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염송

[스크랩] 禪門拈頌 43. 검은 암소

수선님 2018. 9. 23. 11:56

깨침과 깨달음

 

본칙

위산이 대중에게 보이며 말했다.

“내가 죽은 뒤엔 산 밑 마을에 가서 한 마리의 검은 암소가 되어 왼쪽 겨드랑이 밑에 ‘위산의 중, 아무개’라 쓰겠다. 그때 만일 위산이라 하면 암소를 어찌하며, 염소라 하면 내 이름은 어찌하겠는가?”

이 말을 듣고 앙산이 나서서 절을 하고 물러갔다.

염·송·어

파초청(芭蕉淸)이 송했다.

“위산이 소 한 마리, 고이 길렀는데
예사로 밭이나 가는 그런 소가 아닐세.
여러 성인 원래로 딴 까닭 없거늘
세간의 미혹한 사람들 소를 알지 못하네.”

천의회(天衣懷)가 송했다.

“위산의 검은 암소가
콧구멍 무게가 세 근이라
여덟 마리 낙타가 일으키지 못한다.
일으키지 못함이여!
관음의 묘한 힘이
세간의 괴로움을 구제하시네.”

황용남(黃龍南)이 송했다.

“천만 마리 검은 암소가 떼를 지어도
위산의 한 마리에 지나지 않네.
무심히 갈무리하면 항상 나타나건만
눈 여겨 살피면 찾을 수 없네.
크도 않고 작도 않지만 힘이 있으니
한 몸에 두 이름, 아는 이 적다.
인연 따라 놓아주니 초목이 푸르고
저녁나절 몰아들이면 천지가 어둡다.
놓거나 끌거나 고삐를 잡아야 하니
고삐가 없으면 겨냥할 길 없도다.
세상에 하많은 고삐없는 사람이
빤히 보며 도적소를 놓치었나니.”

곤산원(崑山元)가 송했다.

“위산의 검은 암소여,
얼굴과 구명 속이 그 모양인데
겨드랑이에 이름을 표한다지만
눈앞에 보이는 것, 중의 모습 아닐세.
혹은 이끼 낀 개울가에서 서성이고
때로는 우뚝한 산봉우리에 섰다.
눈썹을 곧추세우고 봐라.
구름은 천 길, 만 길이로다.”

감상

검은 암소를 위산이라 불러도 안되고 위산을 검은 암소라 해도 안된다. 고삐를 놓친 자는 그 자신이 도적이 된다. 천만마리 암소가 떼를 지어도 오직 한 마리 암소에 지나지 않는다. 천변만화하는 진리의 통찰에 위산의 참뜻이 있다. 겨드랑이 밑에 이름을 써 붙인다는 것은 하나의 방편일 뿐이다.

위산의 검은 암소가 묘한 힘으로 세간의 어려움을 구한다. 검은 암소의 콧구멍 무게가 세 근이라니 절묘한 도치법이다. 눈썹을 곤두세우고 보면 검은 암소가 위산이고, 위산이 검은 암소이다. 천길 만길 구름 속 우뚝한 봉우리에 위산이 서 있다.
 
최동호/고려대 국문과

 

출처 : 淨土를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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