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 이야기

[스크랩] 화엄경 노트 (52-1 초발심공덕품 7. 법혜보살의 중송)

수선님 2018. 9. 23. 12:30

 

 

 

 

 

 

 

이곳은 공부에 관한한 무한정 퍼주는 곳

 

법회는 3시에 열리지만 어김없이 2시가 되면 큰스님이 내려오신다. 선원앞에서 큰스님을 기다리는데 빗방울이 후두득 떨어졌다.

양산 겸용이지만 마침 우산을 들고 있어서 차에서 내리시는 큰스님께 얼른 뛰어가 우산을 받쳐 드렸다.

그 우산으로 나를 가릴 수 있나?”

하고 큰스님께서 웃으셨다. 언젠가 동화사에서 열리는 승시(僧市 : 스님들의 물물교환장터) 구경을 가신 큰스님이 뙤약볕에 계신 것이 안타까와서 보살님들이 양산을 씌우드린 사진이 <인터넷 다음 까페 염화실>에 올라온 적도 있었다. 그 때 양산이 꼭 모자같다고 하면서 모두가 즐거워했었다.

*

선원에 오르시기 전에 늘 그렇듯이 법공양실에 먼저 들르셨다. 책꽂이가 거의 비었다.

그동안 많이 들어왔었는데 아따 장사 잘 되네?”

하시면서 큰스님은 인기가 많은 금강경 사경집과 또 다른 사경집을 직접 전화로 다시 주문 하셨다.

*

화엄경을 공부하러 새로 오신 스님들이 세 분 계셨다.

그중에 그동안 나온 씨디와 염화실지를 챙기시는 비구니 스님에게 큰스님은

새로 오신 스님? 왜 이제사 왔어요.” 하시면서 너무 고마워요.”하셨다.아직 화엄경 시작이라.”고도 하셨다.

*

만발다, 만발!” 하고 큰스님께서 문수선원 사무장이신 만발다 보살님을 부르셔서 책상위에 놓인 삼대선시 복사본을 누가 공양올렸는지 물으셨다.

자원봉사를 오시는 혜일성보살님의 거사님이 집에서 복사에 제본까지 다 하셨다고 하자 아주 재주가 좋다고 칭찬하셨다. 이번 초파일 등표도 거사님이 쓰셨다고 하셨다.

*

거제에서 처음 오신 스님이 인사를 올리셨다.

...아유 잘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 번씩 나와가지고 바람도 쐬고. 다 그런 기분으로 와. 한달에 한 번씩 바람도 쐬고 공부도 하고 여러 가지 포교 자료도 얻어가고.”

마음은 그런데 인연은 안 닿았어요. 우연히 오늘 마음을 냈습니다.”

여기 사경책 엄청 찍어가지고 무한대로 공급하거든. 신도들에게 사경 가르치려면 밑에 법공양실이 있어요. 거기서 신도들에게 가르칠 만한 것 있으면 가져가고. 여기는 공부에 관해서는 무한정 퍼주는 데라.” 하셨다.

 

이윽고 상강례

법회의 시작

 

 

大方廣佛華嚴經 卷第十七

初發心功德品 第十六

. 法慧菩薩重頌

 

 

 

오늘도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제 3권이 여러분 손에 들려있다.

서문을 펴서 큰 소리로 같이 서문을 읽는 것으로 점안의식을 대신하겠다.

 

서문

 

인생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루하루가 최상의 축제입니다.

그 축제를 한껏 즐기고 누리는 길은 인생이 축제라는 사실을 설파하여 그 축제에 눈을 뜨게 한 화엄경을 공부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화엄경을 읽으며 화엄경의 바다에서 마음껏 유영하다 보면 인생이라는 축제 속으로 깊이 젖어 듭니다. 즐겁고 기쁘고 환희에 넘치는 축제에 도취되어 있는데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축제를 즐깁시다.

화엄경을 공부하고 천착하면서 축제를 즐깁시다.

우리는 무수한 생명체 중에서 사람으로 태어났고 불법을 만났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인류 최고의 걸작인 화엄경을 이렇게 만났습니다.

부디 사람으로 태어난 보람을 화엄경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201421

신라화엄종찰 금정산 범어사

如天 無比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세 권째 권을 다같이 점안했다.

81권을 회향할 때까지 부디 한 분도 빠지지 말고 이렇게 같이 서문을 읽으면서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

화엄경 교재 461(민족사 ) 초발심공덕품을 공부하고 있다.

불교공부를 하다보니 참으로 발심이라고 하는 것, 그것도 첫발심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우리도 발심을 해서 이렇게 모여 공부를 한다.

일상생활에서도 초심을 잃지말자는 말을 잘 쓴다.

처음 사찰에 찾아오던 날, 그 가슴 떨리는 감동, 그 기분을 날마다 새롭게 가지면서 사찰 생활을 하고 불교를 나누고, 화엄경을 공부한다면 그보다 더 축제인 인생은 없을 것이다. 매일매일이 첫 발심이 되는 인생은 날마다 축제다. 나는 문수선원 벽에 <금세기 최고의 축제 화엄경강설 만일 결사>라고 하는 글귀를 써서 플랭카드를 붙여놓았다. 내 나름대로 인생을 느끼면서 깨달은 한 표현이다.

 

 

31, 勝法莊嚴

 

菩薩於一毛孔中普現十方無量刹하니

或有雜染或淸淨이라 種種業作皆能了로다

一微塵中無量刹無量諸佛及佛子

諸刹各別無雜亂如一一切悉明見이로다

於一毛孔見十方盡虛空界諸世間하니

無有一處空無佛이라 如是佛刹悉淸淨이로다

於毛孔中見佛刹하며 復見一切諸衆生

三世六趣各不同晝夜月時有縛解로다

如是大智諸菩薩專心趣向法王位하야

於佛所住順思惟하고 而獲無邊大歡喜로다

 

보살이 한 털구멍 좁은 가운데

시방의 무량세계 나타내나니

어떤 세계 물들고 혹은 청정해

가지가지 짓는 업() 능히 다 알고

한 티끌 속에 있는 무량한 세계

수많은 부처님과 여러 불자들

세계가 다 달라도 섞이지 않아

하나처럼 일체 티끌 분명히 보며

한 터럭구멍에서 시방을 보니

온 허공에 가득한 수많은 세계

부처님 안 계신 데는 한 곳도 없고

이러한 세계들이 모두 청정해

털구멍 속에서 부처님 세계를 보고

또 다시 온갖 가지 중생을 보니

삼세의 여섯 갈래 같지 않으며

밤낮으로 속박하고 풀림이 있네

이렇게 큰 지혜인 여러 보살들

전심으로 법왕 지위 향해 나아가

부처님 머무신 곳 따라 생각하고

그지없는 큰 환희를 지금 얻었네

 

*

승법장엄(勝法莊嚴): 삼세제불의 뛰어난 법을 장엄하다

*

수승한 법으로써 장엄한다는 내용이다.

초발심공덕품 역시 게송에 앞서 산문이 나왔었다. 일반에서는 긴 호흡의 문장을 산문이라고 하지만, 전통적으로 불교에서는 장문이라고 한다. 장문으로 초발심 공덕에 대한 이야기를 다 했는데 같은 내용을 시의 형식인 게송으로 다시 복습한다. 장문에서 빠진 부분을 부연하고 보다 더 아름답게 다듬어서 표현함으로써 우리 마음 땅에 경전내용이 더욱 더 깊이 젖어들게 하는 것이다.

법화경도 그렇고 화엄경도 그렇고, 경전은 늘 그렇게 구성된다. 장문으로 설명을 하고 나서 게송으로써 뒷받침을 하는 그 형식이 아주 잘 되어있다.

*

보살어일모공중(菩薩於一毛孔中): 보살이 한 모공 가운데서

보현시방무량찰(普現十方無量刹)하니 : 시방무량세계를 널리 다 나타낸다.

우리는 어릴 때 막연하게도 보현보살의 모공 가운데 산다는 말을 들어왔다.

화엄경에 늘 등장하는 존재원리다. 법성게에도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이라고 해서 이 존재원리를 요약한다.

우주는 전부 보현보살의 한 모공 속에 존재한다. 모공 하나가 한 우주라니 보현보살은 얼마나 크겠는가? 지구상에 70억 인구가 있는데 전체를 놓고 본다면 그 중에 한 명의 사람은 있으나 마나한 미미한 존재다. 그렇게 유야무야한 인간 존재이지만 한 사람의 인체 속에는 또 무수한 세계가 있다. 한 사람에게 60조의 세포가 있고 그 60조 안에 각각 또 60조씩의 세포가 들어있다. 보현보살이 아닌 유야무야한 한 사람도 역시 일모공중에 시방무량찰을 나타낸다.

일모공중(一毛孔中)에 시방무량찰(十方無量刹)을 나타내고 있다는 말은 현재 우리가 과학으로도 이해하고 있는 인간세계, 우주의 구성과 똑같다.

혹유잡염혹청정(或有雜染或淸淨)이라: 그 생김새가 어떻냐. 혹은 여러가지가 뒤섞인 곳이고, 물들인 곳, 더러운 곳, 혹은 청정한 곳이다. 각양각색이다. 우리 신체의 구성도 가만히 살펴보면 눈은 초롱초롱 하고 손발은 아주 건강하지만 감기에 걸리기도 하고, 치아도 썩어있고 온갖 곳에 병든 데가 많다. 그런 것들은 그런 것들 대로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치아가 한 개 썪었다고 하면 잡염이다. 잡염된 그 속에는 무수한 세균이 있다. 청정도 마찬가지다.

종종업작개능료(種種業作皆能了)로다 : 가지가지 업으로 짓는 것들을 다 능히 깨달아 안다. 환하게 들여다 보고 있다.

 

*

일미진중무량찰(一微塵中無量刹):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나 일미진중무량찰이나 똑같은 표현이다. 무량찰에

무량제불급불자(無量諸佛及佛子): 한량없는 부처님이 계시고 또 부처님 제자가 있어서

제찰각별무잡란(諸刹各別無雜亂): 모든 세계들이 각각 다 다르지만 어지럽지 않다.이 자리만 하더라도 100여명이 되는 스님들이 다른 지방에서 다른 사고(思考)로 각각의 다른 인생을 살다가 여기 같이 모였다. 각각 다르다고 하는 별업(別業)의 입장에서 보면 업이 전부 다르다. 그러나 같은 업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공업(共業)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다 같은 대한민국에 살고 있고, 한국말을 쓰고 있고 있고, 거기다 더하여 똑같이 부처님 제자라고 하는 사실이 같다. 공업과 별업이 함께 존재하지만 각자가 다 나름대로 자기 갈 길을 가는데 잡난하지 않다.

여일일체실명견(如一一切悉明見)이로다 : 하나와 같이 일체를 다 밝게 보도다. 한사람의 삶을 다른 사람과 연관시켜서 생각해 보면 다 거의 같은 원리, 같은 패턴으로 인생이 돌아가고 있다. 그 사실을 안다는 것이다.

*

어일모공견시방(於一毛孔見十方): 한 모공에서 시방의

진허공계제세간(盡虛空界諸世間)하니 :진법계, 진허공계 그리고 제세간 진허공계와 온 세간을 다 보니

무유일처공무불(無有一處空無佛)이라 : 한 곳도 부처님 안계신 곳이 없더라. 일모공 안에 시방세계가 있고, 그 시방세계, 온 허공계, 온 세간을 낱낱이 살펴봐야 부처 없는 곳은 한 곳도 없더라. 글자대로 새기자면, ‘한 곳도 텅 비어서 부처 없는 곳이 있음이 없더라라고 하는데, 이말은 곧 부처 없는 곳이 없다는 말이다. 전부가 낱낱이 부처다.

그래서 화엄경의 사상은 사람이 부처다라고 하는 인불사상(人佛思想)을 넘어서, ‘삼라만상 천지만물 두두물물이 다 부처다라고 하는 만유개불사상(萬有皆佛思想)이다.

무유일체공무불, 한 곳도 부처 없는 곳이 없더라, 이 말이 곧 만유개불사상을 나타낸다

여시불찰실청정(如是佛刹悉淸淨)이로다: 이와 같은 부처 세계가 실청정이라. 모두 다 아주 훌륭하고 뛰어나다. 낱낱이 그 무엇도 훌륭하지 아니한 것이 없다. 잎은 잎대로, 줄기는 줄기대로, 가지는 가지대로, 다 자기 역할을 한다. 뿌리는 뿌리대로 열매는 열매대로 전부 동격이다. 격이 같고 값이 같다.

그런데 우리는 열매만을 따고 싶어하니까 열매에만 초점을 맞추고 열매만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잎 없이 열매가 생길 리가 없고 뿌리 없이, 가지없이 열매가 생기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다 그 값이 같다. 여시불찰 실청정이다.

*

어모공중견불찰(於毛孔中見佛刹)하며 : 모공 가운데서 불찰을 보며

부견일체제중생(復見一切諸衆生): 부처의 세계만 보는 것이 아니고 일체의 모든 중생들을 다시 본다.

삼세육취각부동(三世六趣各不同): 과거 현재 미래, 또 거기에 딸린 지옥 아귀 축생 인도 천도 아수라 여섯가지 범부의 세계가 각각 부동함과.

지옥 아귀 축생 인도 천도 아수라를 육취, 육도라고 하고, 성문 연각 보살 불() 이렇게 4가지 성인의 세계를 사성이라고 한다. 이것을 합쳐서 사성육범(四聖六凡)이라고 한다.

여기는 육취만 나왔지만, 그것의 각각 부동함과

주야월시유박해(晝夜月時有縛解)로다: 낮과 밤, 달과 시간, 이것이 속박되어 있거나 해방되어 있음을 본다. 우주는 보현보살의 모공 속에 있고 그 모공 속에 있다는 사실을 발심한 보살들의 안목으로 보는 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시간성, 공간성, 그 속에 4가지 성인의 세계, 6가지 범부의 세계, 이 모든 것들 그리고 주야월시 이것이 속박되어 있거나 아니면 해방되어 있고 풀어져 있는 것들이 각각 다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한 환경 속에 살고 있지만, 사람 사는 것에 따라서도 그 사는 모습이 다 각각 다르다.

*

여시대지제보살(如是大智諸菩薩): 이와 같은 큰 지혜의 모든 보살들이

전심취향법왕위(專心趣向法王位)하야: 오로지 하는 마음으로 법왕위를 취향할 뿐이다. 법왕의 지위를 취한다.

공식적으로 모든 불자들은 성불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불자들은 인사도 성불합시다라고 한다. 속으로 생각하는 개인의 목표는 어떻든 성불이라고 하는 법왕위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모든 불자들의 공식적인 목표임을 부인하거나 변명할 수 없다.

어불소주순사유(於佛所住順思惟)하고 :부처님 머무는 바에 수순해서 사유한다.

우리가 오로지 하는 마음으로 법왕위를 향해 간다면 우리의 온갖 생각과 행동이 부처님 머무는 곳에서 수순해서 사유해야 된다. 서산스님의 선가귀감(禪家龜鑑) 서문에 보면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면 말하지 아니하고 부처님의 행동이 아니면 행동하지 아니하고 부처님의 생각이 아니면 생각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있다. 부처님이 머무는 바에 수순해서 사유하면 결국

이획무변대환희(而獲無邊大歡喜)로다: 끝없는 큰 기쁨을 얻게 된다.

진정 이 불법 안에서 신심으로 살고 그 속에서 어떤 원리와 부처님이 가르치시고 부처님이 깨달으신 그 진리를 하나하나 터득해낸다면 그 환희와 기쁨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무변대환희를 획득하게 된다.

나는 여러 스님들 덕택에 이렇게 화엄경을 공부하고 화엄경 강설 책도 쓰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재주 없는 사람이 반복해서 화엄경을 공부한다. 그런데 싫증한 번 난 적이 없이 늘 재미 있다. 이 일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가 재미없다면 못하는 일이다. 나 나름대로 그 환희가 한 번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샘물 솟듯이 끊임없이 솟는 것이다.

 

 

32, 說法智慧

 

菩薩分身無量億하야 供養一切諸如來하며

神通變現勝無比하야 佛所行處皆能住로다

無量佛所皆讚仰하며 所有法藏悉耽味하며

見佛聞法勤修行如飮甘露心歡喜로다

已獲如來勝三昧하야 善入諸法智增長하며

信心不動如須彌하야 善作群生功德藏이로다

慈心廣大遍衆生하야 悉願疾成一切智호대

而恒無着無依處하야 離諸煩惱得自在로다

哀愍衆生廣大智普攝一切同於己하야

知空無相無眞實호대 而行其心不懈退로다

 

보살의 분신들이 한량없는 억이라

온 세계 모든 여래 공양하오며

신통변화 나타냄이 비길 데 없어

부처님 행하는 곳 모두 머물고

한량없는 부처님께 공부를 쌓아

많은 법장 모두 다 맛들여 알며

부처님 뵙고 법을 들어 닦아 행하니

감로를 먹은 듯이 마음이 환희하며

여래의 수승한 삼매 이미 얻었고

모든 법을 잘 알아 지혜가 증장하며

믿는 마음 동요치 않고 수미산처럼

중생들의 공덕장 잘도 짓도다

인자한 마음 넓고 커서 중생에게 두루하여

온갖 지혜 이루기 원하면서도

집착하고 의지한 데 항상 없어서

모든 번뇌 여의어 자재 얻었고

중생을 사랑하는 넓고 큰 지혜

모든 이를 거두어 내 몸과 같게

모양 없고 진실찮고 공한 줄 아나

그 마음 행하여서 게으르지 않네

 

*

설법지혜(說法智慧): 설법하는 지혜의 힘을 얻다

*

보살분신무량억(菩薩分身無量億)하야 : 보살의 분신은 한량없는 억이다.

공양일체제여래(供養一切諸如來)하며: 일체 모든 여래에게 공양한다. 이것은 초발심 보살의 삶이다. ‘진정으로 불법에 발심한 사람은 이렇게 산다라고 이해해도 좋다.

신통변현승무비(神通變現勝無比)하야 : 신통이 변화해서 나타난 것이 그 수승함이 비교할 데 없더라. 그래서

불소행처개능주(佛所行處皆能住)로다: 부처님이 행한 곳에 다 능히 머묾이로다.

*

무량불소개찬앙(無量佛所皆讚仰)하며 : 한량없는 부처님 처소를 찬탄하고 우러른다. (화엄경, 민족사p.461)에는 찬()자가 잘못됐다. 말씀 언 변이 붙은 찬탄할 찬()를 써야하는데 뚫을 찬()자가 쓰여졌다. 찬탄하고 우러르며

소유법장실탐미(所有法藏悉耽味)하며: 있는 바 법장을 모두 탐미한다. 맛본다. 거기에 아주 탐닉해서 빠져서 맛을 본다. 법장은 팔만대장경을 말한다. 그 팔만대장경의 대표는 화엄경이다.

내가 화엄경을 공부해 보니 그동안 다른 경전이나 어록에서 공부했던 것들이 화엄경 안에 다 들어 있다. 불교에 입문한 사람에게 무조건 처음부터 화엄경을 가지고 가르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화엄경을 가르치다 보면 그 안에 천수경도 있고 반야심경도 있고 일체 소승교리 대승교리가 다 들어있다.

그래서대방광불화엄경자(大方廣佛華嚴經者)는 무진수다라지총명(無盡修多羅之總名)’이라고 한다. 무궁무진한 수다라, 경전의 총체적인 이름이 대방광불화엄경이라는 것이다.

대방광불화엄경 하면 그 안에 모든 팔만대장경이 다 포함된다.

내가 직접 공부해보니 모든 불교내용이 화엄경 속에 다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여러스님들이 불교를 가르칠 때 처음부터 끝까지 화엄경 교재를 가지고 가르쳐도 좋다. 처음도 화엄경 중간도 화엄경 마지막도 화엄경으로써 가르치는 것이다.

오늘 내가 여러 스님들에게 대방광불화엄경강설 세 번째 책을 드렸는데 그것을 가지고 활용해도 좋다. 음도 달고 번역도 달고 간단한 해석도 달아 놓아서 교재로써 아주 친절하다.

거기에 여러 스님들의 각자 견해를 더 보태어서 신도들에게 설명하면 얼마나 근사하겠는가.

각자 사찰에서 인연따라 대방광불화엄경강설책을 교재삼아서 강의하면 좋다.

처음부터 끝까지 화엄경 하나만으로 불교를 공부해도 아무 손색이 없다. 아니 손색이 없는 정도가 아니고 제일 훌륭한 교재가 된다.

다른 법장을 다 일일이 안해도 화엄경에만 빠져도 된다.

견불문법근수행(見佛聞法勤修行): 부처님을 친견하고 법을 들으며 부지런히 수행하는 것은. 여기에 수행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답이 분명하게 나와 있다.

화엄경을 공부하고 있는 이 사실이 수행이다. 견불문법근수행이라고 했다.

화엄경 안에서 부처님을 발견하고, 화엄경 안에서 진리를 깨닫고, 화엄경 안에서 부처님 법문 듣는 이것이 최상의 수행이다. 부지런히 수행하는 것을

여음감로심환희(如飮甘露心歡喜)로다: 마치 가뭄으로 목이 타는데 감로수를 마시는 것과 같이 한다. 마음이 환희에 넘친다. 초발심공덕품의 게송 부분이 아주 좋은 내용들이다. 이런 수행들을 하다보면

*

이획여래승삼매(已獲如來勝三昧)하야 : 이미 여래의 수승한 삼매를 얻어서

선입제법지증장(善入諸法智增長)하며: 널리 제법에 들어가서 지혜가 증장한다. 제법은 모든 존재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이치다. 제법에 들어간다고 하는 말은 하나하나 거기에서 눈을 뜨고 깨닫게 되는 것을 말한다. ‘야 바로 이거구나풀 한포기 성장하는 데서도 우리가 눈을 뜰 수가 있고,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 하나에서도 지혜의 눈을 뜰 수가 있다.제법에 잘 들어가서 지혜가 증장하며

신심부동여수미(信心不動如須彌)하야 : 그 신심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수미산과 같다. 수미산을 움직일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앞의 현수품에서도 우리가 신위도원공덕모(信爲道元功德母)장양일체제선법(長養一切諸善法)’이라고 하는 유명한 구절을 보았다. 이 구절을 못외운다면 그 사람은 화엄경을 봤다고 할 수가 없다.

선작군생공덕장(善作群生功德藏)이로다: 모든 중생들 공덕의 창고를 잘 만들도다.

선작은 잘 짓는다는 뜻이다. 그 신심이 출중하고 그 신심이 뛰어난 사람을 선두로 해서 거기에 따르는 많은 신도들, 많은 추종자들의 공덕의 창고가 된다.

스님들은 사찰에서 크든 작든 간에 그 나름대로 사람을 상대하고 신도들을 상대한다. 또 신도들 덕택에 살아가는데 그 은혜는 부처님 법을 잘 전하는 것으로써 갚아야 한다. 그러려면 스님들이 정법으로 제대로 공부를 해서 스스로 진정 가치 있는 공덕의 창고가 되어야 한다.

중생들의 공덕의 창고가 되어야 한다. 그만치 확고부동한 자기 소신이 있어야 된다.

화엄경 공부를 잘해서 화엄경에 눈을 뜨면 그런 것은 염려할 필요가 없다.

 

*

자심광대변중생(慈心廣大遍衆生)하야 : 자비한 마음이 광대해서 중생에게 두루두루 다 돌아가서

실원질성일체지(悉願疾成一切智)호대 : 모든 것을 아는 지혜, 일체지, 평등지 차별지 이런 표현을 하는데 그런 것을 빨리 이루기를 원한다.

공한 것도 알고 이렇게 눈앞에 펼쳐져 있는 현상도 안다. 세계가 이렇게 펼쳐져 있지만 이 모두가 텅비어서 없다고 하는 사실까지도 다 아는 것이 일체지다.

이항무착무의처(而恒無着無依處)하야 : 항상 집착도 없고 의지하는 곳도 없어서

집착이 없는 것은 짐작하는데, 의지함이 없다고 하는 것은 내 주체성을 잃어버리고 어딘가에 매달리는 것을 말한다. 집착의 다른 표현이다. 무의라고 하는 것, 의지함이 없다고 하는 것도 무착과 표현이 다를 뿐 비슷한 뜻이다.

이제번뇌득자재(離諸煩惱得自在)로다 : 모든 번뇌를 떠나서 자유자재함을 얻도다.

무집착이 되면 자유자재하다. 매달리고 의지하고 남의 눈치보고 이것저것 관계를 생각하다 보니 묶여버리고 자유자재 하지를 못하는 것이다.

*

애민중생광대지(哀愍衆生廣大智): 중생을 애민히 여기는 광대한 지혜로써

보섭일체동어기(普攝一切同於己)하야 : 일체 중생을 널리 다 섭수하는데 자기하고 똑같이 생각한다. 동어기는 자기와 같게 여긴다. 본래 원리가 천지여아동근(天地與我同根)이라고 했다. 하늘과 땅은 나와 한뿌리다. 만물여아일체(萬物與我一體). 만물은 나와 한 몸이라고 하는 것이 불교적 안목에서 본 나와 너의 관계이다. 중생을 생각하기를 자기 자신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지공무상무진실(知空無相無眞實)호대 :공과 무상과 무진실을 알아서

이행기심불해퇴(而行其心不懈退)로다 : 그 마음을 행해서 해퇴하지 않는도다.

세속적인 우리의 상식에서 벗어나, 보다 더 다른 차원으로 불교를 이해하는 첫 단계가 공, 무상, 무아를 아는 것이다. 모든 것이 공하다. 형상이 없다. 또 무상하다. 무진실하다는 것은 실체가 없다는 말이다. 늘 변하기 때문에 무진실이고 무상하다.

 

 

33, 功德無量

 

菩薩發心功德量億劫稱揚不可盡이니

以出一切諸如來獨覺聲聞安樂故로다

 

보살들의 발심한 공덕의 양()

억 겁을 칭찬해도 못 다하나니

수없는 여래들과

독각(獨覺)이나 성문(聲聞)들 즐겁네 하네

 

*

공덕무량(功德無量): ()이 한량없다

*

발심이 참으로 즐겁다는 뜻이다.

*

보살발심공덕량(菩薩發心功德量): 보살이 초발심한 그 공덕의 양은

억겁칭양불가진(億劫稱揚不可盡)이니: 억겁동안 이야기해도 다 이야기 할 수가 없다.진정으로 발심한 사람의 공덕은 아무리 이야기 하고 또 이야기 해도 다 할 수가 없다.

이출일체제여래(以出一切諸如來): 그 발심은 어떤 공능이 있어서 그러한가? 일체 모든 여래가 발심에서 나온다.

독각성문안락고(獨覺聲聞安樂故)로다: 독각도 성문도 모두 발심에서 나온다. 그리고 자신의 진정한 안락도 발심으로부터 나온다.

()자가 마지막에 까지 해석된다. 일체 여래도 출현시키고 독각도 연각도 그리고 나의 안락도 출현하는 까닭이다. 제대로 발심하면 그 발심하는 속에 그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내가 비유를 자주 들지만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KTX에 그냥 올라타기만 하면 그 안에서 잠을 자든 책을 보든 누구와 대화를 하든 모두 다 서울에 제대로 도착을 한다.발심만 제대로 하면 그런 모든 공덕이 그 속에 다 포함된다. 그래서 발심의 공덕은 무량이다. 우리가 부처님께 귀의해서 출가를 하고 절 집안에 딱 들어오니 그야말로 호박이 넝쿨째 굴러오듯이 불교의 모든 것이 내 것이 되었다.

예를 들어서 불교에 귀의하지 못하고 발심 출가를 못했다면 절에 와도 입장료를 내야 되고 법당에 들어가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남의 집 같다.

그런데 출가를 했다면 예를 들어서 내가 범어사에 산다고 해도, 통도사에 가도 내 집 같고 불국사에 가도 내 집 같고 해인사에 가도 내 집같다. 한 번도 가본적이 없는 사찰인데도 역시 내 집 같이 생각이 된다. 그 시방세계에 있는 모든 불교적인 세계가 한꺼번에 다 딸려 들어온다. 호박이 넝쿨째 들어오는 것이다. 외국에 가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서 일본 절은 상업적인 분위기가 농후해서 스님들에게도 표를 팔고 입장료를 받는다. 그런데 내가 옛날에 처음에 일본에 갔을 때 우리 방장스님한테 내가 한국의 승려인데 여기 참배하러왔습니다하는 것을 일본어로 적어달라고 부탁을 해서 그 문장을 외웠다.

가서 한 번 연습해 봐라.” 하고 방장스님이 말씀하셔서 표를 파는 데에 가서 외운대로

내가 한국의 승려인데 여기 참배하러 왔습니다.” 하였더니 무사 통과를 했다.

물론 승복을 입고 가도 그 말을 할 줄 모르면 표를 사야된다.

또 중국 절에 가서 자는 방법도 따로 있다.

거기서는 여기 명패를 걸러왔습니다.”라는 말을 할 줄 알아야 된다.

중국에서는 대중이 열 명 있으면 열 명의 명패가 딱 걸려서 식사를 열 명에 맞춰서 한다.

그것을 괘를 건다고 하는데, 객으로 왔어도 내가 여기 명패를 걸러왔습니다라고 하면 중국 절에서도 무조건 밥을 주고 재워준다.

그 말을 할 줄 모르면 안되니까 그것도 중국스님한테 배워야 된다.

아무튼 우리가 부처님께 귀의 하면 전세계 불교도 전부 내 것이 되어 버린다.

어느 나라에 가서 부처님을 봐도 내 부처님 같고 아무 거리낄 것이 없다.

다 딸려온다.

여기에서 초발심하면 모든 부처님도 거기서 나오고 독각도 성문도 나의 신심과 기쁨도 안락도 옷도 밥도 의식주도 다 초발심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신기한 일이다.

불교에 한 번 딱 귀의 하면 옷도 밥도 다 나온다. 의식주는 걱정 안해도 되는 것이다,비근한 한 예를 들어서 말하자면 그렇다.

 

출처 : 염화실
글쓴이 : 慧明華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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