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

[스크랩] 대지도론(大智度論) 11. 속제와 진제의 차이점

수선님 2018. 10. 28. 13:22

이제부터 ‘어느 때[一時]’207)라 함을 설명하리라.

 

[문] 불법 가운데에는 수효[數]208)나 시간 등의 법이 실로 없나니, 음(陰)209)․입(入)210)․지(持)211)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어느 때라 하는가?

 

[답] 세속을 따르기 때문에 어느 때라 하여도 허물이 없다. 마치 진흙이나 나무를 조각해서 신상[天像]212)을 만드는 것과 같으니, 그 신상을 생각하기 때문에 예를 올려 절을 한다 해도 허물이 되지 않는다.

 

어느 때라 한 것도 이와 같으니, 실제에는 어느 때라 할 것이 없지만 세속을 따라 어느 때라 말하여도 허물이 되지 않는다.

 

[문] 어느 때라 함이 없을 수는 없다. 부처님께서도 스스로 “한 사람이 세간을 벗어나면 여러 사람이 즐거움을 얻는다” 하셨다. 이는 누구를 가리킨 말이겠는가? 바로 불세존이시니, 게송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다.

  
  
  
207) 범어로는 ekasmin.
208) 범어로는 saṁkhya.
209) 범어로는 skandha.
210) 범어로는 āyatana. 이른바 심․심작용의 의지처를 말한다.
211) 범어로는 dhātu.
212) 범어로는 devapratim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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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행은 스승의 보호가 없고
  하나에 뜻을 두어 동행자가 없으며
  하나의 행을 쌓아 부처의 경지를 얻으니
  자연히 성스런 도에 통한다.
  
이러한 뜻을 부처님은 곳곳에서 말씀하셨으니, 마땅히 ‘어느 하나[一]’란 있을 것이다.
또한 어떤 한 법이 화합했기 때문에 그 물건을 하나라 한다. 만일 진실로 한 법이 없다면 어찌하여 한 물건에 대해서는 한마음만 생기고 둘이나 셋이 생기지 않는가? 또한 두 물건에 대해서는 두 마음만 생기고 하나나 셋은 생기지 않으며, 세 물건에 대해서는 세 마음만 생기고 둘이나 하나가 생기지 않는가?
만일 진실로 모든 수효가 없다면 어느 한 물건에 대해서도 두 마음이 생겨야 할 것이요, 두 물건에 대해서도 한마음이 생기기도 하여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미루어 3․4․5․6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러하다. 그러므로 결정코 알게 되니, 한 물건 안에 한 법이 있고, 이 법이 화합하기 때문에 한 물건에서 한마음이 생기리라.

 

[답] 만일 어느 하나와 물건이 하나라든지 혹은 하나와 물건이 다르다든지 한다면 이 둘에는 모두 허물이 있다.

 

[문] 어느 하나가 있은들 무슨 허물이 되는가?

 

[답] 가령 하나의 병(甁)이라 하면 이는 하나의 이치가 된다. 마치 인제리(因提梨)213)와 석가(釋迦)214)가 역시 하나라는 이치가 되어야 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어디에나 하나가 있는 곳엔 응당 모두가 병이어야 된다. 비유하건데 인제리가 있는 곳마다 석가가 있는 것과 같다. 지금 옷 따위의 모든 물건도 모두가 병이어야 하리니, 하나의 병과 한 가지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다면 곳곳마다 하나는 모두 다 병이어야 하리니, 병의 경우와 같이

  
  
213) 범어로는 Indra.
214) 범어로는 śak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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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따위들도 모두가 한 물건이어서 다른 차별이 없어야 한다.

 

또한 하나가 수효에 속하는 법이라면 병도 역시 수효의 법이어야 한다. 병의 몸[體]에는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병에도 다섯 가지 법이 있어야 한다. 병에는 모양도 있고 몸[體]도 있으므로 하나에도 모양과 몸이 있어야 한다.

 

만일 어디서나 하나를 병이라 할 수 없다면 이제 병과 하나라는 수효는 하나로서 같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라고 한다면 병이 포함되지 않고 병이라고 한다면 하나가 포함되지 않나니, 병과 하나는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를 말하려면 병을 말해야 되고 병을 말하려 해도 역시 하나를 말해야 되리니, 이와 같다면 혼돈이 생긴다.

 

[문] 하나라 할 때의 허물이 그렇다면 다르다 할 때는 어떤 허물이 있는가?

 

[답] 만일 하나와 병이 다르다면 병은 하나가 아닐 것이요, 병과 하나가 다르다면 하나는 병이 아닐 것이다.

만일 병과 하나가 합친 것을 하나라 한다면 이제 하나와 병이 합친 것은 어찌하여 하나라 하지 않고 병이라 하는가? 그러므로 병은 하나와 다르다 할 수 없다.

 

[문] 비록 하나라는 수효와 합하기 때문에 병이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하나가 병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답] 모든 수효의 첫머리가 하나이다. 하지만 하나는 병과 다르니, 그러므로 병을 하나라 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가 없기 때문에 많음도 없다. 왜냐하면 먼저가 하나이고 나중이 많음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다름 가운데서는 하나라는 것도 없다. 그러기에 두 부문에서 한 법을 구하여도 얻을 수 없으니, 얻을 수 없거늘 어떻게 음․입의 경지에 속하겠는가?

 

다만 불제자들은 세속의 말을 따르기 때문에 ‘어느 하나’라고 하거니와 실제로는 집착하지 않으면서 수효의 법이나 명자[名字]가 있다고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법에서는 한 사람, 한 스승, 어느 한때라 하여도 삿된 소견의 허물에 빠지지 않는다.

 

‘어느 하나’를 풀이해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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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때[時]’215)에 관해서 설명하리라.

 

[문] 천축(天竺)에서 시간을 말할 때 두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가라(迦羅)216)요, 또 하나는 삼마야(三摩耶)217)이다. 그런데 부처님은 어찌하여 가라로 말씀하시지 않고 삼마야로 말하는가?

 

[답] 가라로 말한다 하여도 역시 의문이 있다.

 

[문] 가볍고 쉽게 말하기 위해서는 가라로 해야 된다. 가라는 두 음절이요 삼마야는 세 음절이니 말이 겹치고 어렵기 때문이다.

 

[문] 삿된 소견을 제하기 위하여 삼마야로 말하고 가라로 말하지 않는다.

또한 어떤 사람은 “온갖 천지의 좋고 나쁜 것은 모두가 때[時]로써 원인을 삼는다”고 말했으며, 『시경(時經)』218)에서는 이렇게 게송으로 말하고 있다.
  
  때가 오면 중생이 익어지고
  때에 이르면 재촉을 하고
  때가 능히 사람을 깨우친다.
  그러므로 때가 원인이 된다.
  
  세계는 수레바퀴 같아
  때가 변함은 바퀴가 굴러감과 같으니
  사람도 수레바퀴와 같이
  오르락내리락하게 된다.
  
[문] 어떤 사람은 “비록 천지의 좋고 나쁜 모든 물건을 때가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때는 변치 않는다. 인(因)은 실제로 있는 것이나 때의 법칙[時法]은 섬세하여서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지만, 꽃이나 열매 따위의 결과에 의하여 때가 있음을 안다. 작년이나 금년의 오래고 가깝고 더디고 빠른
  
  
215) 범어로는 samaye.
216) 범어로는 kāla. 실시(實時)라 의역하기도 한다.
217) 범어로는 samaya. 가시(假時)라 의역하기도 한다.
218) 범어로는 Kāla-sū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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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습을 보기만 하면 때는 보지 못하더라도 때가 있음을 알 수는 있다. 왜냐하면 결과를 보면 원인이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때의 법칙이 있나니, 때의 법칙은 무너지지 않기 때문에 항상하다”고 한다.

 

[답] 진흙 덩어리는 현재의 때[時]요, 흙이나 먼지는 과거의 때요, 병(甁)은 미래의 때다. 때의 모습이 항상한 까닭에 과거의 때는 미래의 때가 되지 못한다.

 

그대들의 경서(經書)의 법에서 때는 한 물건이라 했다. 그렇기에 과거의 세상은 미래의 세상이 되지 못하고 역시 현재의 세상도 되지 못한다. 잡된 과거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세상에는 역시 미래의 세상도 없으니, 그렇기에 미래의 세상이 없다. 현재의 세상 역시 그러하다.

 

[문] 그대가 과거의 흙과 먼지의 때를 용인하는 경우, 만일 과거의 때가 있다면 반드시 미래의 때도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때의 법칙은 실제로 있다.

 

[답] 그대는 내가 이미 말한 것을 듣지 못했는가? 미래 세상은 병이요, 과거 세상은 흙과 먼지이다. 미래의 세상은 과거 세상을 만들지 못하니, 미래 세상의 모습에 떨어진다면 이는 미래 세상의 모습의 때[相時]이거늘 어찌 과거의 때라 하겠는가. 그러므로 과거의 때도 없다.

 

[문] 어찌 때가 없는가? 반드시 때가 있다. 현재에는 현재의 모습이 있고, 과거에는 과거의 모습이 있고, 미래에는 미래의 모습이 있다.

 

[답] 만일 세 세상의 때에 모두 자상(自相)219)이 있어야 한다면 모두가 현재의 세상일 뿐이요, 과거나 미래의 때는 없어야 한다. 만일 지금 미래가 있다면 미래라 부르지 않고 응당 현재라 일컬어야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맞지 않다.

 

[문] 과거의 때와 미래의 때는 현재의 모습 속의 행이 아니다. 과거의 때는 과거의 세상에서 행해지고, 미래의 세상은 미래의 때에서 행해진다. 그러므로 각각의 법상(法相)에는 때가 있는 것이다.

 

[답] 만약에 과거가 다시 지나갔다고 한다면 곧 과거의 모습을 깨뜨리게 되며

  
  
219) 범어로는 svalakṣaṇ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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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가 비과거라면 과거의 모습이 없게 된다. 왜냐하면 자상(自相)이 버려지기 때문이다. 미래의 세상 역시 그러하다.

 

그러므로 때의 법이란 진실함이 없거늘 어찌 하늘과 땅의 좋고 나쁜 것들과 꽃 열매 등 모든 물건을 내겠는가? 이러한 갖가지 방법으로 삿된 소견을 제하기 위하여 가라로 말하지 않고 사마야로 말한 것이다.

 

음(陰)과 계(界)와 입(入)의 생멸을 보고서 거짓으로 때라 말했으나 달리 때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방위와 때, 여읨과 합함, 하나와 다름, 긺과 짧음 따위의 명칭이 나오매 범부는 마음으로 집착해서 이것을 실제로 존재하는 법이라고 한다.

 

이런 까닭에 세간의 명칭과 언어의 법을 제거해 버리는 것이다.

 

[문] 만일 때가 없다면 어찌하여 때에 맞는 음식은 먹어도 좋다 하고 때에 맞지 않는 음식은 먹지 말라 함이 곧 계(戒)가 되는가?

 

[답] 나는 이미 세간의 명칭의 법에는 ‘때’가 있지만 실제의 법이 아니라고 했다. 그대는 따져 묻지 말라.

 

또한 이 비니(毘尼)220) 가운데 결계(結戒)의 법은 세속의 법으로서 실제로 있지만, 제일의제의 실다운 법[實法]의 모습은 아니다. 나라는 법의 모습은 실로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여러 사람이 가책하는 까닭이며, 또는 불법을 보호하여 오래 보존시키고자 해서 제자들의 예법을 제정하려는 까닭에 삼계(三界)의 세존께서는 모든 계를 제정하셨다.

 

그러니 여기에서 “어떠한 진실이 있는가, 어떠한 명칭이 있는가, 어떤 것이 상응(相應)하는가, 어떤 것이 상응치 않는가, 어떤 것이 법[是法]으로서 여실한 모습인가, 어떤 것이 법으로서 여실치 않은 모습인가?”라고 구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까닭에 이 일을 비난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문] 만약에 때에 맞는 음식221)ㆍ때에 맞는 약222)ㆍ때에 맞는 옷223)이 모두

  
  
220) 범어로는 Vinaya.
221) 범어로는 kālabhojana.
222) 범어로는 kālabhaiṣajya.
223) 범어로는 kālava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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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가 아니라고 한다면224) 이들은 어찌하여 사마야로 말하지 않는가?

 

[답] 이것은 비니 가운데 설해진 것으로, 속인[白衣]225)은 듣지 못한다.

외도가 어떻게 듣고서 삿된 소견을 내겠는가?

 

다른 경은 통틀어 누구나 들을 수 있으니, 그렇기에 삼마야를 말하여 그들로 하여금 삿된 소견을 내지 않게 했다.

 

삼마야는 거짓으로 때를 이름 지은 것이며, 때[時] 역시 거짓 이름이다.

불법에는 대개 삼마야로 말하고, 가라로 말한 경우는 적다. 적다고 해서 힐난하지 말라.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라는 다섯 어구226)의 뜻을 각각 간략히 설명해 마친다.

  
224) 율(律)에서는 시식(時食)․시약(時藥)․시의(時衣)에 대해 가라(kāla)라고 하기 때문이다.
225) 범어로는 avadātavasana.
226) 곧, evaṃ me śrutaṃ ekasmim samaye라는 다섯 어구를 말한다.

 

 

 

 

대지도론(大智度論) 11. 속제와 진제의 차이점

출처 : 출리심 보리심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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