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 제90칙은 지문화상에게 반야지혜의 본체와 작용에 대한 질문을 하며, 다음과 같이 선문답을 나누고 있다.
어떤 스님이 지문화상에게 질문했다. “어떤 것이 반야지혜의 본체입니까?” 지문화상이 대답했다. “대합조개가 밝은 달을 삼킨다.” 스님은 질문했다. “무엇이 반야지혜의 작용입니까?” 지문화상이 대답했다. “토끼가 새끼를 잉태했다.”
擧. 僧問智門, 如何是般若體. 門云, 蚌含明月. 僧云, 如何是般若用. 門云, 兎子懷胎.
본칙의 공안은 <고존숙어록> 제39권에 수록된 <지문광조선사어록>에 전하고 있는 선문답인데, <벽암록> 제21칙 본칙의 평창에도 인용하고 있다. 지문광조(智門光祚)화상은 운문문언선사의 제자로서 그의 전기는 <광등록> 제22권, <속등록> 제2권, <연등회용> 제27권 등에 전하고 있는데, 사천성 향림원 징원(澄遠)선사를 참문해 법을 잇고 뒤에 호북성 수주 지문사에서 선법을 펼쳤다. 그의 문하에 설두중현 등 30여명의 훌륭한 선지식이 배출됐다.
본칙의 선문답은 반야 지혜의 본체(體)와 작용(用)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 반야란 일체의 사량분별이 없는 불심의 지혜이다. 반야(prjna)는 여성명사로 생산능력이 있는 말인데, <유마경>에 “반야바라밀(智度)은 보살의 어머니(母)이며, 방편을 아버지(父)로 한다”라고 설하고 있다. 불법을 깨달은 지혜의 완성을 어머니로 하는 것은 반야바라밀의 실천으로 부처의 성도(成道)가 실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야지혜의 보살인 문수를 제불을 출현시키는 어머니라고 한다.
<대지도론> 제18권에 반야바라밀은 모든 보살이 초발심에서 일체의 지혜를 구하며 일체 만법의 참된 모습(諸法實相)을 깨달아 아는 지혜라고 설하며, 또 반야는 일체의 모든 지혜 가운데 제일이고 한다. 대승불교는 공(空)과 반야를 같이 주장하고 있는데, 반야의 지혜는 일체의 번뇌 망념을 텅 비우는 空(sunya)의 실천을 통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중생심 번뇌 망심을 텅 비워진 그대로가 불심으로 반야의 지혜가 일체의 모든 사물을 있는 그대로 여법(tatha)하게 볼 수 있는 것이다.
<대승의장> 제10권 등에 반야는 실상(實相), 관조(觀照), 문자(文字)반야의 세 가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즉 실상은 반야의 본체(體)로서 견고해 파괴할 수가 없는데, 이것은 사람들이 본래 구족하고 있는 불심인 것이다. 관조의 작용은 지극히 예리한 것으로 일체의 번뇌 망념을 타파하는 불심의 지혜광명이다. 문자반야는 이러한 반야지혜의 이치를 언어 문자로 표현하여 만고에 전하고 사람들이 반야지혜를 체득하도록 하는 경전이다. 반야지혜의 한마디와 짧은 문장을 설하여 세간의 등불이 되고 무명을 제거하여 해탈인이 되도록 하기 때문에 문자반야라고 한다. 실상반야는 마음의 본체로서 밝은 거울과 같음을 본체로 하고, 삼라만상의 모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무심하게 비추는 작용을 관조반야라고 하며, 그러한 사실을 언어문자로 표현한 것을 문자반야라고 한다.
여기서는 반야지혜의 본체와 작용을 문제로 제시하고 있는데, 반야사상의 체(體)와 용(用), 화엄사상의 이(理)와 사(事), 유식사상의 성(性)과 상(相)의 논리는 중국불교의 각 종파의 철학체계를 확립한 핵심적인 사상이었고, 논리가 빈약한 중국인들의 사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선사상은 반야의 체용(體用), 화엄법계의 이사(理事), 불성과 유식의 성상(性相)의 논리를 불심의 지혜와 작용으로 소화시켜 구체적인 일상생활의 대화나 지혜로 활용하고 있다.
<종경록> 제45권에는 “선정은 자심(自心)의 본체요, 지혜는 자심의 작용이다. 선정이 곧 지혜이기 때문에 본체는 작용을 떠나지 않고, 지혜가 곧 선정이기 때문에 작용이 본체를 여의지 않는다. 지혜와 선정 이 둘이 서로서로를 차단하면 함께 없어지고, 이 둘이 서로 서로를 비추면 함께 존재한다. 본체와 작용이 서로 서로 성립되면 차단함과 비춤에 걸림없이 무애하리라. 이러한 선정과 지혜 두 법이 참선수행의 요체이며 조불(祖佛)의 큰 뜻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어떤 스님이 지문화상에게 “어떤 것이 반야지혜의 본체입니까?”라고 질문하자, 지문화상은 “대합조개가 밝은 달(明月)을 삼킨다”라고 대답했다. 원오는 ‘평창’에 “이 말은 한강에서 생산되는 조개 속에 맑은 진주가 있는데, 중추절이 되면 수면으로 떠올라 입을 벌리고 달빛을 빨아들여 교감(交感)되어 진주가 생긴다고 한다. 합포주(合浦珠)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중추절에 달이 뜨면 진주가 많이 나오고 달이 뜨지 않으면 진주가 적게 나온다고 한다”고 했다. 강주 합포(合浦)라는 곳의 대합조개(蚌蛤)는 진주를 안고 있는데, 8월15일 밤에 조개가 명월(明月)의 정기를 받아서 진주가 된 것이라는 전설이 <조정사원> 제8권과 <본초강목(本草綱目)> 등에도 전하고 있는데, 이러한 전설을 토대로 지문화상은 진주가 명월을 삼키고 있다고 대답했다. 반야의 본체에 대한 질문에 명월(明月)과 조개는 별다른 의미가 없지만, 명월이 창공에서 무심하게 비추고, 조개도 무심하게 명월을 머금고 있는 모습을 말한다.
스님은 다시 “무엇이 반야지혜의 작용입니까?”라고 질문하자 지문화상은 “토끼가 새끼를 잉태했다”라고 대답했다. 원오는 ‘평창’에 “토끼는 음(陰)에 속한 동물이다. 중추절에 달이 뜨면 입을 벌려 달빛을 삼키고 바로 새끼를 잉태하여 입으로 낳는다하니 이 또한 달이 뜨면 새끼가 많고, 없으면 적게 낳는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토끼 역시 8월 15일 밤에 달을 향해 입을 열고 달의 정기를 받아 새끼를 잉태한다는 전설을 토대로 대답한 것이다. 질문자는 반야를 본체와 작용으로 나누고 있지만, 지문화상은 체용(體用) 일체의 입장에서 대답한 것이다. 8월15일 강물 속의 조개가 밝은 달이 무심하게 비추는 달빛을 삼키어 진주를 만들고, 토끼는 새끼를 잉태하였다는 속설로 대답했는데, 밝은 달의 광명이 무심하게 만물을 비추는 모습을 말한다. 즉 반야 무분별지가 일체의 사량분별을 초월하여 역력하고도 분명하게 나타나 작용하고 있는 모습을 비교해서 대답했다. 마치 밝은 거울이 무심하게 일체의 만물을 차별심과 분별심도 없이 무심하게 비추는 것과 같이 청정한 불심이 반야의 본체이고, 무심하게 지혜를 비추는 것을 반야의 작용이기 때문에 체와 용이 둘로 나눌 수가 없고 하나가 된 경지이다. <조당집> 제15권에 반산선사는 이러한 경지를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마음 달 홀로 원명하니, 그 빛이 만상을 삼킨다. 빛은 경계를 비추지 않고, 경계 또한 존재하지 않으며, 빛과 경계 함께 잊으니 도대체 이것은 어떤 물건인가?”
설두화상은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한 덩어리 맑고 투명한 것(달)은 언어와 정식(情識)이 붙을 수가 없다” 반야의 체와 용을 모두 다 송출했다. 허(虛)는 허령불매(虛靈不昧)로 인간 본심(불심)의 신령스러운 지혜의 광명이 무애자재한 것이고, 응(凝)은 응적(凝寂)의 의미로 본심의 영광(靈光, 지혜작용)이 항상하여 변함이 없으면서도 외부의 힘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 모습을 읊은 것이다. 즉 중생의 사량 분별심과 정식이 일체 끊어진 불심은 반야의 본체로서 부동이며, 지혜의 광명은 신령스럽게 시방삼세를 두루 비추고 있다. “인간과 천신이 이로부터 수보리(空生)를 본다” ‘평창’에도 언급한 것처럼, 해공제일(解空第一) 수보리가 좌선하고 있는데, 범천이 꽃비를 내린 이야기이다. 수보리가 반야에 대하여 한 글자도 설하지 않았지만, 반야의 체와 용을 설했다고 찬탄한 사실을 파악한다면 지문화상이 대답한 말의 의미를 체득할 수 있다.
지문화상이 “조개는 달빛을 삼키고, 토끼는 새끼를 잉태했다고 대답한 깊고 깊은 뜻” 지문화상의 대답은 정말 의미심장하다. 조개가 달(토끼)을 삼켰다고 한 것은 조개와 토끼로 반야의 체와 용이 둘이 아닌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멋지게 비유하여 대답한 것이다. “일찍이 선승들은 한바탕 법전을 펼쳤다” 지문화상의 의미 있는 대답은 선가의 수행자들이 서로 서로 법전을 하면서 참구하였지만, 지문화상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한 안목 있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성본스님/동국대 불교문화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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