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불법에서는 ‘모든 법이 공하여 모든 것에 나라 할 것이 없다’고 했는데 어찌하여 불경 첫머리에 내가 들었다고 하는가? |
[답] 비록 부처님의 제자들이 나 없음을 알기는 하나, 세속의 법을 따라 나라 할지언정 실제의 나는 아니다. |
비유하건대 금화로 동화[銅錢]를 사더라도 아무도 비웃을 이가 없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사고파는 법이 의례 그렇기 때문이다. 나라는 것도 그와 같아서 무아(無我)의 법 가운데 나를 말함은 세속을 따르는 까닭이니, 힐난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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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경(天問經)』에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
어떤 나한 비구199)가 |
모든 번뇌가 영원히 다한 |
최후의 마지막 몸에도 |
나라고 할 수 있는가? |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
어떤 아라한 비구가 |
모든 번뇌가 영원히 다한 |
최후의 마지막 몸에도 |
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네. |
세간의 법[世界法]에서 나라고 함은 제일의제의 진실한 뜻 가운데에서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법이 공하여 나가 없으나, 세계의 법에 따라 나라고 말하여도 허물이 되지 않는다.
또한 세간의 말에는 세 가지 근본이 있으니, 첫째는 삿된 소견이요, 둘째는 교만이요, 셋째는 이름이다. |
이 가운데서 두 가지는 깨끗하지 못한 것이요 한 가지는 깨끗하다. 모든 범부들은 세 가지 말을 하니, 삿된 소견과 교만과 이름이 그것이다. 견도(見道)의 학인200)은 두 가지 말을 하니, 교만과 이름이요, 성인은 한 가지 말만 하니, 이름이 그것이다. |
속마음으로는 진실한 법을 어기지 않으나 세간의 사람을 따르는 까닭에 더불어 이러한 말로 의사를 전한다. 하지만 세간의 삿된 소견을 제거하였기 때문에 세속을 따라도 다툼이 없다. |
이런 까닭에 두 가지 부정한 말의 근본을 제거하고 세속을 따르는 까닭에 한 가지 말만을 사용한다. |
199) 범어로는 arhat-bhikṣu. 나한은 아라한을 줄여 부르는 말이다. |
200) 처음으로 무루지(無漏智)를 내어서 진리를 비춰보게 되는 경지에 이른 사람을 말한다. 견도(dṛṣṭimārga)란 3도(道) 가운데 하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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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제자들은 세속을 따르기 때문에 나라고 말하여도 허물이 되지 않는다. |
또한 어떤 사람이 나 없는 형상에 집착되어 “이것만이 진실하고 나머지는 거짓말이다”라고 한다면 이 사람은 당연히 “그대여, 모든 법의 진실한 모습은 나 없음이거늘 어찌하여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하는가?”라고 힐난 받으리라. |
이제 모든 불제자들은 모든 법이 공하여 아무것도 없음을 알았고 여기에 집착되지도 않는다.
또한 모든 법의 실상에 집착되었다고도 말할 수 없거늘 하물며 나 없는 법에 마음이 집착되리오. 그러므로 “어찌하여 나라고 말하는가?”라며 힐난해서는 안 된다. |
『중론(中論)』201)에서 게송으로 말했다. |
공하지 않은 바가 있다면 |
의당 공한 바가 있으려니와 |
공하지 않은 바도 없거늘 |
어찌 하물며 공함을 얻으랴. |
보통 사람들은 공하지 않음을 보고 |
또한 다시 공함도 보지만 |
보는 것이 곧 보지 않는 것이니 |
이것이 진실로 열반임을 보지 못한다. |
불이(不二)의 안온 법문이 |
모든 사견을 깨뜨리나니 |
부처님들이 행하시는 경지라야 |
이를 무아(無我)의 법이라 한다. |
201) 범어로는 Madhyamaka-śāstra. 「관행품(觀行品)」 제8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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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뜻을 간략히 설명해 마친다. |
이제 ‘듣는다’202) 함을 설명하리라. |
[문] 듣는다는 것은 어떻게 듣는가? 귀[耳根]로 듣는가, 귀의 의식[耳識]203)으로 듣는가, 뜻의 의식(意識)으로 듣는가? 만일 귀로 듣는다면 귀는 감각이 없기 때문에 듣지 못한다. 만일 귀의 의식으로 듣는다면 귀의 의식은 한 생각뿐이기 때문에 분별치 못하며 또한 듣지 못한다. 만일 뜻의 의식으로 듣는다면 뜻의 의식 또한 듣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먼저 5식(識)204)이 5진(塵)205)을 안 뒤에야 뜻의 의식이 알기 때문이다.
뜻의 의식은 현재의 5진을 알지 못하고 오직 과거와 미래의 5진만을 아나니, 만일 뜻의 의식이 현재의 5진을 알 수 있다면 소경이나 벙어리도 빛과 소리를 알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뜻의 의식이 파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답] 귀로 소리를 듣는 것도 아니요, 귀의 의식이나 뜻의 의식으로 소리를 듣는 것도 아니다. 여러 인연이 화합함으로써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니, 한 법이 소리를 듣는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귀는 감각이 없기 때문에 소리를 듣지 못하고, 식은 무색(無色)․무대(無對)․무처(無處)인 까닭에 역시 소리를 듣지 못하고, 소리 자체는 감각이 없고 감관도 없기 때문에 또한 소리를 알지 못한다. |
하지만 귀가 망가지지 않고, 소리가 들을 수 있는 곳에 이르렀고, 뜻으로 듣고자 한다면 정(情)과 진(塵)과 뜻[意]206)이 화합하였기 때문에 이식이 생기며, 이식이 생기기만 하면 의식이 갖가지 인연을 분별하여 소리를 듣게 된다. |
이런 까닭에 “누가 소리를 듣는가?”라며 힐난하지는 말아야 한다. |
불법에도 어느 한 법이 짓거나 보거나 아는 일이 없나니, 이런 게송이 있다. |
202) 범어로는 śrutam. |
203) 범어로는 vijñāna. 식별작용을 가리킨다. |
204)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을 말한다. |
205) 5식의 대상인 색․성․향․미․촉을 말한다. |
206) 근(根)․경(境)․식(識) 삼사를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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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도 있고 과도 있지만 |
업과 과를 짓는 이가 없다. |
이는 가장 높고 심히 깊으니 |
이 법은 부처님만이 아신다. |
공하지만 단절됨[斷]은 아니요 |
상속하지만 항상함[常]도 아니다. |
죄와 복 또한 잃지 않으니 |
이런 법을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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