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 해설

[스크랩] [碧巖錄] 제72칙 白丈問雲巖 - 백장화상이 운암의 안목을 점검하다

수선님 2018. 9. 23. 11:52

관련 이미지 <벽암록(碧巖錄)> 제72칙은 백장화상이 운암에게 목구멍과 입을 닫고 말해보라고 한다.

 

백장화상이 또다시 운암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목구멍과 입술을 닫고 어떻게 말하겠는가?” 운암스님이 말했다. “화상께서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백장화상이 말했다. “나의 자손을 잃어버렸군!”

 

擧. 百丈, 又問雲巖, 倂咽喉唇吻, 作生道. 巖云, 和尙有也未. 丈云, 喪我兒孫.

 

<벽암록> 제70칙에서 72칙의 공안은 <전등록(傳燈錄)> 제6권 백장전에서 인용한 것이다. 백장화상은 마지막으로 운암스님에게 문제를 제시하여 운암의 안목을 점검하고 있는 것이다. 운암담성(雲巖曇晟. 782~841)은 백장의 문하에서 20년간 수행한 뒤 약산유엄선사의 법을 계승했다. 그의 전기는 <송고승전(宋高僧傳)> 제11권, <조당집> 제5권, <전등록> 제14권에 담주운암산 담성선전에 전하고 있다. 그의 문하에 동산양개(洞山良价. 807~869)가 배출되어 조동종을 개창하였다.

 

운암스님이 처음 백장화상의 문하에서 수행하였다는 말은 <전등록> 제14권 운암장에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운암스님은 종릉 건창사람이니 속성은 왕(王)씨다. 어려서 석문사에서 출가하여 처음 백장회해선사를 친견하고 수학하였으나, 불법의 현묘한 이치를 깨닫지 못한 채 20년 동안 시자로 백장화상을 모시다가 끝내 백장화상이 열반에 들고 말았다. 그래서 약산유엄선사를 찾아가 한마디 법문에 불법을 깨닫게 되었다.” 원오는 ‘평창’에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운암스님은 백장화상의 문하에서 20년 동안 시자로 있었다. 그 뒤에 도오원지(道吾圓智. 769~835)스님과 함께 약산에 이르자, 약산유엄(藥山惟嚴. 751~834)선사가 물었다. ‘백장선사 문하에서 무슨 일들을 했는가?’ ‘투철하게 생사(生死)를 해탈하는 일을 했습니다.’ ‘투철하게 벗어났는가?’ ‘거기에는 생사가 없습니다.’ ‘20년 동안 백장의 문하에서 수행하고도 아직 번뇌(習氣)를 없애지 못했구나’ 운암스님은 약산선사를 하직하고 남전선사를 찾아 갔다가 그 뒤에 다시 약산으로 돌아와 불법을 깨달았다. 옛 사람을 살펴 보건데, 20년 동안 참구하고도 미숙하여 살에 달라붙고 뼈에 달라붙어 썩 빠져 나오지 못하였다.”

 

운암이 거기에는 생사가 없다고 말한 곳은 어디인가? 근원적인 본래심(불심)에는 번뇌 망념(生死)의 중생심이 없다는 이론에 집착하고 있다. <조당집> 제4권 약산장에 다음과 같은 일단이 보인다. “도오선사는 운암스님이 병환으로 누워있기에 문병와서 말했다. ‘이 육체를 버리고 어디서 또 만나야 할까요?’ 운암은 ‘나고 멸함도 없는(不生不滅) 곳에서 만나지요.’라고 했다. 도오선사는 말했다. ‘나라면 불생불멸(不生不滅) 하는 곳에서도 만나려고 하지 말아야지라고 말해야 한다’” 이 일단의 대화에서도 운암이 정법의 바른 안목이 구족되지 못한 선승임이 드러난다. 운암이 ‘거기에는 생사가 없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불성(심성)은 불생불멸이라는 경전의 말씀을 잘못 알고 생멸하는 것 이외에 불생불멸하는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무언가를 구하는 것은 중생의 생멸(생사)심인 것이다. 생멸하는 육체 외에 달리 불생불멸하는 법신을 인정하고 있는 것은 법신을 영혼과 식신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전등록> 제10권에 장사화상은 “불도를 수행하는 사람이 불법의 진실을 잘 알지 못하여, 종래의 중생심(識神)을 불성으로 착각하고 있다. 무량겁 이래로 생사(生死) 윤회의 근본이 되는 중생심(識神)을 어리석은 사람은 본래신(法身)으로 생각하고 있다.”

 

중생심(識神)을 불성으로 착각하고, 또한 불성은 생사윤회를 초월하고 상주불멸이라고 주장하니까 어리석은 사람은 불성을 영혼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불법의 대의를 체득하지 못하고 정법의 안목이 없는 사람은 불법인지 외도법인지도 판단하지 못하고 혼동하고 있다. 불법을 공부하는 많은 수행자들이 불성과 영혼을 착각하고 외도법을 불법으로 착각하고 있다.

 

한국에서 선승들이 입적하면 ‘新圓寂…大宗師 覺靈’이라고 위패를 적어 모시고 있다. 스승을 완전한 열반에 든 원적(圓寂)이라고 하면서 윤회하는 영혼(覺靈)으로 탈락시키고 있다. 깨달은 영혼이나 못 깨달은 영혼이라는 말도 차별에 떨어진 중생심의 견해다. 입적하신 스승의 법신을 중생으로 탈락시켜 욕되게 하는 위패임을 알고 있는 수행자는 얼마나 될까? 법신을 영혼으로 착각하고 있다. 선승의 법신을 진상(眞相)이라고 하며, 법신의 모습을 진영(眞影)이라고 한다. 스승의 위패를 모시려면 각령(覺靈)이라고 하지 말고 ‘진위(眞位)’라고 해야 한다. 또 영가축원에 속히 사바세계에 오셔서 중생을 구제해 주실 것을 축원하고 있는데 영혼으로 착각하고 있는 안목 없는 사람이다.

 

본칙에서 백장화상이 운암스님에게 “그대는 목구멍과 입술을 닫고 어떻게 말하겠는가?” 라고 운암의 견해를 물었다. 그런데 운암스님은 곧장 “화상께서는 목구멍과 입술을 닫고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라고 반문했다. 얼핏 보면 운암의 대답은 문제의 초점을 질문자에게 되돌리는 훌륭한 응답처럼 보이지만, 운암은 백장화상의 말에 사로잡혀서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반문이다. 즉 자신의 안목을 전혀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앞의 70.71칙에서 살펴본 것처럼, 백장화상의 똑같은 물음에 위산스님은 “화상께서 말씀해 보세요.”라고 한 말이나, 오봉스님처럼 “화상도 입을 닫아야 합니다!” 라는 대답은 백장의 언구를 초월한 독자적인 선기(禪機)를 제시했다.

 

운암의 대답은 위산과 오봉스님의 대답과는 전혀 다르다. 운암스님은 불법의 대의를 체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법의 안목이 구족되지 못한 대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원오는 운암의 대답은 마치 칼을 잡고 고기의 살과 뼈 사이를 판단하여 쓰지 못하고 칼이 “살에 달라붙고, 뼈에 달라붙네.”라고 착어한 것처럼, 백장의 물음을 파악하지 못하고 그의 말에 집착하여 대답한 것을 비판했다. 원오는 또 백장화상이 묻는 언어의 진흙탕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고 하며, “앞으로 가자니 마을도 없고, 뒤로 돌아 가자니 주막도 없다”고 평하고 있다. 불법에 대한 안목이 없기 때문에 중생심의 미로에 헤매고 있어 지혜의 눈으로 아무 것도 밝히지 못한 멍청한 답변이라고 질타하고 있다. 그래서 백장화상은 “나의 자손을 잃어버렸다!”라고 말했다. 원오는 “이러한 답변은 앞으로 못가고 뒤로도 못간다”라고 착어했다. 이 말은 70칙에서 백장이 위산에게 “나는 사양치 않고 그대에게 말해주고 싶지만 훗날 나의 자손을 잃을까 염려스럽다”라는 말의 전반을 언급하지 않고 뒷부분만을 말한 것은 운암을 전혀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즉 불법의 혜명을 계승해야할 제자가 불법의 대의를 체득하지 못하고 정법의 안목이 없으니 부처님의 혜명을 계승하여 중생구제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없게 되었음을 한탄한 말이다.

 

<전등록> 제6권에 백장화상이 황벽에게 “견해가 스승과 같으면 스승의 덕을 반감하고, 견해가 스승보다 뛰어나야 비로소 전수할 수가 있다. 그대는 스승을 초월(超師)한 지혜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같은 말이 <조당집> 제7권 암두장, <임제록(臨濟錄)>등에도 많이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당대의 선승들은 뛰어난 제자를 길러 부처님의 혜명을 계승하도록 선의 교육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한다.

 

설두화상은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화상은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라고 백장의 물음에 끄달려서 말했네. “황금빛 털 사자는 땅에 웅크리고 앉아 있지 않네.” 사자가 사냥을 할 때는 온몸을 땅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기세를 펼치고 기회를 포착하여 순식간에 사냥을 한다. 운암 역시 황금빛 사자로서 소질은 갖추고 있지만, 수행이 원숙하지 못하여 안목이 없고, 불법의 대의를 체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자와 같은 자유자재한 지혜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삼삼오오 옛길을 가는데” 사실 운암뿐만 아니라 고금을 통해서 수많은 참선 수행자들은 똑같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경전과 어록을 읽고 불조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지만, 분위기만 답습할 뿐 독자적인 안목을 체득하지 못하고 있다. “대웅산 아래서 부질없이 손가락을 튕긴다.” 운암도 백장산에서 20년 동안 백장의 지도를 받았지만 깨닫지 못하고 있네.

 

성본스님/동국대 불교문화대학 교수

출처 : 淨土를 그리며...
글쓴이 : 느린 걸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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