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자리
원각의 도량이 어디던가.
지금 삶의 이 자리가 곧 원각이네.
圓覺道場何處 現今生死卽時
원각도장하처 현금생사즉시
- 장경각 주련
이 구절은 해인사 장경각 입구에 걸려 있는 주련이다. 장경각에는 부처님과 조사스님들의 모든 가르침이 총 집결되어 있는 곳이다. 그 많은 가르침 중에서 가장 빼어난 말씀을 선택하여 대표로 삼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팔만사천 법장을 한마디로 요약한 말씀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대단히 함축적이고 중요한 말씀이다.
원각도량이란 액면대로 보면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성취한 장소를 말하는 것 같으나, 실은 부처님의 깨달음 그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서 말씀의 뜻을 살려 표현하자면, “부처님의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현재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그 모습 그대로라네.”라고 바꾸어 볼 수 있다.
팔만장경은 그 깨달음에 대해서 무수한 설명을 한다. 사람들의 수준과 근기에 따라 너무 많은 설명을 하다 보니 본래의 뜻과 어긋나서 엉뚱한 방향으로 흐른 것도 많다. 그래서 경전을 읽으면서 엉뚱한 길을 가기 쉬우니, 반드시 이 말씀을 기준으로 삼으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말씀의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아무리 경전을 많이 읽어도 해로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
깨달음의 세계란, 현재 우리들이 무슨 일을 하든 보고 듣고 말하고 느끼고 호흡하는 이 사실 그대로다. 그것이 곧 사람의 삶이며 깨달음이다. 깨달음이 곧 사람의 삶이다. 현금의 생사란 우리가 지금 이 순간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이 사실을 말한다. 그래서 이 살아가는 사실이 곧 원각도량이라고 한 것이다.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이 사실을 떠나서 달리 깨달음을 찾으면 십만 팔천 리나 어긋나 버린다. 불교를 공부하고 깨달음을 위해서 정진하는 모든 이들은 반드시 이 원칙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뜻으로 장경각 입구에 걸어두어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출처 : 무비 스님이 가려뽑은 명구 100선 ② [소를 타고 소를 찾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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