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

[스크랩] 대지도론(大智度論) 10. ★ 여러 인연이 화합함으로써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니, 한 법이 소리를 듣는다고 말할 수 없다.

수선님 2018. 10. 21. 13:21

[문] 불법에서는 ‘모든 법이 공하여 모든 것에 나라 할 것이 없다’고 했는데 어찌하여 불경 첫머리에 내가 들었다고 하는가?

 

[답] 비록 부처님의 제자들이 나 없음을 알기는 하나,

      세속의 법을 따라 나라 할지언정 실제의 나는 아니다.

 

비유하건대 금화로 동화[銅錢]를 사더라도 아무도 비웃을 이가 없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사고파는 법이 의례 그렇기 때문이다. 나라는 것도 그와 같아서 무아(無我)의 법 가운데 나를 말함은 세속을 따르는 까닭이니, 힐난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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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경(天問經)』에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어떤 나한 비구199)
  모든 번뇌가 영원히 다한
  최후의 마지막 몸에도
  나라고 할 수 있는가?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어떤 아라한 비구가
  모든 번뇌가 영원히 다한
  최후의 마지막 몸에도
  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네.
  

세간의 법[世界法]에서 나라고 함은 제일의제의 진실한 뜻 가운데에서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법이 공하여 나가 없으나,

세계의 법에 따라 나라고 말하여도 허물이 되지 않는다.

 

또한 세간의 말에는 세 가지 근본이 있으니, 첫째는 삿된 소견이요, 둘째는 교만이요, 셋째는 이름이다.

 

이 가운데서 두 가지는 깨끗하지 못한 것이요 한 가지는 깨끗하다. 모든 범부들은 세 가지 말을 하니, 삿된 소견과 교만과 이름이 그것이다. 견도(見道)의 학인200)은 두 가지 말을 하니, 교만과 이름이요, 성인은 한 가지 말만 하니, 이름이 그것이다.

 

속마음으로는 진실한 법을 어기지 않으나 세간의 사람을 따르는 까닭에 더불어 이러한 말로 의사를 전한다. 하지만 세간의 삿된 소견을 제거하였기 때문에 세속을 따라도 다툼이 없다.

 

이런 까닭에 두 가지 부정한 말의 근본을 제거하고 세속을 따르는 까닭에 한 가지 말만을 사용한다.

  
  
199) 범어로는 arhat-bhikṣu. 나한은 아라한을 줄여 부르는 말이다.
200) 처음으로 무루지(無漏智)를 내어서 진리를 비춰보게 되는 경지에 이른 사람을 말한다. 견도(dṛṣṭimārga)란 3도(道) 가운데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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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제자들은 세속을 따르기 때문에 나라고 말하여도 허물이 되지 않는다.

 

또한 어떤 사람이 나 없는 형상에 집착되어 “이것만이 진실하고 나머지는 거짓말이다”라고 한다면 이 사람은 당연히 “그대여, 모든 법의 진실한 모습은 나 없음이거늘 어찌하여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하는가?”라고 힐난 받으리라.

 

이제 모든 불제자들은 모든 법이 공하여 아무것도 없음을 알았고 여기에 집착되지도 않는다.

 

또한 모든 법의 실상에 집착되었다고도 말할 수 없거늘 하물며 나 없는 법에 마음이 집착되리오.

그러므로 “어찌하여 나라고 말하는가?”라며 힐난해서는 안 된다.

 

 

『중론(中論)』201)에서 게송으로 말했다.

  
  공하지 않은 바가 있다면
  의당 공한 바가 있으려니와
  공하지 않은 바도 없거늘
  어찌 하물며 공함을 얻으랴.
  
  보통 사람들은 공하지 않음을 보고
  또한 다시 공함도 보지만
  보는 것이 곧 보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진실로 열반임을 보지 못한다.
  
  불이(不二)의 안온 법문이
  모든 사견을 깨뜨리나니
  부처님들이 행하시는 경지라야
  이를 무아(無我)의 법이라 한다.
  
  
201) 범어로는 Madhyamaka-śāstra. 「관행품(觀行品)」 제8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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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뜻을 간략히 설명해 마친다.
이제 ‘듣는다’202) 함을 설명하리라.

 

[문] 듣는다는 것은 어떻게 듣는가? 귀[耳根]로 듣는가, 귀의 의식[耳識]203)으로 듣는가, 뜻의 의식(意識)으로 듣는가? 만일 귀로 듣는다면 귀는 감각이 없기 때문에 듣지 못한다. 만일 귀의 의식으로 듣는다면 귀의 의식은 한 생각뿐이기 때문에 분별치 못하며 또한 듣지 못한다. 만일 뜻의 의식으로 듣는다면 뜻의 의식 또한 듣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먼저 5식(識)204)이 5진(塵)205)을 안 뒤에야 뜻의 의식이 알기 때문이다.

 

뜻의 의식은 현재의 5진을 알지 못하고 오직 과거와 미래의 5진만을 아나니, 만일 뜻의 의식이 현재의 5진을 알 수 있다면 소경이나 벙어리도 빛과 소리를 알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뜻의 의식이 파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답] 귀로 소리를 듣는 것도 아니요, 귀의 의식이나 뜻의 의식으로 소리를 듣는 것도 아니다.

여러 인연이 화합함으로써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니, 한 법이 소리를 듣는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귀는 감각이 없기 때문에 소리를 듣지 못하고, 식은 무색(無色)․무대(無對)․무처(無處)인 까닭에 역시 소리를 듣지 못하고, 소리 자체는 감각이 없고 감관도 없기 때문에 또한 소리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귀가 망가지지 않고, 소리가 들을 수 있는 곳에 이르렀고, 뜻으로 듣고자 한다면 정(情)과 진(塵)과 뜻[意]206)이 화합하였기 때문에 이식이 생기며, 이식이 생기기만 하면 의식이 갖가지 인연을 분별하여 소리를 듣게 된다.

 

이런 까닭에 “누가 소리를 듣는가?”라며 힐난하지는 말아야 한다.

 

 

불법에도 어느 한 법이 짓거나 보거나 아는 일이 없나니, 이런 게송이 있다.

  
  
  
202) 범어로는 śrutam.
203) 범어로는 vijñāna. 식별작용을 가리킨다.
204)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을 말한다.
205) 5식의 대상인 색․성․향․미․촉을 말한다.
206) 근(根)․경(境)․식(識) 삼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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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도 있고 과도 있지만
  업과 과를 짓는 이가 없다.
  이는 가장 높고 심히 깊으니
  이 법은 부처님만이 아신다.
  
  공하지만 단절됨[斷]은 아니요
  상속하지만 항상함[常]도 아니다.
  죄와 복 또한 잃지 않으니
  이런 법을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출처 : 출리심 보리심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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