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진치[貪瞋癡]를 삼독심[三毒心]이라고 합니다.
독하니까요.
탐진치[貪瞋癡]를 풀이하자면, 다음과 같을 겁니다.
탐 - 탐욕/희망
진 - 분노/두려움
치 - 무명/어리석음
두려움이란 분노에 속합니다.
화가 나거나 두려워하는 이유는 뭘까요?
바로 "나"를 보호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즉 탐욕 때문입니다.
진(瞋)의 이유는 바로 탐[貪] 때문입니다. 탐욕이 그 뿌리입니다.
탐욕은 왜 발생할까요? 왜 자기를 사랑할까요?
바로 내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게 바로 치[癡]죠. 치가 바로 어리석음/무명입니다.
그러니 화를 안내려면, 자기에 대한 애착을 버려야 하고,
자기에 대한 애착을 버리려면 어리석음을 제거해야 합니다.
치, 즉 어리석음이란 없는 나를 있다고 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있다는 어리석음을 깨부수는게 바로 無我의 지혜입니다.
무아의 지혜는 공성/불성을 체득함을 말합니다. 물론 공성은 있다/없다를 다 떠난 상태입니다.
무아란 실제 "나"라는 것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경험하는 것입니다.
불성이 있다라는 말은 사실 말이 맞지를 않지요.
불성을 있다 없다라고 표현할 수는 없으니까요.
우리가 "나"라고 알고 있는 것은 우리의 일상적인 마음입니다.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생각한다고 하지요. 우리는 이걸 나 자신으로 생각합니다.
근데 이게 "나"가 아닙니다.
자존심 건드리면 화나고, 또 좋은 거 보면 가지고 싶어하는 이 마음... 이걸 "나"라고 아는데, 이게 잘못된겁니다.
이게 바로 무아의 뜻 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요?
평생 나 자신으로 알던게 내가 아니라니........그럼 도데체 난 뭔가?
그걸 알아내는게 불교공부지요.
우리가 쓰는 이 일상적인 마음이 있고, 그 마음의 근원이 있습니다.
그 마음의 근원을 불성/공성/진여 등으로 표현하지요.
그것만이 무명....즉 탐진치에서 치..즉 어리석음을 박살냅니다.
이 마음의 근원을 알지 못하면, 항상 삼독심.....즉 탐진치에 빠져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이 생각하는 이걸 나 자신으로 알 수 밖에 없으니까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겁니다.
저 불성/공성을 알지 못한채로 아무리 마음을 억눌러놔봐야 겨우 잠시일 뿐이지요.
무명/어리석음의 근본적인 뿌리를 파괴할 수 없습니다.
물론 불성을 깨달았다고 해도 단 한방에 습기가 다 사라질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너무나도 크지요.
불성을 체득한다는 것은 무아를 확실히 깨달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또 무상함을 확실히 알았다고도 할 수 있지요.
그래서 마음이 움직이는게 잘 보입니다.
분노와 탐욕....탐심과 진심이 잘 드러납니다.
마음, 생각의 무상함....
생각이란 왔다가 바로 사라지는 것을 알게 됩니다.
괴로운 생각, 슬픈 생각, 기쁜 생각..등등의 온갖 생각들...
그냥 잠시 왔다가 사라져버리지요.
이렇게 무상한 것을 우리는 나 자신이라고 여기고 살았습니다.
왜냐면, 생각이 계속 이어져 나가기 때문이지요.
생각하는 걸 즐깁니다.
생각이 사라져서 고요해지면, 오히려 두려워합니다. 나 자신이 사라져버리는 줄 알고..
우리는 이 일상적인 마음을 씀으로써, 즉 생각함으로써 바깥에 있는 것들에 집착합니다.
이성, 돈, 명예 등등.....
바깥에 있는 모든 것들은 본래가 잡을 수 없습니다. 무상하니까...
근데 본래 붙잡을 수 없는 것을 붙잡으려고 하기 때문에 고통이 생깁니다.
무상한 줄 모르기 때문에 붙잡으려고 하지요.
그래서 삼법인 중에 가장 첫번째가 바로 무상입니다.
부처님 진리를 배울 때 가장 먼저 깊게 깨달아야 할것이 바로 이 무상이라고 하지요.
일체가 무상합니다. 무상하므로 본래가 붙잡을 수가 없지요.
근데도 붙잡으려고 합니다. 잠시 붙잡아도 결국엔 놓치게 되지요. 놓치게 되면 좌절하고 슬퍼합니다.
바깥의 것들은 일체 붙잡을 수가 없습니다.
가장 소중히 여기는 육체조차도 결국 놓치게 되지요.
또 이 붙잡으려고 하는 우리의 이 마음..이것도 역시 무상합니다.
생각이란 것은 잠시 생겼다가 그냥 사라져버리는거니까요.
우리가 잡으려는 바깥 사물들의 무상함을 깨닫기 이전에,
우리 마음 자체가 무상하다는 걸 더 깊게 깨달아야 합니다.
이 마음 자체가 무상합니다.
무상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지요.
이 마음 자체도 무상해서 아무것도 못잡는데, 그걸로 바깥의 무상한 것들을 잡으려고 하지요.
무상한걸로 무상한걸 잡으려고 합니다. 참 바보같은 짓이지요.
이걸 알게되면, 포기하게 되죠. 잡으려고하던걸 포기하게 됩니다.
놓고 쉬게 되는거죠.
그래서 마음이 쉬려면, 공성/불성을 가장 먼저 깨달아야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걸 깨달으면 죽음이란 없다는 걸 알게 되지요. 그건 절대 죽을 수 없으니까요. 못죽지요. 태어난게 아니니까..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은 그냥 놔둬버리는 것이다....라고들 얘기합니다.
탐욕이든, 분노든 그냥 놔둬버리는 겁니다. 흘러가버리게끔....
무상하니까, 본래 잡을 수도 없는거고...그냥 놔두건 안놔두건 그냥 어차피 흘러가는거죠.
마음을 텅 비워버리면, 바깥의 사물이나 이 생각하는 놈이나 다 똑같이 바깥에 있죠.
안에 있는게 아니라, 모조리 다 바깥에 있습니다.
그래서 육경이 색성향미촉법인거죠.
안이비설신의든 색성향미촉법이든 다 바깥입니다. 안이 아니고........물론 안팎이 따로 없지만요.
그냥 모든게 다 마음안에 비춰진 상태입니다.
나든 바깥 사물이든간에........
참 어렵네요. 이 수행방법 깨닫는게...........
사마타, 선나, 삼마발제...이 세가지의 미묘한 차이...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과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마음속 울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서원 (0) | 2018.11.04 |
---|---|
[스크랩] 호흡관(아나파나사띠) 수행을 할 때, 숨은 누가 쉬나? (0) | 2018.11.04 |
[스크랩] 명상/수행 : 몸과 마음이 쉬는 것에 대한 고찰 (0) | 2018.11.04 |
[스크랩] 명상/수행 : 마음을 내려놓는 방법, 마음을 쉬는 요령 (0) | 2018.11.04 |
[스크랩] 생명을 구해준 보답일까 (0) | 2018.1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