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성을 지키지 않고 인연따라 이루네
모든 법들은 지킬 자성(自性)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關系) 속에서 스스로 끊임 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변화(變化)가 자성입니다.
변화와 부동(不動), 이것과 저것이 어울려 있는 한 장면이
공성(空性)의 장,
무자성(無自性)의 장입니다.
공성의 장(場), 수연(隨緣)의 빈 모습
지금까지 다섯 게송의 내용을 설명하면서 이미 이 게송의 내용을 포함시키고 있었습니다만 이 대목에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선언하신 연기실상(緣起實相)의 뜻은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함으로 저것이 생하며, 이것이 없음으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함으로 저것이 멸한다[此有故彼有 此生故彼生 此無故彼無 此滅故彼滅]'는 대목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존재의 유무나 생멸은 존재 그 자체로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과 저것의 의존관계로부터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저것의 원인이면서 동시에 저것을 원인으로 하는 결과입니다.
때문에 모든 법들은 조건의 변화에 의해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툴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생들과 사물들의 이와 같은 자기 나툼은 상호 의존관계의 조건만큼이나 다양한 얼굴로 나타납니다.
앞의 게송에서 법성의 부동성을 이야기하면서 이것은 시공 밖에 있는 모습이라고 했습니다. 시공은 변화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있지만, 시공 밖에 있는 부동도 변화의 이면(裏面)이나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 그 자체가 실은 부동이기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도 말씀 드렸습니다.
여기서의 부동성(不動性)을 무자성(無自性), 곧 자성을 지키지 않는다고 할 수 있으며 부동성 그재로 변화의 움직임을 '인연을 따른다[隨緣]'고 할 수 있습니다. 단 변화의 인연을 따름이란 다양한 이것과 저것의 관계 속의 조건변화를 뜻하고 있는데, 이것과 저것의 근본실상(根本實相)이 무상무아(無相無我)이기 때문입니다.
이것과 저것의 무상무아라는 뜻은, 지각작용은 자기대상을 일정한 틀 속에 가두고서 아는 것인 데 반하여, 좌선삼매(坐禪三昧)를 통해서 바로 알아차리는 삶의 근거는 단 한 순간도 지각된 내용처럼 정지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물들을 정지된 모습으로 파악하고 일정한 틀을 통해서 인식하면서 갖게 되는 아상(我相)이 꿈과 같고 물거품과 같음을 깊은 통찰로 여실히 알게 된 것입니다. 이 아상이 끊어진 자리에서 무아와 무상인 시공의 본디 모습을 알게 되니 이를 연기법(緣起法), 공(空), 진여(眞如)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자성을 지키지 않는다는 말은, 모든 법들은 지킬 자성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끊임 없이 변화하고 있음을 말합니다. 변화이기 때문에 지킬 자성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禪)에서 지각을 통한 사유(思惟)로나 언어표현을 통해서 변화를 알아차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온갖 법들의 변화와 이를 가리키는 '변화'라는 말은 상호모순입니다. 왜냐하면 말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각과 언어는 한정되고 정지된 시공의 영역만을 알아차리고 표현할 뿐, 삶의 실상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지각과 언어의 재생산만을 합니다. 더구나 변화란 항상 부동(不動) 그 자체의 변화이기 때문에 더더욱 언어나 생각으로 알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여기서 인연을 따른다고 했을 때, 인연, 곧 조건들의 변화를 따르는 또다른 축의 자성이나 조건의 이면에 빈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과 같은 모습을 자성(自性)으로 여겨서는 안됩니다. 인연조건을 떠르는 것으로 무자성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것과 저것이 어울려 있는 한 장면만이 공성(空性)의 장(場), 무자성의 장이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은 앞의 법성의 부동을 노래한 몇 구절을 이어받아서 뒤에 나오는 이것과 저것들의 관계를 화엄에서 포착하여 이야기하는 연기의 양면인 상입(相入)과 상득(相卽)의 관계 설정을 예고하고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인연을 따른[隨緣] 빈 모습이 모든 법들의 실재며 개체인 동시에 전체를 나투고 있기 때문입니다.
正和
-마음 하나에 펼쳐진 우주
출처 : 淨土를 그리며...
글쓴이 : 느린 걸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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