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선종에서 말하는 직지인심견성성불(直指人心見性成佛) 불립문자교외별전(不立文字敎外別傳)이라는 구절의 뜻을 하나하나 뜯어봄으로써 선의 교의(敎義)에 담겨있는 기본적인 입장을 살펴보았다. 선종에서는 깨달음을 불교의 알파요 오메가라고 여기며, 모든 신행을 깨달음의 문제로 수렴시킨다. 적어도 교의 상으로는 그렇다. 그리고 깨달음은 어떤 과정을 거쳐 점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단박에 터진다고 하는 점이 선종 교의의 가장 특징적인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그 단박에 깨닫는 것을 돈오라고 했다. 요즘은 잘 안 쓰지만 한국말로는 ‘몰록 깨친다’고 표현했다. 반면에, 점차 조금씩 깨달아가는 것은 점오(漸悟)이다. 단박에 깨닫는다는 말도 언뜻 들으면 그럴 듯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그게 참 아리송한 얘기이다. 우리의 일상 체험에서도 단박에 깨닫는 일이 있기는 있다. 예를 들어 열쇠를 찾는데 어디에다 두었는지 아무리 끙끙거리며 기억을 더듬어도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더니, 포기하고 별 생각 없이 다른 일 하고 있는 동안 뜬금없이 갑자기 생각이 나는 수가 있다. 그런데도 선종에서는 돈오를 말한다. 말하는 정도가 아니라, 돈오라야 옳다고 역설한다. 간혹 어투를 좀 누그러뜨려서, 교종에서는 점오(漸悟)지만 선에서는 돈오라고 한다. 유식(唯識) 사상에서 삼아승지겁 동안 환생을 거듭하면서 점차 공덕을 쌓고 수행을 닦으며 지극히 노력해야 마침내 깨닫는다고 하는 것이나, 화엄(華嚴) 사상에서 52단계를 거쳐서 깨달음에 이른다고 하는 것을 두고 교종에서는 점오를 추구하는 대표적인 예로 든다. 저 앞에서 말한 적이 있듯이, 선종은 교종에 대한 부인을 통하여 자기 정체성을 세우려 하였다. 교종은 불교의 교의를 완벽하게 대변하지 못했다고 본다. 또는, 근본적으로 잘못 대변했다고 본다. 이를테면, 불교를 근본적으로 잘못 이해했기에 점오를 추구한다고 본다. 돈오는 그만큼이나 선종의 교의에서 핵심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그러면 단박에 깨친다는 그 아리송한 얘기가 무슨 뜻인지 다음 회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윤원철/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이제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을 바탕으로 해서, 선에서 말하는 그 밖의 주요한 교의적인 개념들을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돈오라는 개념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기로 한다.
하지만 말만 들어도 거창한 불교의 깨달음, 깨달으면 부처가 된다는 그 깨달음인데 어찌 그럴 수가 있겠느냐 말이다. 깨달음이라고 하면 엄청난 수행이 쌓이고 쌓여서 무르익어야 될까 말까 한 그런 일이라고 여기는 것이 우리의 상식이다. 열쇠 찾는 일의 예에서도, 따지고 보면 한참을 끙끙거리며 기억을 더듬고 애쓴 과정이 있었으니 나중에라도 갑자기 생각이 떠올랐던 것이리라. 인간사 모든 일이 점진적인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니,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도 당연히 그러하리라고 여긴다.
교종에서는 점오요 선에서는 돈오라 한다 해서, 교종의 점오도 옳다고 인정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선의 입장에서는 과격하게 말하자면 교종은 다 틀렸다. 좀 덜 과격하게 말하자면, 모자란다. 그러나, 깨달음에 점오와 돈오 두 가지가 있으며, 점오도 추구할 만하지만 돈오가 좀더 낫고, 그러니 점오를 추구하는 교종보다는 선종이 우월하다는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다. 교종의 수증론(修證論)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보는 것이 선종의 입장이다. 그리고 교종이 잘못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점오를 추구하는 데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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