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 이야기

[스크랩] 화엄경 노트 (52-3 초발심공덕품 7. 법혜보살의 중송)

수선님 2018. 9. 23. 12:30

 

 

 

 

 

 

 

 

 

 

 

 

 

 

38, 出生無盡

 

此是菩薩最勝地出生一切普賢道

三世一切諸如來靡不護念初發心이로다

悉以三昧陀羅尼神通變化共莊嚴하니

十方衆生無有量이며 世界虛空亦如是어든

發心無量過於彼일새 是故能生一切佛이로다

菩提心是十力本이요 亦爲四辯無畏本이며

十八不共亦復然하니 莫不皆從發心得이로다

諸佛色相莊嚴身及以平等妙法身

智慧無着所應供悉以發心而得有로다

一切獨覺聲聞乘色界諸禪三昧樂

及無色界諸三昧悉以發心作其本로다

一切人天自在樂及以諸趣種種樂

進定根力等衆樂靡不皆由初發心이로다

以因發起廣大心하야 則能修行六種度하고

勸諸衆生行正行하야 於三界中受安樂이로다

住佛無礙實義智所有妙業咸開闡하야

能令無量諸衆生으로 悉斷惑業向涅槃이로다

 

이것은 보살들의 최승(最勝)한 지위며

일체의 보현도(普賢道)를 내는 데 니라

삼세의 한량없는 부처님께서

초발심한 사람을 모두 보호해

삼매와 여러 가지 다라니들과

신통한 변화로써 장엄하나니

시방의 중생들이 한량이 없고

세계와 허공들도 그러하거든

발심(發心)의 한량없기 저보다 더해

일체의 부처님을 능히 내더라

보리심은 십력(十力)의 근본이 되고

네 변재(辯才)와 두려움 없는 근본도 되며

열여덟 가지 함께 하지 않은 법들도

모두 다 발심으로부터 얻나니

부처님의 색상(色相)으로 장엄한 몸과

평등하고 미묘한 법신(法身)들이나

집착 없는 지혜의 공양할 바가

다 같이 발심으로 있게 되오며

일체의 독각승(獨覺僧)과 성문승(聲聞僧)이며

세계의 모든 선정 삼매의 낙()

무색계(無色界)의 여러 가지 삼매들까지

발심으로 근본을 삼는 것이라

천상과 인간들의 자재한 낙과

여러 갈래 가지가지 즐거운 일과

정진(精進). 선정(禪定), ()과 역() 모든 낙()들이

발심으로 생기지 않는 것 없어

크고 넓은 마음을 일으키므로

여섯 가지 바라밀다 닦아 행하고

중생에게 바른 행() 권함으로써

삼계에서 안락을 받게 되나니

걸림없고 진실한 부처 지혜에

머물러서 묘한 법 열어보이며

한량없는 중생들로 하여금

업과 번뇌 다 끊고 열반 행하게 하네

*

출생무진(出生無盡): 출생이 다함이 없음을 말하다

*

차시보살최승지(此是菩薩最勝地): 이것은 보살의 가장 수승한 경지에

출생일체보현도(出生一切普賢道): 일체 보현보살의 길을 출생하는 것이다. 보현보살의 크나큰 행원도 결국은 발심으로 부터 나온다. 보살의 최승지가 바로 그것이다.

삼세일체제여래(三世一切諸如來): 삼세일체 제여래가

미불호념초발심(靡不護念初發心)이로다: 이 초발심을 생각해서 얻지 아니함이 없다. 삼세일체 제불은 전부 초발심을 생각해서 얻게 된 것이다. 수차 같은 이야기가 반복된다.

 

*

실이삼매다라니(悉以三昧陀羅尼): 모든 삼매, 그리고 다라니

신통변화공장엄(神通變化共莊嚴)하니:신통 변화 이것도 모두가 함께 장엄하니 발심으로 부터 이 모든 것이 따라온다.

시방중생무유량(十方衆生無有量)이며 : 그러니 시방중생도 한량이 없으며

세계허공역여시(世界虛空亦如是)어든 : 세계 허공도 또한 이와 같다.

 

*

발심무량과어피(發心無量過於彼)일새 : 시방 중생이 아무리 한량이 없고 세계 허공도 또한 아무리 끝이 없다고 하더라도, 발심이 한량이 없는 것은 그것보다 더 지나간다. 우주와 허공이 끝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 발심의 공덕은 허공보다도 더 지나가고 시방중생 숫자보다도 더 지나간다. 그 표현도 아주 대단하다. 과어피(過於彼)는 저것을 다 지나갈새라는 뜻이다.

시고능생일체불(是故能生一切佛)이로다 : 능히 일체 부처님을 출생시킨다. 모든 부처가 발심으로부터 나왔다. 발심에서 부처가 나오지 다른 데 부처 나오는 구멍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보리심시십력본(菩提心是十力本)이요 : 보리심이라고 하는 것은 십력의 근본이다.

열 가지 힘인 십력은 부처님을 표현하는 말 중에 제일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역위사변무외본(亦爲四辯無畏本)이며: 또한 사변과 사무외의 근본이 된다. 십력 가운데 제일 처음이 처비처지력(處非處智力)이라고 했다. 우리가 많이 강조하는 것인데 곳과, 곳 아닌 곳을 아는 지혜의 힘, 설자리 앉을 자리를 제대로 분별할 줄 아는 것이고, 옳은 이치, 그른 이치,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이 모든 것을 제대로 판단하는 지혜의 힘이다.

처비처지. 도리와 도리 아닌 것을 잘 판단하는 지혜의 힘.

*

십팔불공역부연(十八不共亦復然)하니 : 십팔불공법도 또한 보리심에서 나온다.

막불개종발심득(莫不皆從發心得)이로다 : 다 발심으로부터 얻지 아니함이 없도다.

제불색상장엄신(諸佛色相莊嚴身): 모든 부처님의 색상과 그리고 장엄한 모습들, 관세음보살과 같이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과

급이평등묘법신(及以平等妙法身): 그리고 평등한 묘법의 몸과

지혜무착소응공(智慧無着所應供): 지혜가 집착이 없어서 응당히 공양할 바 그것은

실이발심이득유(悉以發心而得有)로다: 모두가 발심으로써 있게 된 것이다.

일체가 발심으로부터 있다. 참 당연한 말씀이다.

*

일체독각성문승(一切獨覺聲聞乘): 일체 독각과 성문승과

색계제선삼매락(色界諸禪三昧樂): 색계의 모든 선정과 삼매의 락과

급무색계제삼매(及無色界諸三昧): 무색계의 모든 삼매가

실이발심작기본(悉以發心作其本)로다: 모두 발심으로서 그 근본을 지었더라.

*

일체인천자재락(一切人天自在樂): 일체 인천의 자재한 즐거움과

급이제취종종락(及以諸趣種種樂):그리고 모든 갈래. 지옥 아귀 축생 인도 천도 아수라 이것을 제취라고 한다. 중생들이 사는 갈래들 거기는 거기대로 또 그 나름대로의 즐거움이 있다.어떤 사람들은 성공했고, 어떤 사람들은 공부를 많이 했고, 어떤 사람들은 출세를 해서 그런 사람들만 좋은 시간이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 대로 다 달콤하고 아늑하고 따뜻하고 짭짤한 시간이 있었다. 세상에 이름을 내고 빛나는 사람들만 좋은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 이름 없는 사람도 그 나름대로 즐거움이 있었고 그 나름대로 자기의 삶이 있었고 사연이 있었고, 그 나름대로 달콤한 인생이 다 있었다.

그러니 사실 따지고 보면 서로 부러워하거나 무시할 일이 아무 것도 없다.

우리가 그 사연들을 낱낱이 살펴보면 정말 평등하다.

그래서 제취종종락이라고 하였다.

지옥은 지옥대로 또 즐거운 면이 있다.

24시간 내내 고통만 받는 것도 아니고, 무간지옥이라고 했지만 사이가 없는 것도 아니다.

되게 고통을 받으면 까무라쳐 버린다. 일일일야 만사만생(一日一夜 萬死萬生) 하루 동안에 만 번 죽고 만 번 태어난다는 말을 나는 경험한 사람이다. 되게 몸이 고통스러우면 기절하고 기절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물론 좋은 것도 모르지만, 일단 의식속에 고통이 사라진다.

그러다가 또 몸은 끊임없이 고통스러우니까 그 고통에 깨어난다. 깨면 고통을 또 느낀다. 고통을 느끼면 그 고통에 못이겨서 저절로 몸이 또 기절을 한다. 기절해서 한참 몸이 쉴만하면 고통이 또 사람을 깨운다. 그런 것이 일일일야 만사만생이다.

나는 어릴 때 일일이야 만사만생이라니 어떻게 해서 하루 24시간 동안에 만 번 죽고 만 번 태어나는가 했는데 딱 경험해 보니까 그 말을 몸으로 알게되었다.

되게 힘들고 고통스러우면 기절해 버리니까 걱정할 것이 없다.

기절해서 안 깨면 그대로 가는 것이고 깨어나면 고통 때문에 고생하는 것이다.

고통 때문에 기절하고 고통 때문에 깨어나고, 깨어나고 기절하고, 깨어나고 기절하는 것이 얼마의 시간이 흘러서, 몇 초가 흘러서 반복 되는지, 몇 분, 혹은 몇 시간 동안에 반복이 되는지 도무지 시간 가늠이 안된다. 그런데 그것이 끊임없이 계속된다.

그래서 나는 되게 아프면 걱정할게 없다. 왜냐 몸이 못이겨서 기절하니까.”라고 말한다.

기가 끊어지는 것이 기절이 아닌가.

너무 아프면 몸이 알아서 기절을 하니 걱정할 것이 없다, 그런데 그런 소리는 경험을 해본 사람이나 하는 소리다. 아무나 하는 소리가 아니다.기절 안하고 아프다 아프다하는 것은 아직 덜 아파서 하는 소리다.

그처럼 고통 속에도, 지옥에는 지옥대로 즐거움이 있다.

그런데 하물며 축생이나 인간이나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다 그나름대로 달콤한 시간들이 있다.

진정력등중락(進定根力等衆樂): 정진 선정 오근 오력등 여러 가지 즐거움이

미불개유초발심(靡不皆由初發心)이로다 : 전부 발심으로부터 말미암지 아니함이 없다. 그 모든 것들도 결국은 발심으로부터 있다.

*

이인발기광대심(以因發起廣大心)하야 : 인연으로 인하야 큰 마음을 일으켜서

즉능수행육종도(則能修行六種度)하고: 곧 능히 여섯가지 바라밀을 수용하고

권제중생행정행(勸諸衆生行正行)하야 : 모든 중생에게 권해서 바른 행을 행하게 하고

어삼계중수안락(於三界中受安樂)이로다: 삼계 가운데서 안락을 받게 한다. 삼계가 곧 극락이다. 삼계 가운데서 수안락이지 삼계 떠나서 우리가 갈 데가 없다.

화엄경은 정토사상과 좀 다르다.

물론 보현행원품에 가면 정토이야기가 한 마디 나온 부분이 있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화엄경에서는 화장세계도 바로 우리가 사는 이 현장이고 극락세계도 우리가 사는 이 현장이고 고통의 세계도 바로 우리가 사는 이 현장이라고 한다.

중생에게 권해서 바른 행을 행하게 하면 삼계 가운데서 안락을 받는다고 하였는데 삼계라고 하는, 우리가 사는 바로 이 현장에서 안락을 받는 것을 말한다.

 

*

주불무애실의지(住佛無礙實義智): 부처님이 머무신, 걸림없는 실의, 실의는 진리를 말하고 실의지는 진리를 터득한 지혜다. 실의지에

소유묘업함개천(所有妙業咸開闡)하야: 있는 바 묘업을, 묘업은 부처의 업이다.

이 미묘한 업을 다 열어 펼쳐서

능령무량제중생(能令無量諸衆生)으로 :한량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실단혹업향열반(悉斷惑業向涅槃)이로다: 모두 미혹의 업을 다 끊어버리고 열반의 언덕으로 향하게 한다.

 

39, 功德圓滿

 

智慧光明如淨日이요 衆行具足猶滿月이며

功德常盈譬巨海無垢無礙同虛空이로다

普發無邊功德願하야 悉與一切衆生樂하며

盡未來際依願行하야 常勤修習度衆生이로다

無量大願難思議願令衆生悉淸淨하니

空無相願無依處以願力故皆明顯이로다

了法自性如虛空하야 一切寂滅悉平等이며

法門無數不可說爲衆生說無所着이로다

 

지혜의 밝은 광명 햇빛과 같고

모든 행을 갖추기 보름달 같고

공덕은 바다처럼 항상 가득해

때 없고 걸림없어 허공과 같네

옛날에 무량 공덕 원을 내어서

모든 중생들에게 낙을 주려고

오는 세상 끝나도록 원을 행하여

부지런히 닦아 익혀 중생을 제도하네

한량없는 큰 원력 부사의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청정케 하고

(), 무상(無相), 무원(無願)

서원(誓願)의 힘으로 밝게 나타나

법의 성품 허공과 같은 줄 아니

온갖 것 고요하여 다 평등하고

()가 없는 법문을 말 못하지만

중생 위해 말하매 집착이 없네

*

공덕원만(功德圓滿): 덕의 원만함을 나타내다

*

지혜광명여정일(智慧光明如淨日)이요 : 지혜의 광명은 청정한 태양과 같다. 초발심을 통해서 보리심을 발하고 불심을 발함으로 해서 그 사람의 지혜광명은 청정한 태양과 같다.

중행구족유만월(衆行具足猶滿月)이며: 온갖 좋은 행을 구족하는 것은 만월과 같다.

발심한 사람의 행은 낱낱이 훌륭한 행이다. 일거수 일투족이 전부 좋은 행동이다.

그래서 가을의 둥근 보름달과 같으니 얼마나 볼만하겠는가.

지혜에 의한 보살행이 우리 현실에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보살행을 잘 하는 사람이 지나가면 보름달이 길거리에 걸어다는 것과 같고 밝은 태양이 걸어다니는 것과 같이 보인다. 보름달과 같은 사람이 길거리를 걸어다니고 밝은 태양과 같은 사람이 길거리를 걸어다닌다. 말 만으로도 불교는 이렇게 좋다.

공덕상영비거해(功德常盈譬巨海): 공덕이 항상 저 큰 바다처럼 가득 넘쳐 흐른다. 그 사람에게는 공덕이 항상 저 큰 바다처럼 넘쳐흐른다.

무구무애동허공(無垢無礙同虛空)이로다: 때도 없고 걸림도 없는 것이 허공과 같더라. 지혜에 의한 보살행이 그렇다.

이런 것을 글로든 말로든 자꾸 좋아해야 한다.

몸소 실천하면 더 좋겠지만, 일단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다. 실천을 못한다고 걱정하거나 갈등할 필요가 없다. 나는 경전에 있는 말씀을 몸소 실천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절대 갈등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늘 한다.

내 양심에 비춰서 이 말이 나하고 거리감이 있다고 하는 것을 절대 갈등하지 마라. 이런 것을 우리가 읊조리고 마음에 생각하고 눈으로 보고, 한 순간, 1020분 만이라도 여기에 심취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보살행이다.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수행이다.

불교의 프로인 수많은 스님들이 있지만 24시간 내내 경전에 쓰여진 대로 사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겠는가? 스님들이 화엄산림이 열리는 부산 문수선원에 오려면 하루 걸리는 사람도 있고, 혹 이틀 걸리는 사람들도 있다. 최소한 한 달에 하루 동안은 화엄경이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것을 전부 위성으로 다 찍어놨다고 생각하고 자기 인생의 필름을 자기가 본다고 한다면 그 모습이 어떻겠는가.

화엄경을 공부하려고 집을 출발해서 여기 문수선원에서 공부하고 돌아가기 까지 신심으로 들뜬 그 마음을 필름으로 본다면 어떠할지, 그 공부하는 시간, 부처님 앞에서 예불하고 기도하는 시간, 신도들을 향해서 부처님의 법을 설하는 시간들의 내 인생 필름은 도대체 어떤 색깔일까? 어떤 무지개색깔일까? 이런 것도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보발무변공덕원(普發無邊功德願)하야 : 무변 공덕의 원을 널리 발해서

실여일체중생락(悉與一切衆生樂)하며: 일체 중생으로 더불어 다 같이 즐긴다. 그래서

진미래제의원행(盡未來際依願行)하야 : 미래제가 다 할때까지 원행을 의지해서

상근수습도중생(常勤修習度衆生)이로다: 항상 부지런히 수습해서 중생을 제도함이로다.

*

무량대원난사의(無量大願難思議): 한량없는 큰 원, 중생을 향한 그 원은 사의하기 어려움이라.

원령중생실청정(願令衆生悉淸淨)하니 : 그 원이 중생으로 하여금 다 같이 함께 청정해지니

공무상원무의처(空無相願無依處): 공과 무상과 원과 무의처를

이원력고개명현(以願力故皆明顯)이로다: 원력을 쓰는 고로 다 밝게 나타남이로다.

, 무상, 무원, 무의 이것은 어떻게 보면 안목은 높지만 소승적인, 자기만을 위한 가르침인데 반해서 원력의 가르침은 그것과 관계가 없다.

공과 무상과 무원과 무의처 이런 것은 자기 안녕을 위한 약방문이나 해결책으로서는 최고이다. 무아를 다 터득해 놓으면 자기에게는 편안하고 좋다. 그러나 옆의 사람에게는 아무 덕이 안된다. 원력만이 옆 사람에게도 덕이 된다.

이번에 일어난 세월호 사건은 국가적으로 큰 재난이었다.

그런데 세월호를 보면 불교가 그 안에 다 들어 있고 세상이 그 안에 다 들어 있다.

그 한 사건이 이 세상의 전체다.

불교로써 보자면 소승교 대승교 소승 아라한 대승 보살이 다 그 속에 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벌써 여러분들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바가 있을 것이다. 친구들을 다 건져내고 자기는 죽어서 의인으로 추대 받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대승보살이다. 그리고 당연히 자기가 앞장서서 승객들을 건져내야 하는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먼저 살겠다고 나온 사람들은 소승 아라한이다.

엉겹결에 나왔지만 도저히 이것은 사는 것이 아니다 해서 스스로 자결해 버린 교감도 있다.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소승으로 자기 안녕을 위해서 탈출했는데 알고 보니 이런 것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 라고 해서 죽은 것이다.

그런데 저 혼자 살겠다고 승객들을 버리고 탈출한 선장은 자자손손 무인도에 가서 저희들 식구만 살더라도 무슨 사는 맛이 나겠는가? 이 세상에서는 끊임없이 자자손손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살 것이 아니겠는가?

대승의 길과 소승의 길은 이렇게 다른 것이다.

무아를 터득하고 공을 터득하고 무상을 터득하고 무원을 터득하고 여기에 무의처를 터득해서 자기 안녕을 위해서 자기 열반을 터득했다고 하는 것은 자기 인생을 위해서는 좋을지 모르지만 옆의 사람에게는 아무 보탬이 안된다.

세월호에서는 그런 것이 다 판가름이 나오고 대승 보살은 누구 누구라고 하는 이름까지 다 나왔다. 그런 사람들을 국가에서는 의인으로 지정했다.

소승 아라한들은 누구 누구인지 계속 얼굴을 비춰 준다.

명패를 안붙여서 그렇지 아 저 놈은 소승 아라한, 이 사람은 대승보살, 천지도 모르는 일반중생은 방송만 듣고 앉았다가 그냥 죽는 사람등등 불교 이야기가 다 나온다.

어떻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인가, 저렇게 살아서는 안된다 하는 사실들이 다 그 속에 들어있다. 세월호는 그냥 세월이다. 우리가 전부 그 세월호에 같이 타고 그야말로 같이 흘러간다. 세월호가 그대로 세상이고 그대로 불교다.

하나하나 낱낱이 주해를 달고 불교적으로 설명을 한다면 세월호 사건은 그대로 팔만대장경이다. 내가 이 자리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 하는 스님은 달마스님, 육조스님, 내가 좋아하는 임제스님이 아니라 대만의 증엄스님이다.

왜 그렇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주 이야기 하는가? 증엄스님은 가장 바람직한 불교적인 이상 인물이기 때문이다. 증엄스님의 행은 대승보살행이다. 관세음보살이고 지장보살이고 보현보살이다. 이 시대에 그 세분을 다 합친 보살이 증엄스님이다.

세월호에는 그러한 사실도 그 속에 다 들어 있다.

똑같은 순간이었는데 누구는 그렇게 도망쳐야 되고 누구는 그 속에서 들락날락하면서 자기 친구 건지고 자기는 죽고 해야 되는가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 속에서 팔만대장경을 읽는다. 불교의 세계를 보고 세상을 본다. 우리 불자들은 그런 사건을 보아도 그렇게 하나의 큰 가르침으로 소화할 수가 있다.

요법자성여허공(了法自性如虛空)하야 : 법의 자성이 허공과 같아서

일체적멸실평등(一切寂滅悉平等)이며: 일체가 적멸해서 평등함을 알며

법문무수불가설(法門無數不可說): 법문이 무수해서 가히 말할 수 없는 것을

위중생설무소착(爲衆生說無所着)이로다: 중생들을 위해서 설하는데 집착하는 바가 없더라.

 

 

40, 功德無盡

 

十方世界諸如來悉共讚歎初發心하시니

此心無量德所嚴으로 能到彼岸同於佛이로다

如衆生數爾許劫說其功德不可盡이니

以住如來廣大家하야 三界諸法無能喩로다

 

 

시방의 여러 세계 모든 여래들

초발심을 다같이 찬탄하나니

이 마음 한량없는 덕으로 장엄하며

저 언덕 이르러서 부처 같으리

중생의 수효(數爻) 같은 그러한 겁에

그 공덕 말하여도 다할 수 없고

여래의 크고 넓은 집에 머물매

삼계의 법으로는 비유 못하네

 

*

공덕무진(功德無盡): 공덕(功德)이 다함이 없음을 말하다

*

시방세계제여래(十方世界諸如來): 시방세계 모든 여래가

실공찬탄초발심(悉共讚歎初發心)하시니: 모두다 초발심을 찬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더라. 모두초발심을 찬탄한다.

차심무량덕소엄(此心無量德所嚴)으로 : 무량덕장엄 이 마음 한량없는 공덕의 장엄한 바로서

능도피안동어불(能到彼岸同於佛)이로다 :능히 저 언덕에 이르러서 부처님과 같이 되었다.

천만 번을 이야기해도 넘치지 않는 것이 발심공덕이다.

*

여중생수이허겁(如衆生數爾許劫): 중생수와 같은 그러한 겁에, 이 지구상에 생명체가 얼마나 많은가. 그 생명체처럼 많고 많은 것 그 숫자와 같은 오랜 세월에. 한 사람의 육신 속에도 60조 세포가 있고 세포마다 또 세포가 있어서 360조라는 생명체가 있으니 도대체 생명의 숫자가 얼마나 많겠는가?

설기공덕불가진(說其功德不可盡)이니 : 그 공덕, 초발심공덕을 말한다 하더라도 다 말할 수 없어서

이주여래광대가(以住如來廣大家)하야 : 여래의 광대한 집, 부처님의 이 집안,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이 집안에 머물러서

삼계제법무능유(三界諸法無能喩)로다 : 삼계에 모든 법으로써는 능히 비교할 수가 없더라.

 

 

41, 勸發菩提心

 

欲知一切諸佛法인댄 宜應速發菩提心이니

此心功德中最勝이라 必得如來無礙智니라

衆生心行可數知國土微塵亦復然이며

虛空邊際乍可量이어니와 發心功德無能測이로다

出生三世一切佛하고 成就世間一切樂하며

增長一切勝功德하고 永斷一切諸疑惑이로다

開示一切妙境界하고 盡除一切諸障礙하며

成就一切淸淨刹하고 出生一切如來智로다

欲見十方一切佛하고 欲施無量功德藏하며

欲滅衆生諸苦惱인댄 宜應速發菩提心이어다

 

일체의 부처님 법 알고자 하면

마땅히 보리심을 빨리 내시오

이 마음은 공덕 중에 가장 수승하니

여래의 걸림없는 지혜 얻는다

중생의 마음과 행() 세어서 알며

세계를 부순 티끌도 역시 그렇고

허공의 끝까지를 헤아린다 해도

초발심한 공덕은 측량 못하리

삼세의 모든 부처 내기도 하고

세간의 모든 낙을 성취도 하고

모든 수승한 공덕을 증장하면서

일체의 의혹들을 영원히 끊고

일체의 묘한 경계 열어보이고

일체의 장애들을 제()해 없애고

일체의 청정세계 성취하여서

일체의 여래지혜 출생하나니

시방의 부처님들 보고자 하고

한량없는 공덕장 베풀려 하고

중생의 모든 고통 없애려 하면

마땅히 보리심을 빨리 내어라

*

권발보리심(勸發菩提心): 보리심(菩提心) 발하기를 권하다

*

욕지일체제불법(欲知一切諸佛法)인댄 : 일체 제불의 법을 알고자 할진댄

의응속발보리심(宜應速發菩提心)이니 : 마땅히 응당 빨리 보리심을 발할지니라.

불법을 제대로 알려면 발심을 해야지 다른 방법이 없다. 발심하지 못하고 팔만대장경을 이리 꿰고 저리 꿰고, 앞으로 꿰고 뒤로 꿰어 봐야 그것은 불법을 아는 것이 아니다.

일체 무식꾼이라고 해도 제대로 발심을 한 번 하면 그 사람이 바로 불법을 아는 사람이다.

욕지일체제불법인댄 의응속발보리심이라.

참 좋은 말이다. 보리심을 제대로 발하지 못했으면 불법을 모른다.

차심공덕중최승(此心功德中最勝)이라: 이 마음,초발심 공덕은 공덕 중에 가장 수승함이라.

필득여래무애지(必得如來無礙智)니라: 반드시 여래의 걸림없는 지혜를 얻게 되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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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심행가수지(衆生心行可數知): 중생의 마음 행하는 것, 중생 마음 씀씀이는 한 순간에도 별별 생각을 다 한다. 공부한다고 앉아있어도 별별 생각을 다 하는 것이 마음이 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마음의 작용, 마음의 움직임을 가히 헤아려서 알고

국토미진역부연(國土微塵亦復然)이며 : 국토의 먼지 숫자를 다 안다고 하자. 먼지가 얼마나 많겠는가? 예를 들어서 부산 금정산 하나만 갈아서 먼지로 만들어도 그 먼지 숫자는 어마어마해서 셀 수가 없다. 이 지구를 갈아서 다 먼지로 만들었다고 한다면 그 먼지 숫자는 도대체 얼마나 많겠는가? 그런데도 그 많은 숫자를 다 안다고 하자.

허공변제사가량(虛空邊際乍可量)이어니와 : 또 허공의 끝까지도 잠깐 사이에 다 안다고 하거니와

발심공덕무능측(發心功德無能測)이로다 : 발심의 공덕은 능히 측량할 수가 없더라.

첫째 구절, 둘째 구절, 셋째 구절은 발심공덕과 비교 하는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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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삼세일체불(出生三世一切佛)하고 : 발심은 삼세 일체불을 출생시키고

성취세간일체락(成就世間一切樂)하며:세간의 일체 즐거움도 다 성취하게 된다.

증장일체승공덕(增長一切勝功德)하고 : 일체 수승한 공덕이 자꾸 자라나게 하고

영단일체제의혹(永斷一切諸疑惑)이로다: 일체 모든 의혹을 영원히 끊어버린다.

발심이 그와 같이 중요하다. 보리심을 발하는 것, 불심을 발하는 것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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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시일체묘경계(開示一切妙境界)하고 : 일체 모든 아름다운 경계를 개시 열어 보이고

진제일체제장애(盡除一切諸障礙)하며: 일체 모든 장애를 다 제하며, 염불에도 진제일체제장애 라는 구절이 있다.

성취일체청정찰(成就一切淸淨刹)하고 : 일체 청정찰을 성취하게 되고

출생일체여래지(出生一切如來智)로다: 일체 여래의 지혜를 출생하는 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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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견시방일체불(欲見十方一切佛)하고 : 시방 일체 모든 부처님을 보고자 하고

욕시무량공덕장(欲施無量功德藏)하며: 다함이 없는 공덕의 창고를 보시하고자 하며, 일체 부처님을 친견하고자 하고 일체 공덕을 내가 좀 보시해야 겠다는 욕심도 있다.

욕멸중생재고뇌(欲滅衆生諸苦惱)인댄 : 일체 중생들의 모든 고통을 내가 다 소멸했으면 싶다. 만약에 그런 꿈이 있다면

의응속발보리심(宜應速發菩提心)이어다: 마땅히 응당히 빨리 보리심을 발할 지어다.

이 초발심 공덕품이 얼마나 좋은지 말도 못한다.

내용은 같은 내용으로 끝없이 반복되지만 게송으로 정리해 놓으니까 글이 아름답고 아주 쉽고 비교하기가 좋다. 여러 번 이야기 하지만 이 게송을 불교교재로 삼아도 아주 좋을 것이다.

열반경에 발심필경이불별(發心畢竟二不別) 여시이심선심난(如是二心先心難)’이라는 말이 있다.‘초발심과 성불하는 것은 둘이 아니다. 그 두 가지 마음 가운데 첫마음인 발심한 마음이 어렵다는 말이다.

스님들이 이제 공부가 끝나서 각자의 절로 돌아갈 시간인데 여기 오려고 각자의 사찰에서 출발한 마음과 돌아가는 마음이 똑같은 마음이다.

그런데 출발할 때의 그 마음이 더 어렵다.

출발하려고 그 마음만 작정을 하고 오늘 공부하러 갈거다. 만사 제쳐놓고 갈거다.’ 딱 한 번 결심을 해놓으면 그 다음에는 일이 술술 풀린다.

누가 전화를 걸어와도 다음에 보자라고 단호하게 거절할 수가 있다.

처음에 마음 한 번 정하기가 어렵지 그 다음은 쉬운 것이다.

그런데 발심은 무엇인가? 대열반경에서 자미득도선도타(自未得度先度他) 시고아례초발심(是故我禮初發心)’이라고 하였다.

자기는 아직 제도 받지 못하였어도 다른 사람을 먼저 제도 하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좋은 것은 남이 먼저 하게 하는 것이 발심이다. 그런 까닭에 내가 초발심한 사람에게 예배를 드린다고 하였다.

세월호에서도 친구 몇을 구하고 또 다른 친구를 구하러 기울어진 배 속으로 들어간 학생이 있다. 자기 생명이 왔다갔다 하는 줄 다 알고 위험한 줄을 다 안다. 그렇지만 자기는 나중에 나간다 하고 먼저 친구를 꺼낸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미득도 선도타.

내가 먼저 먹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먼저 먹게 하고 자기는 물에 빠져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을 먼저 건져주는 것이다. 여기서는 무엇이든지 좋은 일은 남이 먼저 하도록 하는 것이 발심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존경하고 국가에서 의인으로 정해서 받든다. 보상을 크게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알아주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에서 그런 사람들을 의인으로 따로 모시면서 훌륭한 보살, 대승보살을 알아주고 소승 아라한은 또 소승 아라한으로 사정없이 핍박할 줄도 아는 것을 보면 그나마 영 어두운 세상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부처님 법에 의해서 집행하라고 하지 않아도 세상의 양심이 그렇게 집행하고 있다.

발심의 의미가 여러 가지고 그 많은 의미를 우리가 공부하고 있지만, 요약하면 발심과 성취, 두 가지 마음이 다르지 않는데 그 중에 발심이 어렵다. 그 발심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자미득도선도타다. 자기는 제도를 얻지 못했으나 먼저 다른 사람들을 제도하게 하는 것이다.’ 라고 표현할 수가 있다.

나는 굶으면서도 다른 사람을 먼저 먹게 하는 것, 자기는 목이 마르면서 다른 사람 먼저 마시게 하는 것, 자기는 뒤에 나가겠다 하고 다른 친구를 먼저 나가게 하는 것이 보살의 발심이고 보리심이고 또 불심이다.

부처 불()자는 한 글자도 몰라도 상관이 없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불심이다. 그런 마음이 있는 것을 불심이라고 하고 보리심이라고 하지, 그런 마음이 없다면 부처 불()자가 아무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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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긴 초발심공덕품을 마쳤다.

다음 시간에는 명법품으로 넘어가겠다.

 

 

단오선물

 

오늘이 단오날이라고 하면서 해인사에 사시는 비구니 스님이 쑥개떡을 해오셨다.

모두 편안하신고?” 하고 안부를 물으신 큰스님께

잡숴보세요. 맛있어요.” 하고 비구니스님이 떡을 권하셨다.

그래 그래 고마워요.” 하고 큰스님은 이 스님이 내가 제일 오랫동안 아는 분이야. 이 스님 초등학교때부터 알았어.”라고 비구니 스님을 소개 해주셨다.

아아 그 줄넘기 하시던 스님요?”

여쭈었더니 가타부타 안하시고 하하 웃으셨다.

큰스님 법문에 가끔 등장하는 어린 스님 이야기는 이렇다.

어느날 머리 깎고 먹물옷을 입은 어린 소녀가 절마당에서 친구들과 꼬마야 꼬마야 뒤를 돌아라하는 줄넘기를 하고 있는데 호기심 많은 관광객이 와서 스님 스님 왜 절에 왔어요?” 하고 물었다.

쉬지않고 경쾌하게 줄을 넘으면서도 어린 스님은 인생이 무상해서요.” 라고 답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 말이 맞긴 맞는 말이지.” 하고 큰스님이 법문중에 재미나게 웃으신 것과 똑같은 웃음을 웃으시는 것으로 봐서 그 어린 비구니스님이 이제 큰스님 앞에서 빙그레 웃고 계신 비구니 스님이 맞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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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에 약쑥을 먹으면 병도 없어져. 가야산 약쑥으로 만든 떡이다.” 하고 큰스님께서 다시 설명해 주시면서 그 떡을 나눠주셨다. 큰스님께서 기회 있을 때마다 이 아름다운 법석이 있게 하는 제일 소중한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시는 자원봉사자님들과 모두 그 자리에서 조금씩 떡을 나눠 먹었다. 서로가 서로의 건강을 기원하는 단오날에 서로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소중한 음식을 나눠먹는 일이 각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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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3권 점안해야지. 점안하는 재미가 있다. 세상에 어떻게 화엄경 같은 경이 있는지 몰라.” 하고 큰스님께서 법회 전에 대방광불화엄경강설 3권을 다시 손에 들고 살펴보셨다.

스님들은 매달 한 권씩 화엄경을 받는데, 한 권 한 권이 쌓여 벌써 3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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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길 오시느라 애쓰셨습니다. 3일 비가 온다고 해서 너무 좋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물입니다.“ 하고 회장스님이 법회 전에 스님들께 공지사항을 알리셨다. 큰스님께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청법가를 기다리셨다.

 

가문 날 물이 되고

아픈 날 약이 되는 사람들

 

 

 

출처 : 염화실
글쓴이 : 慧明華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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