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 세계

[스크랩] 54. 교외별전(敎外別傳) 14

수선님 2018. 10. 7. 13:07


앞의 글에서, 선종에서는 중생이 분별을 일으키고 습득하여 고착화시켜 철석같이 신봉하는 것을 가장 근본적인 우상숭배로 여긴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런 우상숭배의 한 예로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하는 것을 들었는데, 분별은 대개 겉모양에 휘둘릴 때 일어난다는 불교의 진단을 갖다대기에 좋은 예가 되기 때문이다.

 

부처님오신날이라 하면 말 그대로 부처님의 생신을 가리킨다. 동북아시아에서는 음력 4월 초파일이 그 날이다. 우리가 가족이나 친지의 생일을 축하하듯이, 존경하는 부처님의 생신을 불자들이 기념하고 축하하는 것을 두고 이상하게 여길 일은 없다. 나아가 음력 2월 초파일의 출가절, 음력 12월 8일 성도절(成道節), 그리고 음력 2월 보름날 열반절(涅槃節)을 부처님오신날과 함께 4대 명절로 삼아 기리는 것도 탓할 거리가 아니다. 불자로서는 오히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석가모니의 일생을 그런 식으로만 본다면 겉모양에 휘둘리는 셈이다. 우리는 모든 개체적인 존재와 현상에 대해, 생겨나서 얼마간 지속되다가 없어지는 모습으로만 본다. 누구나 언제 어디선가 태어나서 얼마동안 여기 또는 저기서 이렇게 저렇게 살다가 마침내 언제 어디선가 죽는다. 우리가 어떤 인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기본적인 틀이 그렇게 되어 있다. 백과사전에서 특정 인물에 관한 항목을 보면 다 그렇게 서술되어 있다. 이를테면 시간과 공간의 틀 안에서만 보는 것이다. 하기는 석가모니도 일단은 그런 시공간 틀 속의 존재이다. 그렇지만 불교에서 보는 부처님은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편의상 이른바 삼신(三身) 개념을 가지고 설명을 하자면, 부처님에게는 세 가지 몸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몸이 세 개인 괴물 같은 모습을 연상할 일은 아니다. 부처님이라는 존재에 세 가지 의미가 있다고 이해하면 되겠다. 우리처럼 개체로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없어지는 존재로서의 부처님의 몸을 화신(化身) 또는 색신(色身)이라고 한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그 몸만이 부처님인 것은 아니다. 부처님은 진리 그 자체를 자신의 몸으로 한다.
 
그것을 법신(法身)이라고 한다. 이 몸은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요 외연이 있는 개체도 아니다. 세상은 그 전체가 법계(法界) 즉 진리의 세계이니, 달리 말하자면 세상 전체가 그대로 부처님의 몸이다. 개별자가 아니라 보편자로서의 부처님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몸을 보신(報身)이라고 하는데, 어려운 개념이지만 일단은 한 개별자로서 수행의 업보로 대각을 이루어 진리와 한 몸이 된 존재가 부처님이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그러니까 색신과 법신을 이어주는 가교, 접합을 의미하는 뜻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삼신 개념은 한마디로 부처님의 그 세 의미를 다 보아야만 부처님을 제대로 보는 것이지, 우리의 습관처럼 눈에 보이는 개체로서의 부처님만을 생각해서는 부처님을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라는 뜻을 담고 있다.
 
앞의 글에서 인용한 <금강경>의 게송, 즉 “겉모양에서 부처를 찾거나 / 목소리로써 부처를 구한다면 /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는지라 / 끝끝내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는 게송이 바로 그런 뜻이다.
 
겉모양, 즉 불상으로 묘사된 그 개체의 몸으로만 부처님을 안다거나, 목소리, 즉 경전에 문자로 기록되어 전해지는 부처님의 가르침에서만 부처님을 찾는다면 사도(邪道)를 가는 셈이라는 말이다. 문자로 전해진 가르침에만 매달려서는 정작 진리를 찾을 수 없다는 선종의 교외별전도 그런 맥락에서 뜻을 헤아릴 수 있다.

 

윤원철/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출처 : 淨土를 그리며...
글쓴이 : 느린 걸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