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구가 바로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即是空 空即是色)입니다.
이것은 연기와 空이 하나임을 말합니다. 불이(不二), 즉 둘이 아니라 연기와 空이 하나라는 의미입니다.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색은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은 색과 다르지 않다. 색은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라.
반야심경에는 위와 같이 나와 있어서 약간 헷갈릴 수 있습니다.
왜 색과 공이 다르지 않은지에 대한 설명이 미흡하다고도 볼 수 있지요. 물론 반야경에는 명확하게 설명되어져 있습니다.
반야심경이란 본래 반야경(총600권)을 압축시켜놓은 경전입니다. 그러므로 반야경을 보면 반야심경에서 뜻이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아래 문구도 역시 마찬가지로 반야경에서 발췌한 것 입니다. 아래 문구를 자세히 검토하면 색즉시공 공즉시색에 대한 의미를 보다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반야경에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即是空 空即是色) 앞에 아래와 같은 문구가 추가되어져 있습니다.
離色亦無空。離受想行識亦無空。 색을 떠나고서도 역시 空이 없고, 수상행식을 떠나고서도 역시 空이 없다.
색과 空이 둘이 아니다라는 뜻 입니다. 색의 본질이 空인데, 색이 없다면 역시 空도 없다라는 의미입니다.
空이라는 것은 완전히 없다라는 의미가 아닌거죠.
예를 들면, 사과가 있는데 사과의 본질이 空입니다.
왜 空인가하면 사과라는 것은 다양한 원인과 조건이 화합해서 생겼기 때문입니다. 즉 인연화합으로 인해 생긴게 사과이므로 사과에는 독립적인 영원한 실체가 없습니다.
사과, 즉 물질은 연기로써 존재하고 연기로써 존재하므로 거기엔 독립적인 실체가 없어서 사과의 본질이 空입니다.
그러나 사과 자체도 없다면 사과의 본질인 空조차 없게 됩니다. 空의 개념이란 아주 없는 無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반야심경에서 문구를 추가한다면 다음과 같을 경우 이해가 수월하게 됩니다.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不離空 空不離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색은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은 색과 다르지 않네. 색은 공과 떨어져 있지 않고, 공은 색과 떨어져 있지 않네.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라.
한글로 읽을 때는 좀 그렇겠네요. 발음이 똑같아서 두번 반복되니까요.
그러나 뜻의 이해측면에서는 위와 같이 이해하는게 수월합니다. 물론 저 위의 추가된 문구까지 포함해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한번 이해만 하고 넘어가면 그 뿐입니다.
색이 공과 떨어져 있지 않다라는 의미가 중요합니다. 색은 겉으로 드러난 사물이요, 그 사물의 본질이 바로 空입니다.
색은 겉이고, 空은 안입니다. 색은 겉모습이고, 空은 그 본질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하나는 겉모습이고, 하나는 본질이니.....이 둘이 별개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색이 아예 없으면 공도 역시 없고, 공이라는 것은 곧 색으로 인해 있게 됩니다.
색은 곧 겉모습이고, 이러한 모든 존재하는 삼라만상은 곧 연기로써 존재하며 空은 곧 그 사물의 본질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空도 역시 마찬가지로 어떠한 실체가 있는게 아닙니다. 空空, 즉 공도 역시 공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으로 쭉 뒤에 나열됩니다. 空 그 자체에는 아무것도 없다라는 뜻입니다.
용수보살(나가르주나)께서는 이 空에 어떤 고정불변의 영원한 실체가 있다라고 여기는 것이 가장 큰 병이고, 이런 병은 고칠 수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空에도 역시 실체가 없습니다. 만약 실체가 있다고 여기면 거기에 집착하게 되고 그로 인해 번뇌에 빠지게 됩니다.
아래는 반야경에 올라와져 있는 한자 원문과 해설입니다. 보다 명확한 뜻을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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舍利弗白佛言。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
菩薩摩訶薩云何應行般若波羅蜜 “보살마하살은 어떻게 반야바라밀을 행해야 하는지요?” |
佛告舍利弗。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
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不見菩薩。不見菩薩字。不見般若波羅蜜。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을 보지 못하고, 보살의 이름을 보지 못하며, 반야바라밀을 보지 못하느니라.
亦不見我行般若波羅蜜。亦不見我不行般若波羅蜜。 내[我]가 반야바라밀을 행함을 보지 못하고 또한 내[我]가 반야바라밀을 행하지 않음도 보지 못하느니라.
何以故。菩薩菩薩字性空。 왜냐하면 보살과 보살이란 이름의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니라. |
空中無色無受想行識。 공한 가운데서는 물질[色]이 없고 느낌[受]․생각[想]․지어감[行]․분별[識]도 없으며,
離色亦無空。離受想行識亦無空。 물질을 여의고도 공함이 없고 느낌․생각․지어감․분별을 여의고도 또한 공함이 없나니,
空即是色色即是空。空即是受想行識。受想行識即是空。 공이 곧 물질이요 물질이 곧 공이며, 공이 곧 느낌․생각․지어감․분별이요 느낌․생각․지어감․분별이 곧 공이니라. |
何以故。舍利弗。
但有名字故謂為菩提。但有名字故謂為菩薩。但有名字故謂為空。 다만 이름이 있기 때문에 보리라 할 뿐이요 다만 이름이 있기 때문에 보살이라 할 뿐이며, 다만 이름이 있기 때문에 공이라 할 뿐이니라.
所以者何。諸法實性無生無滅無垢無淨故。 그것은 왜냐하면, 모든 법의 진실한 성품[實性]은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더러움도 없고 깨끗함도 없기 때문이니라. |
菩薩摩訶薩如是行。亦不見生亦不見滅。亦不見垢亦不見淨。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행하면서도 역시 생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멸하는 것도 보지 못하며, 더러운 것도 보지 못하고 깨끗한 것도 보지 못하느니라.
何以故。名字是因緣和合作法。但以分別憶想假名說。 왜냐하면 이름이란 곧 인연(因緣)이 화합하여 지어진 법이요 다만 분별하고 기억하고 생각하는 일에 임시로 이름 붙여 말하기 때문이니라.
是故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不見一切名字。不見故不著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온갖 이름을 보지 못하며 보지 못한 까닭에 집착하지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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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即是空 空即是色)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설법(반야경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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