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존재의 가장 깊은 곳, 그 ‘아래’에 있는 뿌리와도 같은
우리의 ‘불성, 한마음, 본래 면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방하착은 공이라는 이치를 올바로 모르고 있기에
저지를 수 있는 우리 마음속의 온갖 집착들을 모두 마음의 바탕 자리,
본래 면목의 한마음 자리에 놓아버리는 것을 의미 합니다.
일체의 끄달림을 놓는 것입니다.
놓되 ‘몰록’ ‘온전히’ 놓아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몽땅 놓아버리는 것입니다.
용광로 속에는 그 어떤 더럽고 녹슨 고철이라도
넣기만 하면 모두 용광로와 하나가 되어 녹게 마련입니다.
그렇듯, 우리의 마음자리, 본래 면목, 참 주인공도 그와 같아
우리의 수많은 번뇌와 업장들을 모두 녹이기 마련입니다.
문제는, 이 모두를 스스로 놓아버릴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놓으면 되지만 놓지를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들의 삶을 되돌아보면 어떠한가?
지금까지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붙잡기만 하는 삶이었습니다.
돈과 재물을 붙잡고, 지식을 붙잡고, 명예와 지위를 붙잡고,
이 모든 것들에 ‘내 것’이라는 상을 짓고,
빼앗기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살아왔습니다.
한 번도 ‘턱’ 놓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놓으면 큰일이 나고, 죽는 줄로만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내 것, 내 가족, 내 돈, 내 생각, 내 가치관 등등
‘나’라는 의식으로 인해 모든 것을 가지려는 삶을 살아온 것입니다.
‘가지고 붙들려는 삶’을 ‘놓는 삶’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정말이지 커다란 의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붙들었을 때 잘 되는 것이 아니라,
놓았을 때 진정 잘 되어 나가는 것이라는 의식의 전환 말입니다.
일체를 소유하지 않았을 때, 진정으로 무소유가 되었을 때
이 우주 전체를 소유하게 된다는 소중한 도리를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까짓 일체가 공(空)인 마당에 무엇이 아까울 것이 있는가?
공과 하나가 되었을 때,
우리 마음속에 본래 자리잡고 있던 밝은 지혜가 환히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반야(般若)’ 지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 수행은
무소득(無所得), 무소유(無所有), 무집착(無執着), 방하착(放下着)의 수행
이며,
공과 하나가 되는 수행인 것입니다.
이것이 반야심경이 우리에게 던지는 실천 수행의 길인 것입니다.
일체를 놓는 것, 이것이 바로 반야바라밀입니다.
방하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