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염송

[스크랩] 禪門拈頌 42. 정병(淨甁)

수선님 2018. 9. 23. 11:56

깨침과 깨달음

 

본칙

위산(爲山)이 백장(百丈) 밑에서 전좌(典座) 소임을 보고 있었는데, 백장이 대위산(大位山)의 주인을 뽑기 위해 수좌(首座)에게 분부하였다.

“대중에게 공표하라. 동떨어진 사람이 있으면 주지로 뽑으리라”하고 정병을 가리키며 말했다. “정병이라 부르지 말지니, 그대들은 무엇이라 하겠는가?”

수좌가 말했다.
 
“나무말뚝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백장이 이를 수긍하지 않고 선사에게 물었더니, 선사가 정병을 걷어찼다. 백장이 웃으면서 말했다.
 
“수좌가 산사람(山人)에게 졌도다.”

염·송·어

삽계익(雨溪益)이 말했다.

“산마루에 꽂힌 깃발 돌보지 않고
한 칼로 쏜살같이 장막으로 들어가네.
긴 창, 짧은 방패, 전혀 쓰지 않고서
장의 황금병부 빼앗아 돌아오네.”

지해청(智海淸)이 송했다.

“백장의 담 앞에서 위산의 주인 고르는데
황금털 사자들은 있는 위세 다 부렸네.
정병이 쓰러지자 근본 자리 돌아가니
천리의 순풍이 땅덩어리를 움직인다.”

육왕심(育王諶)이 송했다.

“주머니에 송곳 넣어 끝이 보이지 않더니
송곳 끝 나오는데 까닭이 있었도다.
정병을 걷어차서 별 다른 일 없게 되니
내 집 돌아오자 쉬게 하였네.”

지비자(知非子)가 송했다.

“한(漢)나라 뜰에 단을 모아 장군직책 배수할 때
어떤 객은 제멋대로 재주를 부렸다네.
덕과 재주 헤아려 살피지 않고
공연히 공과 상을 탐내었도다.
작가(作家)가 정병을 차서 쓰러뜨리니
나무말뚝 그 어찌 주인 노릇하리요.”

감상

위산이 백장의 뒤를 이은 것은 정병을 걷어 차버렸기 때문이다. 말로써 말을 받은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마음으로 백장의 뜻을 간파한 것이다. 전좌는 저 아래 허드레 일을 하는 자이고, 수좌는 제자 중의 우두머리이다. 이 위계질서를 단번에 뒤집은 것이 위산의 기개이다.

아마도 백장은 위산의 이러한 장군의 기개를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주저하고 머뭇거림없이 한 칼로 쏜살같이 들어가서 황금병부를 빼앗아 돌아왔다는 것은 이런 사정을 말한 것이다.

백장이 정병을 예로 든 것 또한 흥미롭다. 정병은 변소에 가서 일을 본 다음 뒤를 씻어내기 위해 물을 넣어 두는 병이다. 세상의 더러움을 씻어낼 산의 주인을 택하고자 한 백장의 시험은 천리의 순풍이 제대로 땅덩이를 움직이듯 주인을 만나 타파되었으니 수좌가 설 자리는 없는 것이다.
 
최동호/고려대 국문과 교수
출처 : 淨土를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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