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 제87칙은 운문화상이 대중들에게 무엇이 자기인가 문제를 제시했다.
운문화상이 대중에게 법문을 설했다. “약과 병이 서로 치료한다. 온 대지가 약이다. 무엇이 자기인가?”
擧. 雲門示衆云, 藥病相治. 盡大地是藥. 那箇是自己.
본칙의 공안은 <운문광록> 卷中에 보이는 짧은 법문이지만, 최상의 선기를 설한 것이다. 불교의 가르침은 안목있는 훌륭한 의사의 올바른 진단과 처방은 환자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을 처방하여 병을 치료한다는 비유로 많이 설하고 있다. <불유교경>에 “나는 훌륭한 의사(良醫)와 같이 환자의 병을 잘 파악하고 약을 처방하는 것과 같다”라고 설하고 있는 것처럼, 부처님은 중생들의 번뇌 망념의 심병(心病)을 지혜로 진단하고 법문을 설하여 불법의 진실을 깨닫도록 묘약을 제시하여 치료한다고 설한다.
사실 일체의 경전과 팔만사천 법문은 중생의 번뇌병을 치료한 지혜의 묘약인 것이다. <유마경> 불국품에는 “부처님은 대의왕이 되어 훌륭하게 중생들의 많은 병을 치료하시는데, 중생들의 병에 알맞은 약을 주어(應病與藥) 복용하도록 치료하여 무량한 공덕을 모두가 성취하도록 하신다”고 의사로 비유하고 있다. 또한 <법구비유경>에 호시(好施)장자를 위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설법하였다. “세상 사람들이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횡사하는 것은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자신의 병에 무관심하여 치료하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의사의 치료를 받아도 의약처방에 따르지 않기 때문이며, 셋째는 모든 일을 자기중심 생각대로 멋대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일월(日月)과 천지(天地), 군부선인(君父先人)도 그의 고통을 덜어주고 없애 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 고통을 벗어나려면 세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는 몸의 사대(四大)가 조화롭지 못하고 탈이 났을 대 솔직하게 의약을 복용해야 한다. 둘째는 악귀나 삿된 마구니(망념)에 시달릴 때는 경전의 가르침인 진리의 말씀을 받들어야 한다. 셋째는 위로는 훌륭한 성현을 받들어 모시고 아래로는 중생의 고난과 나쁜 재앙을 구제한다면 복은 일월 천신 지신에 감응하고, 덕은 일체 중생에 두루한다. 이렇게 진실의 지혜광명이 빛나게 될 때 일체 음참한 고뇌의 그림자는 남김없이 없어지고 안온하게 장수를 누릴 수가 있다.” 약을 믿지 않고 천지자연의 신묘한 영험으로 치료하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장자의 마음을 바꾸어 몸을 치료받고 불법을 깨닫도록 한 이야기다.
또 <오왕경>에 “인신(人身)은 사대의 화합으로 이루어진다. 사대란 지수화풍(地水火風)인데, 어느 하나라도 조화롭지 못하면 101의 병이 생긴다. 사대가 함께 조화롭지 못하면 404의 병이 동시에 모두 생긴다”라고 설한다. 불교에서는 몸과 마음을 둘로 나누지 않고 하나로 보는 심신일여(身心一如)이기에 몸의 조화는 마음도 함께 하는 것이다. 번뇌 망념이 없이 마음의 안정과 평정이 심신(身心)을 건강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의 몸은 지수화풍 사대의 조화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사대가 조화롭지 못하면 병이 생기고, 사대가 흩어지면 죽음인 것이다.
운문화상의 설법은 “약과 병이 서로 치료한다(藥病相治)”는 중생의 번뇌 망념의 병은 불법의 지혜라는 묘약으로 치료하는 경전의 말씀을 토대로 하고 있지만, 병이 없는 사람에게는 약이 필요 없다는 사고가 불법의 가르침이다. 임제의 설법에도 이와 똑같이 “산승의 설법은 모두 한때의 약과 병이 서로 치료하는 것을 설한 것이지, 전혀 실다운 법이란 없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 말은 약은 병을 치료하기 위한 방편이며, 병은 또한 약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병과 약은 이러한 상대관계에서만 성립된다. <백장광록>에 “부처는 바로 중생쪽의 약이다. 병이 없다면 약을 먹을 필요가 없다. 약과 병이 함께 없어진다”라고 설하고, 또 “대승의 가르침은 마치 감로와 같고, 독약과 같다. 완전히 소화하여 체득하면 감로와 같고, 녹여 소화하지 못하면 독약과 같다”라고 설한 것처럼, 약의 잔재는 부작용으로 또 다른 병을 만든다. 그래서 약과 병을 모두 함께 소멸하여 자취를 남기지 말아야 한다.
운문의 법문은 중생의 번뇌 망념은 병이고, 망념을 자각한 불심을 약이라고 설한 것인데, <조당집> 제6권 동산장에 다음과 같은 대화가 있다. “어떤 스님이 ‘병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동산은 ‘잠깐 일어나는 번뇌 망념이 병이다’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약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일어난 번뇌 망념이 계속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약이다’라고 대답하고 있다” 선수행에서 번뇌 망념이 일어난 것이 병이고, 번뇌 망념이 일어난 사실을 자각하여 망념이 계속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약이라고 설한 대화이다. 그래서 약과 병이 서로 치료하고 약과 병이라는 의식의 자취도 완전히 없어진 경지가 약병상치이다.
<증도가>에 “번뇌 망상을 없애려고도 하지 않고, 진실을 구하려고도 하지 않네. 무명(無明)의 실성(實性)이 바로 불성(佛性)이다”라는 말이 있다. 없애려고 하는 마음도, 구하려고 하는 마음도 망념이다. 중생심과 불심은 둘이 아닌 불이(不二)며, 다르지 않은 불이(不異)인데, 하나를 없애고 하나를 추구하는 것은 또 다른 집착을 향한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불심과 중생심, 번뇌와 깨달음, 약과 병에 대한 두 가지 상대적인 의식을 모두 함께 동시에 텅 비워 일체의 자취나 흔적도 없어진 경지로서 약과 병이 서로 치료된 본래의 상태가 된 것이 약병상치이다.
운문은 “온 대지가 약이다.” 즉 우주 만물일체가 모두 하나의 평등한 깨달음의 약이 되었다고 한 말이다. 제법의 참된 실상은 진실 그 자체이며 깨달음의 세계이다. 이 말은 마지막으로 운문은 “무엇이 자기(自己)인가”라고 문제 제기를 위한 전제이다. 즉 이미 약과 병이 혼연 일체가 된 일합상(一合相)으로 불가득이라면 온 대지가 약이라고 한 것은 한쪽으로 치우친 말이다. 약이라고 해도, 병이라고 말해도 옳지 않다. 온 대지가 모두 약이라면 자기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운문은 이 한마디를 설하고 싶었던 것이다. 원오는 ‘평창’에 “지금 온 대지의 삼라만상과 자기까지도 모두 약이다. 이런 경우 무엇을 자기라고 하겠는가?”라고 문제제기하고, 그대가 그저 약인 줄만 안다면 알았다가 아무리 많은 세월을 수행해도 불법을 체득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온 대지가 약과 하나가 되었다면 온 대지가 자기와 하나가 된 사실을 체득해야 한다고 주장한 법문이다. 설두화상은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읊었다. “온 대지가 약이다” 운문의 말을 인용한 것인데, 온 대지가 약이라면 온 대지가 자기라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고금(古今)에 왜 이처럼 그릇치고 있나.’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체득하는 사람이 적고, 운문의 이 말을 잘못 이해하여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문닫고 수레를 만들지 말라’ 이 말은 문을 닫고 수레를 만들어도 문밖에 나가면 길에 딱 맞다(閉門造車 出門合轍)는 고사를 인용한 것인데, 선에서는 안과 밖이 멋지게 합치된 경지를 읊고 있다. 여기서는 자기 본래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운문이 제시한 자기를 문제로 삼을 필요도 없다. 본래 그대로의 모습이 진실한 자기이기 때문에 좌선수행하여 새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도로는 본래부터 드넓게 뚫려 있다.’ 본래의 자기 수레를 확 뚫려 어떤 장애도 없는 큰 도로에서 앞으로, 뒤로 자유롭게 운전하여 달리기만 하면 된다. 범성, 미오의 분별심의 자취나 흔적도 남기지 않고 종횡무진 달리기만 하면 된다. ‘틀렸다! 틀렸다!’ 운문화상이 ‘온 대지가 약’이라고 한 말도 틀렸고, ‘무엇이 자기인가’라는 한 말도 틀렸다고 설두는 고함쳤다. ‘콧대를 하늘 높이 세웠지만, 콧대가 꺾였다.’ 운문화상이 ‘온 대지가 약이고, 무엇이 자기인가’ 라고 주장한 것은 본래면목을 전부 들어낸 전제로서 콧대를 높이 세운 운문의 뛰어난 안목으로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경지였다. 설두는 틀렸다고 주장하며 그러한 운문의 콧대를 꺾어버렸다.
성본스님/동국대 불교문화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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