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제73칙은 마조도일화상이 문하의 수제자인 서당과 백장의 안목을 평가하는 대화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어떤 스님이 마조화상에게 질문했다. “사구(四句)를 여의고, 백비(百非)를 떠나서 화상께서는 저에게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을 곧바로 가르쳐 주십시오.” 마조화상은 말했다. “나는 오늘 피곤해서 그대에게 말할 수 없으니, 지장(智藏)에게 물어보게나!” 그 스님이 지장스님에게 질문하니, 지장은 말했다. “왜 마조화상께 묻지 않는가?” 스님은 “화상께서 스님께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지장이 말했다. “나는 오늘 머리가 아파서 그대에게 말할 수 없으니, 회해(懷海) 사형에게 묻도록 하게!” 스님은 회해스님께 묻자, 회해스님은 “나는 그 일을 전혀 알지 못한다”라고 대답했다. 스님이 이러한 전후 이야기를 마조화상께 말하자, 마조화상은 “지장의 머리는 희고, 회해의 머리는 검다”라고 말했다.
擧. 僧問馬大師, 離四句絶百非, 請師直指某甲西來意. 馬師云. 我今日勞倦. 不能爲汝說, 問取智藏去. 僧問智藏. 藏云, 何不問和尙. 僧云, 和尙敎來問. 藏云, 我今日頭痛, 不能爲汝說, 問取海兄去. 僧問海兄. 海云, 我到這裏不會. 僧擧似馬大師. 馬師云, 藏頭白 海頭黑.
본칙 공안의 출처는 <조당집> 제14권 마조장인데, <마조어록(馬祖語錄)>, <전등록(傳燈錄)> 제7권 서당장에도 수록하며, 조주와 앙산, 굉지 등 많은 선승들이 사구(四句)와 백비(百非)를 떠나서 불법의 진실을 밝히는 설법을 주장하고 있다. 예를 들면, <무문관(無門關)>제5칙에 향엄화상이 입으로 나뭇가지를 물고, 발을 떼고 손을 놓고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을 대답하도록 요구하는 문제도 이 공안을 토대로 하고 있다.
또한 <무문관> 제25칙에 앙산이 미륵의 처소에서 ‘대승의 가르침은 사구를 여의고 백비를 초월했다’라고 설한 법문도 마찬가지이다. <능가경(楞伽經)〉제2권에 ‘자각한 성지(聖智)의 경계에 일체법은 자기 마음으로 나타낸 것인데, 유무(有無) 등의 사구(四句)를 여의고 자공상(自共相)을 여읜 것이다’라고 설한다.
<대승현론> 제1권에 ‘진리(眞諦)는 사구(四句)를 끊고 백비(百非)를 여읜다’라고 설하고 있는 것처럼, 절대의 진리는 일체의 언설과 개념을 초월한 입장을 말하며, 진리의 세계를 언어문자로 표현할 수 없다는 불립문자의 의미이다.
사구(四句) 백비(百非)란 불법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일체의 논의와 언어 문자를 총칭하는 말이다. 사구(四句)란 일(一), 이(異), 유(有), 무(無)라는 근본 사구(四句)로 일체의 모든 사물과 존재의 이론을 세워서 논리적으로 분별하는 것이다. 이 근본 사구를 세밀하게 구분하고 분별하면 백비(百非)가 되는데, 동일한 것(一)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다른 것(異)이 있고, 있다(有)고 말하지만, 없다(無)고 말하면 없는 것이다. 즉 어떤 사물이라도 동일한 것이지만 다름(異別)이 있고, 존재하고 있는 것이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도 볼 수 있는 견해가 있다. 이 네 가지의 입장(四句)에 또 각각 사구(四句)가 있기 때문에 16이라는 숫자가 된다. 다시 그 16에다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에 배치하면 48비(非)가 되고, 거기에 이전에 이미 일어난 일(已起)과 일어나지 않은 일(未起)은 합치면 96비(非)가 되며, 여기에 일(一), 이(異), 유(有), 무(無)의 근본 사구(四句)를 합치면 100비(非)가 된다. 이렇게 백비(百非)라는 논리를 제시하고 있지만 무수한 부정으로 연장되는 논리로서 결국 일(一), 이(異), 유(有), 무(無)의 사구(四句)에 귀결되는 것이다.
사구(四句)와 백비(百非)는 원래 고대 인도의 외도 철학에서 주장하는 것인데, 불교에서는 형식적인 이론을 초월하여 중도(中道) 실상(實相)의 가르침을 세운 것이다. 용수의 <중론(中論)>에서 제시한 ‘팔부중도(八不中道)’와 대비하여 이해해야 한다.
즉 스님은 마조화상에게 입으로 일체의 언어 문자로 펼치는 논의를 벗어나 달마조사가 중국으로 온 뜻은 무엇인가를 질문하고 있다. 이 문제는 <종경록> 제97권에 전하고 있는 것처럼, 남악회양과 탄연(坦然)선사가 처음 숭산 혜안국사를 참문하고 질문한 말이 최초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때 혜안국사는 ‘어째서 자기 자신의 의지를 묻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의지를 질문해서 무엇하려는가?’라고 반문하고 있다. <마조어록(馬祖語錄)>에도 어떤 스님이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라는 질문에 마조는 ‘지금 그대 자신의 의지는 어떠한가?’라고 반문한다. 선불교에서는 남의 의지를 묻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질문의 핵심은 달마가 전한 불법의 근본핵심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본칙에서 마조화상은 ‘나는 오늘 피곤해서 그대에게 말할 수 없으니, 지장(智藏)에게 물어보게나!’라고 말했다. 원오는 “몸은 숨겼지만 그림자는 노출되었다”고 착어한 것처럼, 마조의 대답에 사구백비를 초월한 서래의(西來意)를 제시하고 있는데, 안목이 없는 스님은 자신의 불심에서 체득하지 못하고 또 밖을 향해 불법을 구하려고 지장스님에게 질문했다. 지장은 말했다. ‘왜 마조화상께 묻지 않는가?’ 지장은 마조문하의 수제자이기에 서당(西堂)이라고 부른다. 원오는 지장의 이 한마디가 숲에서 호랑이가 뛰어나온 것이라고 평하며 지장이 몸을 바꾼(轉身) 지혜작용의 날카로움을 칭찬하고 있다. 스님은 정직하게 ‘화상께서 스님께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말하자, 지장은 ‘나는 오늘 머리가 아파서 그대에게 말할 수 없으니, 회해(懷海) 사형에게 묻도록 하게!’ 말했다. 마조는 피곤하니 지장에게, 지장은 머리가 아프니 회해에게 묻도록 한다. 스님은 백장회해께 묻자, 회해스님은 ‘나는 그 일을 전혀 알지 못한다’라고 인사말로 대답했다. 백장이 말한 ‘불회(不會)’라는 한마디는 사구를 여의고 백비를 끊은 대답이다. 원오는 “쓸데없는 말 하지 않고, 천고 만고에 깜깜하게 되었네”라고 하여 백장의 불회(不會)는 일체의 사량분별을 초월한 깜깜한 절대평등의 세계라고 착어했다.
<금강경>에 설한 것처럼, ‘설하지 않은 것이 참된 설법’인 것처럼, 사구 백비를 초월한 설법은 질문한 조사서래의를 언어 문자를 초월하여 제시한 것이다. 스님이 지장은 두통을, 백장은 불회(不會)라고 말한 전후의 이야기를 마조화상께 말하자, 마조화상은 ‘지장의 머리는 희고, 회해의 머리는 검다’라고 평했다. 마조화상이 두 제자의 견해에 대한 평가를 희고 검은 색깔, 우열과 철저와 불철저의 차별적인 사고로 접근하면 마조를 비롯하여 모두를 중생으로 타락시킨다. 백로는 희고, 까마귀는 검고, 버들은 푸르고 꽃은 붉은 것처럼, 희고, 검은 색은 조작도 아니고 차별도 아니다. 모든 자연의 존재가 모두 독자적인 본성(법성)으로 존재하고 있는 절대적인 경지이다. 마조화상은 서당과 백장이 각자 절대적인 본래심의 입장에서 독자적인 안목과 방편지혜로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을 제시한 것이라고 평가한 말이다. 자기 본래 절대의 세계가 일체의 사구백비를 초월한 경지이기 때문이다.
설두화상은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지장의 머리는 희고, 회해의 머리는 검다”고. 마조화상이 서당과 백장의 견해를 평가한 말을 그대로 읊고 있다. 원오는 “반은 닫치고(合) 반은 열렸다(開)”고 착어한 것처럼, 이 말은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사구백비를 초월한 입장에 있다. 서당과 백장도 마찬가지다. ‘눈 밝은 납승도 이 말의 참뜻을 알 길이 없네.’ 정법의 안목을 갖추지 못한 수행자는 “30년 더 수행하라”고 원오는 착어했다. ‘망아지(馬駒:마조)가 천하 사람을 짓밟으니,’ 마조화상이 말한 ‘서당의 머리는 희고, 백장의 머리는 검다’라는 이 말이 천하의 수행자들을 일시에 짓밟아 죽였다라고 칭찬했다. “임제는 날강도가 아니었구나.” 설봉이 임제를 날강도라고 평했는데, 임제의 지혜작용보다 더 훌륭한 마조대사라고 칭찬한 말이다. “사구(四句)를 여의고 백비(百非)를 끊고, 천상 인간에 오직 나만이 안다.” 물을 마시고 차고 더운 맛을 아는 사람은 오직 자기 자신 뿐이라는 사실이다.
성본스님/동국대 불교문화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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