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바가바는 단지 이 한 이름뿐인가, 아니면 다른 이름이 있는가? |
[답] 부처님의 공덕이 한량이 없다면 명호 역시 한량이 없다. 이 이름은 그 중에서 큰 것만을 취하였으니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밖에 다른 이름이 있으니 다타아가타(多陀阿伽陀)135) 등이다. |
어찌하여 다타아가타라 하는가?
법의 모양과 같이 알고 법의 모양과 같이 말하며, 부처님들이 편안한 길에서 오신 것같이 부처님께서도 그렇게 오셔서 다시는 후유(後有) 가운데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다타아가타라 한다. |
또한 아라가(阿羅呵)136)라고 부른다. 어찌하여 아라가라 하는가? 아라(阿羅)는 적(敵)137)이요 가(呵)는 살(殺)138)이니, 곧 살적(殺敵)이라 한다. |
게송에 이런 것이 있다. |
부처님은 인욕으로 투구를 삼고 |
정진으로 갑옷을 삼고 |
지계로써 큰 말을 삼고 |
선정으로 활을 삼고 |
지혜로써 좋은 화살을 삼아 |
겉으로는 마왕의 군대를 깨뜨리고 |
안으로는 번뇌의 도적을 무찌르니 |
이를 아라가라 한다네. |
135) 범어로는 Tathāgata. |
136) 범어로는 Arhat. |
137) 범어로는 ari. |
138) 범어로는 h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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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아(阿)는 불(不)이요, 라가(羅呵)는 생(生)이니,139) 불생(不生)이라 한다. 부처님의 마음 종자가 뒷세상의 밭에서 생겨나지 않아 무명의 쭉정이를 벗기 때문이다. |
또한 아라가는 공양(供養)을 받을 만한 분이라 하니, 부처님은 모든 번뇌가 모두 다하고 온갖 지혜를 얻었으므로 일체 천지의 중생들의 공양을 다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아라가라 한다. |
또한 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140)라 한다. 어찌하여 삼먁삼불타라 하는가? 삼먁은 정(正)이요 삼은 변(遍)이요 불타는 지(知)이니, ‘일체법을 바르고 두루 아는 분’이라 한다. |
[문] 어떻게 바르고 두루 아는가? |
[답] 괴로움을 괴로움의 모습같이 알고 |
쌓임을 쌓임의 모습같이 알고 |
사라짐을 사라짐의 모습같이 알고 |
도를 도와 같이 안다. |
이것을 삼먁삼불타라 한다. |
또한 온갖 법이 진실로 무너지지 않는 모습이어서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음을 안다. 그렇다면 무엇을 무너지지 않는 모습이라 하는가?
마음으로 행할 곳이 사라지고 언어의 길이 끊어져 모든 법을 초월해 마치 열반의 모습 그대로 요동치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먁삼불타라 한다. |
또한 온갖 시방세계의 명호(名號)와 6도(道)에 속하는 중생들의 명호와 중생들의 전생 인연과 미래 세상에 태어날 곳과 시방의 온갖 중생들의 갖가지 심상(心相)과 모든 번뇌와 모든 선근과 모든 벗어나는 길 등 이러한 온갖 법을 다 아나니, 이를 삼먁삼불타라 한다. |
또한 비치차라나삼반나(鞞侈遮羅那三般那)141)라고도 하나니, 중국[秦] |
139) 범어 arhat를 부정접두어 a-와 rahat의 합성어로 보는 경우이다. |
140) 범어로는 Samyaksaṁbuddha. |
141) 범어로는 Vidyācaraṇasaṁpann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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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는 명행구족(明行具足)이라 한다. 어찌하여 명행구족이라 하는가? 숙명(宿命)142)과 천안(天眼)143)과 누진(漏盡)144)을 3명(明)이라 한다. |
[문] 신통(神通)과 명(明)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
[답] 과거 전생의 일만을 바로 아는 것을 신통이라 하고, 과거의 인연과 행업까지 아는 것을 명이라 한다.
여기에 죽어서 저기에 태어나는 것만을 바로 아는 것을 신통이라 하고, 행의 인연은 이어지고 만나서[際會] 어긋나지 않음을 아는 것을 명이라 한다.
번뇌[結使]가 다하지만 다시 생겨날지 아닐지 모르는 것을 신통이라 하고 번뇌가 다하여 다시는 생겨나지 않을 것을 똑똑히 아는 것을 명이라 한다.
이것이 3명이니, 이 3명은 큰 아라한이나 큰 벽지불들이 얻는 것이다. |
[문] 그렇다면 부처님과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
[답] 그들은 비록 3명을 얻었으나 명이 만족하지 못하거니와 부처님은 모두가 만족하시니 이것이 다른 점이다. |
[문] 무엇을 만족하다 하고, 무엇을 만족하지 못하다 하는가? |
[답] 모든 아라한과 벽지불의 숙명지는 자기의 일과 다른 이의 일을 알지만 두루하지 못하다. 아라한은 한 세상․두 세상․세 세상, 혹은 십․백․천․만 겁 내지 8만 겁을 알지만 이를 지나면 더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천안명에 만족하지 못한다.145) 미래 세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
하지만 부처님은 한 생각 동안에 나고 머무르고 멸하는 때와 모든 번뇌의 부분[分]이 생겨날 때와 모든 결사가 이처럼 나고 머물고 멸할 때를 아시니, 이와 같은 고법인(苦法忍)146)․고법지(苦法智)147)에서 끊어야 할 번뇌를 모두 분명히 아신다. 이와 같이 해서 번뇌에서 해탈할 때에 거기에 맞는 유위법의 |
142) 범어로는 pūrva-nivāsābhijñā. 생사를 아는 능력을 말한다. |
143) 범어로는 dvyacakṣu. |
144) 범어로는 āsrava-kṣayābhijñā. 모든 번뇌의 소멸을 아는 능력을 말한다. |
145) 그러므로 천안명이 완전하지 못하다. |
146) 범어로는 duḥkhe`nvaya-jñāna-kṣāntiḥ. 고제를 관찰해 얻는 지혜인 고법지의 직전에 얻는 마음을 말한다. 고류지인(苦類智忍)이라고도 한다. |
147) 범어로는 duḥkhe`nvaya-jñāna. 색계․무색계의 고제를 관찰해 얻는 지혜를 말한다. 고류지(苦類智)라고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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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을 얻으며, 거기에 맞는 무위법의 해탈 내지 도비인(道比忍)148)을 얻는다. 이는 견제도(見諦道)149)의 15심(心)150) 가운데 있는 성문이나 벽지불들은 깨달아 알지 못하는 바이니, 시간이 짧고 빠르기 때문이다. |
이와 같이 과거 중생의 인연과 번뇌가 다하였음을 알며, 미래와 현재에 대해서도 역시 그와 같다. 그러므로 부처님을 명행구족이라 한다. |
행(行)은 신업(身業)과 구업(口業)을 뜻하는 말이나 오직 부처님만이 신구업을 구족하시고 나머지는 모두가 잃게 되기에 명행구족이라 한다. |
또한 수가타(修伽陀)151)라고도 한다. 수(修)는 진나라에서는 ‘좋다[好]’고 하고, 가타는 ‘간다[去],’ 혹은 ‘말한다[說]’고 한다. 그러므로 ‘잘 가시고 잘 말한 분’이라 하나니, ‘잘 간다’고 함은 갖가지 깊은 삼매와 한량없는 모든 큰 지혜로 간다는 뜻이다. 게송에 이런 것이 있다. |
부처님은 일체지를 큰 수레로 삼고 |
8정도를 행해 열반에 드신다네. |
이것이 ‘잘 간다[好去]’는 뜻이다. |
‘잘 말한다[好說]’ 함은 모든 법을 실상 그대로 말하되 법애(法愛)에 집착하지 않으며, 말할 때에는 제자들의 지혜의 힘을 관찰하는 것이다.
곧 ‘이 사람은 설사 온갖 방편과 신통과 지혜의 힘을 다하여 교화한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이 사람은 제도할 수 있으니 신속하리라,’ ‘이 사람은 더딜 것이다,’ ‘이 사람은 이러한 곳에서 제도해야 된다,’ ‘이 사람에게는 보시를 말해 주어야 한다,’ ‘이 사람에게는 계행을 말해주고, 이 사람에게는 열반을 말해 주어야 한다,’ |
148) 도류지인(道類智忍)이라고도 한다. 이는 색계․무색계의 도제를 관찰해 얻는 지혜인 도비지(道比智, mārga-anvaya- jñāna)를 얻기 직전에 나타나는 마음으로, 욕계의 도제(道諦)를 관찰한 뒤 다시 위의 두 세계(색계․무색계)의 도제를 관찰해 명확히 인정하고 알아채는 마음을 말한다. |
149) 범어로는 darśana-mārga. 4제(諦)를 관찰하는 단계를 말한다. 번뇌가 끊어진 성자의 경지를 처음으로 발견하는 단계로 견도(見道)라고도 한다. |
150) 견도(見道)의 지위에 들어서 일으키는 무루의 법인과 법지인 8인(忍)․8지(智) 가운데 도비지(道比智, mārga-anvaya- jñāna) 이전의 15심을 가리킨다. |
151) 범어로는 Sugat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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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에게는 5중(衆)․12인연152)․4제(諦)153)등의 가르침을 말해 주어야 도에 들 것이다’라고 이와 같이 갖가지로 제자들의 지혜의 힘을 알아서 법을 말해 주는 것을 ‘잘 말한다’ 하는 것이다. |
또한 노가비(路迦憊)154)라고도 한다. 노가(路迦)155)는 진나라에서는 세간[世]이라고 하고 비(憊)156)는 알다[知]라 하니, 이는 ‘세간을 아는 분’이 된다. |
[문] 어떻게 세간을 아는가? |
[답] 두 가지 세간을 아나니, 첫째는 중생이요 둘째는 비중생이다. 나아가 실상 그대로 세간과 세간의 원인을 알며, 세간의 멸과 출세간의 도를 안다. |
‘세간을 안다’ 함은 세속의 알음알이 같은 것은 아니며, 또한 외도의 알음알이도 아니다. 세간은 무상한 까닭에 고이며, 고인 까닭에 무아라고 아는 것이다. |
세간의 모습은 항상함도 아니고 무상함도 아니며, 끝이 있음도 아니고 끝이 없음도 아니며, 가는 것도 아니고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모습에도 집착되지 않고 청정하여 항상 무너지지 않는 모습이 허공과 같다고 아는 것이다. |
이것을 ‘세간을 안다’ 하는 것이다. |
또한 아뇩다라(阿耨多羅)[진나라 말로는 ‘위없다(無上)’이다.]157)라고도 한다. |
[문] 무엇이 위가 없는가? |
[답] 열반의 법이 위가 없다. 부처님은 스스로가 이 열반을 아셔서 남에게 들은 적이 없으시며, 또한 중생들을 인도하여 열반에 이르게 하시는데, 모든 법 가운데서 열반이 위가 없듯이 중생 가운데서 부처님도 위가 없으시다. |
152) 범어로는 dvādaśahetupratyaya. |
153) 범어로는 caturāryasatya. |
154) 범어로는 Lokavit. 여래 10호 가운데 하나이다. 의역해서 세간해(世間解)라고도 한다. |
155) 범어로는 Loka. 세상을 뜻한다. |
156) 범어로는 vit. |
157) 범어로는 anuttar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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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지계․선정․지혜로 중생을 교화하시는데, 아무도 같을 이가 없거늘 하물며 그를 지날 이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위없는 분’이라 한다. |
또한 아(阿)를 ‘없음[無]’이라 하고 욕다라(耨多羅)158)를 ‘대답하다[答]’라고 하니, ‘대답할 자 없는 분[無答]’이 된다. 온갖 외도의 법은 대답할 수 있고 부술 수가 있으니, 진실이 아니요 청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처님의 법은 대답할 수 없고 부술 수도 없다. 온갖 언어의 길을 뛰어넘었으니, 진실하고도 청정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대답할 자 없는 분’이라 하는 것이다. |
또한 부루사담먁바라제(富樓沙曇藐婆羅提)159)라 한다. 진나라 말로 부루사160)는 ‘장부(丈夫)’이고, 담먁161)은 ‘교화할 수 있다[可化]’이며, 바라제162)는 ‘길들이는 이[調御師]’이니, 이는 ‘장부를 교화하고 길들이는 분’이 된다. |
부처님은 큰 자비와 큰 지혜로써 때로는 부드러운 말로, 때로는 간절한 말로, 때로는 잡된 말로 길들여서 도를 잃지 않게 하시는 까닭이니,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
불법은 수레요 제자는 말이며 |
참된 법보의 주인이신 부처님은 길들이는 분이시니, |
말이 길을 벗어나서 바른 제도 잃으면 |
이럴 때에 다스려서 조복시켜 주신다. |
협소해서 길들일 수 없으면 가벼운 법으로 다스리고 |
즐겨 선행 이루어 세우면 최상의 도에 들게 하며 |
다스리기 어려운 자는 그대로 버려두니 |
그러기에 조어사이고 위없는 분이라 하노라. |
158) 범어로는 uttara. |
159) 범어로는 Puruṣadamyaksārathi. 의역해서 조어장부(調御丈夫)라고도 한다. |
160) 범어로는 puruśa. |
161) 범어로는 damya. |
162) 범어로는 sārath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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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조어사에 다섯 종류163)가 있다.
처음은 부모․형제․자매․친척[親里]이요, 중간은 관청의 법이요, 나중은 스승의 법이다. 이 세상에서는 이 세 가지 법으로 다스리고, 뒷세상에서는 염라왕(閻羅王)164)의 법으로 다스린다. 부처님은 이 세상의 즐거움과 뒷세상의 즐거움과 열반의 즐거움으로 이롭게 하기 때문에 부처님을 스승[師上]이라 한다. |
부처님의 법을 제외한 네 가지 법으로 사람을 다스리면 오래지 않아서 무너져서 항상 참되게 성취하지 못하거니와 부처님은 사람을 세 가지 도리로써 이루어서 항상 도를 따라 잃지 않게 한다.
이는 마치 불이 자상(自相)을 버리지 않다가 마침내는 사라지기에 이르는 것과 같으니, 부처님께서 사람들로 하여금 착한 법을 얻게 하는 것도 이와 같아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버리지 않는다. |
이런 까닭에 부처님을 ‘장부를 교화하고 길들이는 분’이라 한다. |
대지도론(大智度論) 18. 부처님과 아라한의 차이점, 여래십호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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