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 제88칙은 현사사비(師備)화상이 귀머거리, 봉사, 벙어리 세 가지 병을 가진 사람에게 어떻게 불법을 설해야 할 것인가? 라는 문제를 다음과 같이 제기했다.
현사화상이 대중들에게 법문을 하였다. “제방 총림의 노스님들이 여러 중생들을 제접하고 중생들을 이롭게 하는 법문을 한다고 하지만, 갑자기 귀머거리, 봉사, 벙어리가 찾아왔을 때는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 눈먼 봉사에게 망치방망이를 들고, 불자를 들어 보여도 그는 볼 수 없다. 귀머거리는 일체의 언어로 설법해도 들을 수가 없다. 벙어리는 말을 하도록 시켜도 말을 하지 못한다. 세 가지 병을 가진 사람을 어떻게 제접해야 할까? 만약 이를 제접하지 못한다면 불법은 영험이 없는 것이다.”
어떤 스님이 운문선사에게 이 공안을 제시하고 법문을 청하자, 운문선사는 “그대는 절을 하라!” 라고 했다. 스님이 절을 하고 일어나자, 운문선사는 그를 주장자로 밀쳐버렸다. 스님이 뒷걸음치자, 운문선사가 말했다. “그대는 눈이 멀지는 않았군!” 다시 그를 불러 가까이 오라하여 스님이 다가오자, 운문선사가 말했다. “귀머거리는 아니군!” 운문선사가 “알았는가?”라고 했다. 스님은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하니, “그대는 벙어리는 아니군!”이라고 말하자 그 스님은 이 말에 깨달았다.
擧. 玄沙示衆云, 諸方老宿, 盡道接物利生. 忽遇三種病人來, 作生接. 患盲者, 拈鎚拂, 他又不見. 患聾者, 語言三昧, 他又不聞. 患啞者敎伊說, 又說不得. 且作生接, 若接此人不得, 佛法無靈驗. 僧請益雲門. 門云, 汝禮拜著. 僧禮拜起. 雲門以杖, 僧退後, 門云, 汝不是患盲. 復喚近前來, 僧近前. 門云, 汝不是患聾. 門乃云, 還會. 僧云, 不會. 門云, 汝不是患啞. 僧於此有省.
본칙의 공안은 <운문광록>에서 인용한 것인데, 현사의 법문은 <현사광록> 중권, <전등록> 제18권 현사전에 수록하고 있다. 현사사비 화상은 복주 현사산에서 교화를 펼친 종일(宗一, 835~908)선사인데, 운문선사와 마찬가지로 설봉의존의 선법을 계승한 뛰어난 선승이다.
현사화상이 대중들에게 “전국의 총림에서 훌륭한 선지식이 많은 수행자들을 제접하고 중생들을 깨닫도록 법문을 한다고 하지만, 갑자기 귀머거리, 봉사, 벙어리가 찾아왔을 때는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 만약 봉사에게 망치방망이(槌砧)를 들거나, 불자(拂子)와 같은 도구를 들어 보여도 그는 볼 수 없다. 또한 귀머거리는 어떠한 말로 설법해도 들을 수가 없다. 벙어리는 말을 하도록 시켜도 말을 하지 못한다. 이와 같은 세 가지 병을 가진 사람에게 어떻게 불법을 가르쳐야 할까? 만약 이들에게 불법을 가르치지 못한다면 불법은 영험이 없는 것이다” 라고 학인들에게 참구할 문제를 제시한 법문이다.
이 공안에 대하여 원오는 ‘평창’에 다음과 같이 코멘트하고 있다. ‘현사화상이 제시한 3종 병인(病人)을 소경, 귀머거리, 벙어리로 오인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유마경>에 “눈으로 사물(色)을 보아도 봉사와 같으며, 귀로 소리를 들어도 귀머거리와 같다”고 했다. 또한 장사선사는 “눈으로 사물(色)을 보지 못하고, 귀로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문수보살은 항상 눈으로 보고, 관음보살은 귀를 틀어막는다” 고 하였다. 여기에 이르러 눈으로 보아도 봉사와 같으며, 귀로 들어도 귀머거리와 같아야 현사화상의 의도와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중생심으로 소리를 듣고 사물을 보면 좋고 나쁜 감정이 일어나지만, 불심으로 무심의 경지에서는 일체의 감정과 차별심이 일어나지 않고, 산에 울리는 메아리와 같이 들리지 않는 것도 아니고, 들어도 취사선택하는 분별과 애증(愛憎)의 차별심에 떨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경지를 봉사와 같고 벙어리와 같다고 한다. 말하자면 현사화상은 당시 안목없는 엉터리 선승들이 다른 선사들의 기발한 언행을 흉내내고 불법의 근본을 알지 못하는 눈먼 환자(患盲者)로, 다른 선사들의 좋은 법문을 흉내내는 귀머거리 환자(患聾者)로, 독자적인 방편의 지혜가 없어 불법을 설하지 못하는 벙어리 환자(患啞者)로 비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사의 3종 병에 대한 법문은 오해하기 쉽고, 파악하기 어려운 공안으로 많은 선승들이 참구하고 있다. 〈조당집〉과 선승들의 법문에 자주 제기하여 학인들에게 참구하도록 하고 있는데, 본칙은 어떤 스님이 운문선사에게 이 공안을 제시하고 법문을 청한 내용이다.
운문선사는 “그대는 이 공안의 핵심을 알고자 한다면 먼저 절을 하라!” 라고 말하자, 스님은 시키는 대로 공손히 절을 하였다. 원오는 착어에 “바람이 부는 대로 풀이 쏠린다. 쯧쯧()”이라고 착어한 것처럼, 남이 시키는 대로 따라하는 한심한 녀석이라고 질타했다. 그 스님이 절을 하고 일어나자, 운문선사는 그를 주장자로 밀쳐버렸다. 주장자는 본분을 대신한 도구인데, 이 스님은 자기의 본분을 망각한 것을 운문이 질타한 것이다. 스님은 운문선사가 주장자로 밀자 주장자를 보고 뒷걸음쳤다.
운문선사는 이러한 스님의 행동을 보고서 말했다. “그대는 주장자를 보고 몸을 피하는 것을 보니 눈먼 녀석은 아니군!” 운문선사는 다시 그 스님을 불러 가까이 오라하니, 스님은 안심하고 다가왔다. 그러자 운문선사가 말했다. “그대를 부르면 대답하는 그대의 본래인은 귀머거리가 아니군!” 운문선사가 그 스님에게 그대의 본래주인공이 귀머거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는가?’라고 다그쳐 물었다. 그런데 그 스님은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모르겠다고 말하는 그 한마디의 확인으로 운문선사는 “그대의 본래인은 역시 벙어리도 아니군!” 이라고 말했다.
그 스님은 운문선사의 이 말을 듣고 깨달았다. 이 스님뿐만 아니라 이 공안을 읽는 사람은 운문선사의 지시는 구체적인 일상생활의 대화에서 불법의 대의를 체득하고 지혜작용을 펼치는 주인공이 본래면목이며, 일체의 병이 없는 약을 제시한 법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설두화상은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읊었다. 현사화상이 ‘소경, 귀머거리, 벙어리.’ 삼종병을 제시한 것은 ‘상황에 맞는 대응(機宜)이 완전히 끊어졌다.’
근원적인 본래면목의 경지로서 부모미생 이전의 소식으로 일체의 사량분별과 언어 문자의 방편을 초월한 입장이다. ‘천상천하’ 널리 세간의 사람들을 살펴보면 눈이 멀고 귀가 먹고, 입이 벙어리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은 ‘가소로운 일이고’, 눈이 있으나 보질 못하고, 귀가 있으나 듣지 못하고, 입이 있으나 말하지 못하면 ‘불쌍한 것이다.’ ‘이루(離婁)도 본래의 색깔(色)을 분별하지 못하는데,’ 이루는 <장자> 천지편에 나오는 이주(離朱)로 태고 황제 때의 사람인데, 백보 밖에서도 터럭 끝을 보는 시력을 가졌다. 이루와 같이 아무리 강력한 육안을 가졌다고 해도 불법의 바른 색깔(본지풍광)을 볼 수 있겠는가? 불법은 원래 색깔을 여의고 형상을 초월했기 때문에 본래 볼 수 있는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사광(師曠)인들 어떻게 현묘한 음률(玄絲)을 알 수 있으랴.’
사광은 진(晋)의 평공(平公) 때 사람으로 음악의 대가인데, 음률을 잘 듣는 귀가 발달하여 산 너머 개미 싸우는 소리까지 들었지만, 불법의 유현하고 미묘한 묘음(妙音)을 들을 수가 있겠는가? 이루와 사광과 같은 시력, 청력이 특출한 사람이라도 불법의 궁극적인 진리는 알 수 없으며, 참된 소경과 귀머거리가 된 무심의 경지가 아니면 정법의 색깔과 미묘한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고 한 말이다.
‘툭 트인 창 아래 홀로 앉아 시절 따라 낙엽지고 꽃피는 것만 같겠는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으려고 하기보다, 텅 빈 창 아래서 앉아 무엇을 보려고 하지 않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면, 사계절의 질서 있는 변화와 법신의 여여한 모습을 보여주고 설법을 끊임없이 해 줄 것이다. ‘다시 말하노니, 알겠는가.’ 설두는 독자들에게 “이 공안의 참된 의미를 그대는 체득했는가” 확인하고 있다. 그리고 “구멍 없는 철추로다”라는 한마디를 던졌다. 구멍이 없기에 손을 쓸 수가 없는 쇳덩어리처럼, 현사의 3종병 공안도 사량분별로서는 접근할 수가 없다. 무심의 경지에서 체득해야 한다.
성본스님/동국대 불교문화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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