이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흔히 오관이라 하지만 불교에서는 이를 안근, 이근, 비근, 설근, 신근이라 한다. 그리고 이 다섯 가지 감각 기관이 객관 대상을 인식하는 마음 작용을 각각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이라 하며 이를 총칭하여 전오식(前五識)이라고 한다. 이 전오식은 모두 사물을 직관적으로 인식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전오식에 의식을 더하여 육식이라 하는 데, 여기서의 의식은 전오식의 지각을 통일적으로 받아들이는 지각 작용은 물론 추상적인 사유나 지성, 감정, 의지, 상상력등을 포함하는 폭넓은 의미를 지닌다.
유식불교에서는 이 육식만으로 인간을 파악할 수 없다고 믿어 마음의 심층을 탐구해 나간다. 제6식의 배후에 자리잡고 있는 잠재적인 자아의식과 비슷한 마음을 제7 말라식이라고 한다. 이는 자기애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서 이기성이나 나에 대한 집착과 같은 마음이다. 자살하려고 마음먹고 절벽에 서 있는 사람이 등 뒤에서 떨어지는 바위를 피하는 것과 같은 것은 이 말라식의 발동이라고 한다. 이러한 자기애는 생명체가 자신을 보존하고 종족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본능적이고 선천적인 장치로서, 진화의 과정에서 유전자와 같은 생명체의 내부에 각인된 맹목적인 생의 본능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전오식과 의식, 말라식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것이 마음 깊숙히 자리잡고 있다. 봄이 오면 산과 들에 푸르게 돋아나는 풀을 보고 느끼는 환희, 밤하늘의 별을 보며 느끼는 동경, 타오르는 불을 보고 느끼는 감정, 파충류를 보았을 때의 몸서리쳐짐등은 그 근원을 정확하게 기술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한 감정은 지금까지의 나의 인생에서의 경험이나 그로 인한 잠재 의식 등 어떠한 의식의 편린으로도 포착되지 않으며 또한 제7식과 연관되는 자기애만으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불교심리학에서의 독특하고 또한 탁월한 부분은 말라식보다 더 깊은 심층부에 자리잡고 있는 매우 깊고 미세한 인간의 마음인 제8 아뢰야식을 상정함으로써 이상의 예를 설명하는 데에 있다. 여기서 아뢰야식이란 무시 이래 우리 인간에게 축적된 경험의 전체이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35억년전 이 지구 상에 생명체가
태어난 이후, 무수한 생명체가 겪었던 일체의 경험이 마음 깊숙이 감추어져 저장
되어 있는 것이 바로 아뢰야식이다. 그래서 장식(藏識)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경험
이 축적되어 가는 것을 훈습(熏習)이라고 하며, 훈습되는 경험을 종자라 하기 때문
에 또한 종자식(種子識)이라고도 한다.


종자식은 의식의 전면에 부상하지는 않지만, 단순히 과거의 경험으로서 저장만 되
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나 미래를 있게 하는 힘이 된다. 그러므로 위에서 예로
든 의식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감정은 과거의 경험이 원인이 되는 아뢰야식에 의
해 나타나는 것이며, 현재의 경험은 또한 아뢰야식에 저장되어 미래에 나타나게
된다. 여기서 나타난다는 말을 쓴 것은 아뢰야식에 의하여 말라식이 지탱되고, 말
라식에 의하여 의식이 지탱되며, 의식에 의하여 지각 작용이 지탱된다는 것을 의
미한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내 앞에 놓여 있는 책상을 보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이 순간에서의 사건이 아니다.

그저 눈으로 봄으로써 안식이 생긴다는 이 사건은
언뜻 보기에 대단히 단순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35억년 생명체의 전역사가 우
리가 느낄 수 없는 방식으로 그 안에 용해되어 있는 것이다. 책상이라는 대상은
그 자체로 책상인 것이 아니라 나에게 와서 책상이라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이며,
나라는 존재는 무한한 과거와의 끝없는 인연으로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이는 실
로 무량원겁의 전역사가 안식이라는 한 생각에 녹아드는 사건이라 하겠다. (無量
遠劫卽一念)


여기서 우리는 다시 무아, 무상의 실상을 보게 된다. 내가 여기 지금 이렇게 존재
하는 것 같지만 무량겁 동안 쌓인 여러 가지 인연의 맺어짐인 8식으로 살 뿐이니
인무아(人無我)요, 또한 식에 바탕하여 사물이 실재하는 것이라고 믿지만 이 역시
인연의 맺어짐일 뿐이니 법무아(法無我)이다.


양형진 <고려대 교수·물리학과>








진여불성님의 http://blog.daum.net/amitabhapureland/140 블로그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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